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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영화 검열위] <비천무> 검열결과

2000. 7.3.월요일
딴지영진공
개봉영화 검열위원회

 


















 
 

문건명

 

단지(單志) 활동사진 검열단 <비천무(飛天舞)> 검열결과

전달자  단지 활동사진 검열단 수괴 한동원
인수자 단진공 독자 진영
발신지 단진공 활동사진 검열단 문래동 본산
등급   10여년전 무림을 휩쓸던 홍콩 무림영화의 칼싸움 장면을, 한국에서 비슷하게라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이 치사량에 달한 자 관람가

단, 극심한 부작용이 수반되므로 반드시 치사량에 달한 경우에만 한함

  김히선, 신횬준이 그 어떤 무슨 짓, 특히 연기를 해도 참아낼 수 있을 정도의 애정이나 인내력 또는 차력의 소유자 관람가

 나머지는 웬만하면 절대 관람불가
 


 

 

과연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올 하절기 한국영화 중 흥행무공이 가장 출중하다 알려져있는 <비천무>는, 지난 98년 개봉되었던 <퇴마록>과 두려우리만치 유사한 형상을 띠고 있다.

 

아래를 보라..

 
 

一. 강호에 이름을 널리 떨친 원작(하나는 소설, 하나는 만화)을 영화화했다는 점

二. 많은 제작비를 들이고, 특수효과 많이 쓴 "블록 버스터"를 표방한다는 점

三. 여름방학 절기에 맞춰서 개봉했다는 점

四. 신횬준이 남자 주인공을 맡고 있다는 점

五. 멜로를 다른 장르(하나는 공포, 하나는 무협)와 짬뽕했다고 주장하는 점

 

이 외에도 제목이 중화요리점을 연상시키는 삼자성어라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으나, 생략하고 가장 중요한 공통점을 적어 후세에 남기니, 부디 이 말을 명심하여 명랑 활동사진 관람에 화가 미침이 없도록 하라.

 
 

. 어쨌든 두 영화 모두 관객에게 피를 보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

 

 

 

금번 <비천무>의 난은, 그 연기력 내공에서 신횬준과 쌍벽을 이루는 김히선이 그의 맞상대로 검을 뽑아, 더욱 그 피바람이 살벌나다. <퇴마록>의 추상미와는 결코 비견될 수 없는 연기력 제로 무공으로 스크린과 객석을 동시에 평정해버리는 김히선의 연기는 이미 "신화가 된다".

 

일부 변방의 재래식 언론에서는 김히선이 검투장면을 직접 연기했네 어쨌네하는 하는 풍문도 들려오는 것 같으나, 실상은 이러하다.

 

여기에서 그녀의 얼굴이 나오는 컷들(칼 뽑기, 칼 집어넣기, 잠깐 쉬면서 적들 도끼눈 뜨고 째려보기)은 거의 얼마 되지 않는다. 이는 물론 검투장면을 직접 연기하기 위한 피나는 연습 같은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는 그녀의 연기력 제로 무공 덕분이다.

 

허나, 이 컷들의 비중은 상당하다. 이 컷들이, 본격 검투장면의 앞뒤와 중간에 어색하게 튀어나오면, 대역이 꽤나 박진감있게 연기해 놓은 검투 씬이 모조리 어색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김히선의 연기력 제로 무공은 자신이 나오는 컷 뿐만이 아니라, 그 앞뒤로 연결되는 컷마저 어색해보이게 하는 신묘한 경지에 도달했도다.

 

 

 

또한 날이 갈수록 대사 발음이 아슬아슬해지는 그녀의 연기력 제로 무공은, <퇴마록>에서 이미 떨쳤던 바 있는 신현쭌의 그 어정쩡한 후까시 무공과 합쳐지면 천하에 더 이상 대적할 자 없이 된다. 

 

간혹, 이들의 대사를 가능한 한 줄여, 본의 아니게 과묵한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던 제작진의 본의 아닌 저항의 흔적이 엿보였으나, 그 결과는 참패로 막을 내리고 말았도다. 

 

아, 한국영화 사상 최강으로 기록될 이 최악 커플앞에 그 누가 감히 대적할 수 있으리요.

 

 

 


 

 

따라서, 이 영화가 내세우는 "한국의 감각적 멜로"의 호소력이란 과연 어떠할지,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하리.. 

