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 군대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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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수요일 딴지 편집부장 김도균 이야기 하나
이야기 둘 신촌의 주말 늦은 밤.. 예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미 3차 정도는 때려 부은 듯한 한 떼의 젊은이들이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그들 가운데 만취해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한 젊은이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고함을 치고,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건다. 술 취한 젊은 넘들이 넘치는 게 신촌 주말 밤의 주된 풍경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술 먹고 괜한 시비를 거는 이런 넘들은 피해가는 게 상책이란 것도 오랜 신촌생활을 통해 터득한 요령이다. 마주오는 이들을 멀찌기 떨어져 지나치려 할 때, 그 시비걸던 넘이 우리 일행을 향해 혀가 꼬여 제대로 발음도 안 나오는 입으로 뭔가 소리를 질렀다. <#%&@ 쉐이야~! 우에~ #$% $@#& 몰 처다바..> 먼 소린진 모르지만, 대강 요런 내용의 시비걸기였다. 이런 넘들을 상대해 줘봐야 대개 주먹다짐으로 번지고, 파출소에서 빠진 이빨들을 헤아리며 복잡한 합의절차를 거쳐야 된다는 걸 경험으로 터득하였기에 모두들 걍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또 다시 뒷통수에서 아까 그 넘의 욕지기가 들려왔다. <이거뜰이.. @#%$ 쳐다보구 그냥 가네. 씨바쉐이덜~> 이 소리를 듣고 일행 중 한 사람이 주먹을 꼬옥 진 채로 뒤로 돌아 조용히 그 넘한테 다가갔다. 불 같은 성질을 가진 유도선수 출신의 친구였다. 이 친구가 나선 이상 젠틀한 협상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다들 <젠장 일 졸라 꼬이네..>라고 생각하며 의관을 정제하고, 젊은 넘들을 상대할 채비를 갖춰야 했다. 그런데.. 그 유도맨은 메다꽂기 한판을 예상했던 일행들의 기대를 깨뜨리고, 술 취한 젊은 넘들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더니, 시비 걸던 넘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고는 다시 돌아왔다. <어라.. 뭔 일이여 (니 승질에 그런걸 다 참구)> 그 친구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어~ 아까 그 넘. 그 넘 낼 군대간대..> 이야기 셋 예전 문하방송에서 방영한 미니시리즈가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50대 주부(김 혜자 분)가 급작스레 자궁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이 방송때문에 종합병원에서 자궁암을 검사받는 중년여성이 크게 늘어났다고 하니 대단한 히트를 쳤던 드라마였던 거 같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기억남는 장면은 김혜자가 마지막 임종을 위해 집을 떠나 조용한 시골로 떠나는 부분이었는데, 여기서 본 기자두 눈물을 찔끔거렸드랬다. 자신의 손길이 닿은 집안 곳곳을 돌아보고 어루만지며, 애써 눈물을 참으며 가족을 떠나던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물이 터지고 만 것이다. 그 때 본 기자가 눈물을 보인 이유는, 김혜자가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입영영장을 받고 군대에 들어가던 내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한부 인생으로 가족을 떠나야 하는 그녀의 심정을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20대 초반에 입대를 앞두고 겪었야만 했던 심정으로 이해한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지금 군대에 있는, 그리고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고, 고통스럽게 여긴 문제는 무엇일까.. 유격훈련? 100km 행군? 고참의 구타? 아니다. 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자신이 타의에 의해 가족과 친구와 애인과 사회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본 기자는 그랬다. 20대 초반 한창 친구를 좋아하고, 사랑을 배울 시기에 그 모든 것을 접고서 떠난다는 것은 그들에겐, 그들 나이엔 너무나 힘든 일인 거다. 군대에서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오로지 휴가만을 바라보며 그 고통을 감수하지만, 정작 휴가를 나온 그들에겐 또 다른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이 슬퍼해주던 애인과 친구들은 군복을 입은 내 모습을 낯설어 하고, 내가 없으면 안 될 것만 같던 학교와 직장에서의 내 자리와 공간은 이미 말끔히 치워져 버렸다. 그리고, 이런저런 기분으로 오랜만에 마신 사제술에 벌개진 군인들을 미친개 취급하는 사회..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가혹행위와 훈련의 혹독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소외감과 절망에서 인거다. 아마 내 친구가 욕지꺼리를 퍼붓던 술 취한 젊은이를 너그러이 용서했던 건, 그가 느끼고 있을 절망을 이해했기 때문일게다... 이야기 넷 누구나(?) 그렇듯 강원도 최전방 철책선에서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군생활를 했었다. 누구나 그렇듯 빡센 훈련과 기합속에서 생활했고, 외로움을 겪어야 했다. 제대를 한 후엔 누구나 그렇듯 군대얘기라면 침 튀기며 뻥을 쳐 댔고, 술만 먹으면 어린 후배들에게 무용담을 늘어 놓았다. 그리고, 대개가 그렇듯 군대가산점과 상관없는 외국계 회사에서 나이어린 여자 고참에게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부르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나한테 아무런 이익도 없는 일에는 관심도 없고, 흥분도 하지 않는 소시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내가 <군대가산점 폐지>에 흥분하며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왜 이 일에는 이렇게 흥분하고야 마는 걸까. 나뿐 아니라 수많은 예비역들이 동시다발적인 분노를 터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대 무용담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떠들어 댄다고 해도, 듣는 이들에겐 지루한 옛 노래같이 들린다는 걸 예비역들도 잘 알고 있는 거다. 그런데도 또다시 지리한 옛 노래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건, 군대에 있는 동안 그들이 느꼈던, 그리고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사회에 대한 소외감과 절망감이 다시 한 번 들쑤셔졌기 때문이리라. 아마도 이번 <군가산점 폐지>에 분노했던 남성들은 대부분 그런 제도의 존재조차도 인식하고있지 못했던 사람들 일꺼다. 그러나 그들은 <공무원 임용상의 군가산점>을 군필자에 대한 유일한 사회적 보상으로서, 따라서 하나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그런 보상을 거의 받지도 못했거니와, 만약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보상해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젊음의 세월을 군대에서 썩이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물질적인 보상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군가산점 폐지 옳다. 이게 군필자에 대한 올바른 보상이 아니라는 점에 동감한다. 군필자들에게 대다수의 여성과 장애인들이 본의 아닌 피해를 입는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지금껏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군가산점>이 이들이 가진 특권이고 기득권인양 몰아 붙이고, 이 문제가 남여평등을 가로막는 주범인양 매도하지는 말기 바란다. 군필자들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사회의 약자요,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군가산점 제도>는 남여평등의 문제가 아닌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진정 문제는 요리조리 자신과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는 일부 부유층들과 <군가산점>과 총선표를 저울질하는 이 땅의 정치인이지 않는가. <국위선양>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군대를 면제받는 프로스포츠 선수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보면서, 아직도 무수히 저질러지고 있는 병역비리사건을 보면서, <군가산점>이 폐지됐다고 남성들이 가진 기득권을 쟁취한 듯이 쾌재를 부르는 일부 여성단체를 보면서 이 땅의 군필자는 다시 한번 절망한다. 더 이상 이 땅의 군필자들에게 다시 한 번 예비군 6년차 육군 예비역 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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