 

허나, 아마도 많은 관객들은 김히선과 신횬준의 연기에 앞서, 좀 더 근원적인 것에 분노의 화살을 날릴 것이다. 그 분노는 이 영화가 원작 만화를 영화화시켰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이는 98년의 <퇴마록>과 같은 경우이다.

 

본 검열단장은 지난 98년에 이어, 이번의 경우에도 원작을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이는 과연, 당시와 마찬가지로, 천우신조의 행운이었다. 

 

만일 원작을 먼저 접하였더라면, 안그래도 고통스러웠던 2시간 여의 영화관람 고행길이, 원작과의 비교로 사념과 번뇌가 계속 가중됨으로써 그 얼마나 가혹한 고행이 되었으리요.. 

 

사실 이 영화를 평하는데 있어서는 원작과의 비교까지 갈 필요도 별로 없다고 사료된다. 영화의 완성도가 원작과 비슷하게라도 나와야 이런 비교가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허나 이 영화의, 특히 시나리오의 완성도는 원작을 어떻게 말아먹었는지에 대해 비판을 받 자격조차 없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이미 그 자체로도 충분히 쒯덩어리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원나라, 청나라 끌어들여서 뭔가 절라 서사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듯 보이려 한다. 또한 호북유가, 자량, 철기십도, 미혼독 등 뭔가 있어보이는 듯한, 그러나 극중에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전문용어들로 본격 무협물을 사칭하려 한다.

 

광고 찌라시에서조차, 단 한번의 코빼기도 드러내지 않는 "말리꽃"이 "인연의 끝을" 부른다하는 야시꾸리한 카피를 적어내어 관객을 미혹한다. 

 

허나, 사술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는 법. 

 

이 영화(만화가 아닌)가, 홍콩 무협영화(특히, 10년 전인 90년에 잠깐 개봉됐었던 김용 원작, 호금전/서극 감독의 <소오강호>)에서 마르고 닳도록 써 온 이미지들을 조잡하게 짜깁기 해서 짬뽕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눈치채는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또한, 이 영화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자랑거리, 검투장면의 박진감 또한 짬뽕의 업보에서 벗어나기엔 그 공력이 너무나 일천하도다.

 

물론 이 영화의 검투 장면은 그 자체로는 꽤 매끈하면서 완성도 높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인트로의 전투장면은 거의 10년전 홍콩의 수준에 육박해있다. 가끔식 보이는 피아노 선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이다. 어차피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볼때는, 존재하는 피아노 선을 마음의 눈으로 지워버리는 色卽是空의 철학이 요구되는 것 아니던가. 

 

허나 문제는 그 기술적인 완성도가 아니다. 그 기술이 무엇을 위해 쓰여졌는가가 특수효과에 있어 가장 중차대한 문제이다. 상상력을 실현시키는 수단이 아닌, 상상력의 빈곤을 때우는 수단으로서의 특수효과를 사용하는 영화들의 말로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비천무> 또한 그러한 영화들이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귀결점에 도달하고야 만다. 땅바닥 박박 긁는 새마을 삽질 검법(영화속에서는 "검기" 또는 "비천신기"라고 하더라만)으로 사람 두쪽내고, 피아노 선에 매달려 물 위를 뛰 댕기고, 매트 페인팅과 CG로 남녀주인공을 알락달록 오색찬연한 꽃동산에서 노닐게 하면 무슨 소용이랴. 

 

 

 

이것은 모두, 이미 10년전 홍콩에서, 훨씬 더 세련되게, 거의 활동사진으로 빚은 피튀기는 詩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높은 경지로 보여줬던 무공들이 아니던가. 우리가 그것을 10년이 지난 후에야 40억 떼돈을 들여가며 복습했어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슬프다. 시나리오와 연기의 흡인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공허한 비주얼의 나열은 관객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어째서 이들은 또다시 망각하였는가..

 


 

 

그러나 위에 적은 내용들은 이 영화가 준비해놓은 일진광풍과도 같은 피바람의 일각에 불과하다. 

 

KBS <역사 스페셜>의 초기버전을 보는 듯한 CG(특히 신횬준 뒤로 안개가 흐르는 장면에 주목하라), 신횬준의 어린 시절과 신횬준과 김히선 사이의 아들 역할을 동시에 하는 방협의 그야말로 국어책 줄줄 읽는 연기, 산속에 짱박혀서 고된 수련을 받건 적과 피튀기는 혈투를 벌이건 언제나 세탁소에서 갓 찾아온 듯 반듯하게 각잡힌 의상 등 이 영화가 준비해 둔 재앙은 과연 그 깊이를 능히 잴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한국 액션 최대의 파격"이라는 광고문구 그대로이다.

 

 

 

아니, 이 영화의 "파격"은 "액션"이라는 좁은 틀을 피아노선에 매달려 훌쩍 뛰어넘고 있다.

 

그 어떤 한국영화가, 주연만 맡았다하면 영화를 말아먹는 남녀배우를 동시에 주연으로 기용할 용기를 가졌으며, 여배우의 연기력 부족을 어떻게든 카바해 보려고 그리도 자주 의상을 갈아 입히는 현란한 미적감각과 근면함을 과시하였던가 . 

 

그 어떤 한국영화가, 이리도 특수효과와 쭝국 올 로케이션이라는 허명만을 믿고 줄거리는 완존 신경 꺼버리는 대범함을 가졌으며, 10년전 한국을 풍미한 홍콩영화가 걸었던 특수효과 무공의 길을 그대로 되밟아가는 겸양지심을 보여주었던가.

 

또한 그 어떤 한국영화가, 이리도 많은 돈을 들여서 이리도 영양가 없는 영화를 만들어버리는 호방한 기개를 보였으며, 국적이라는 부질없는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버리는 영화를 만듦으로써 저 드넓은 대륙을 아우르는 웅대한 기개를 보였던가. 

 

그리고 그 어떤 한국영화가, 이토록 철저히 기획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듦으로써 무개념의 도를 몸소 실천하였던가.

 

본 검열단장은, <용개뤼>를 제외하고는, 이 영화의 "파격"을 능가하는 그 어떤 한국영화도 제시할 수 없다.

 

이상.

 

 덧붙여서

 

대사만 쭝국어로 바꿔놓으면 영락없는 중국 또는 홍콩 영화가 될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홍보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오는 관객들의 혹평에 무한삭제검을 휘두르고 있다 한다.

 

또한 이 영화에 대한 비난에 대해 "애국하는 마음으로 영화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은 삼가해 주십시오"등등의 문지방에 조찡기는 싸운드를 남발하는 무림사파인 애국애좃 세력들이 발호하고 있다 한다. 

 

이에, 본 검열단장은 <비천무> 측과 애국애좃파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비천무> 측은 이미 언발에 오줌싸기 필로 자신의 영화에 대한 비난은 모조리 삭제해버리겠다는 큰 뜻을 세운것 같으니, 기왕의 뜻을 끌까지 살려 웹상의 모든 <비천무> 씹기를 삭제하여 주시라. 물론 본 검열단장의 이 글도 포함해서 말이다.

 

애국애좃 세력들은 애국을 언급하기에 앞서, 그 애국이 명나라에 대한 애국인지 원나라에 대한 애국인지를 먼저 발켜 주시라. 주인공인 고려인의 후예라고 해서, 대사가 고려말로 나온다고 해서 이 영화가 고려의 영화로 보였던 것은 아니었으리. 만일 전후사정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이 영화를 보았다면, 그는 "나는 오늘 B급 홍콩 무협영화를 보았네.."라고 읊조릴 것이 뻔할 것을.

 

또한 마지막으로 <비천무> 측은, 자신의 영화가 관객들로 하여금 한국영화계 전체에 대한 애정을 절로 가지게 만들 정도로, 한국만의 독창성을 가진 뽕나게 재밌는 영화인지를 곰곰 생각해보라. 그 절절한 애국심의 10프로만 투자해서 말이다.

 

이젠 도대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되도 않는 영화에 지덜도 별로 갖고 있지 않은 어설픈 애국심을 끼워 파는 것처럼 조또 빙신같고 쩍팔린 짓거리도 없다는 걸 깨우칠 때도 되지 않았는가.

 

 

- 단지 활동사진 검열단 수괴겸
단지 활동사진 진흥본산 수괴
한동원

(sixstrings@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