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캐나다는 한국의 속국이었다 ! | |
1999. 8. 2. 월요일 신설 딴지 지명고증팀 혼자서 대표기자 파토
근데... 이제는 그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서나 문헌뿐 아니라 지명에서 까정 잃어버린 옛문화를 고증해내는 초절정 고수의 단계에 이르르게 되었으니...아. 본지 캐나다 특파원이 보내온 이 놀라운 또하나의 쾌거를 보시라. 기자가 캐나다에서 생활하며 열라 연구 노력한 결과, 과거 캐나다는 한국의 속국이었다는 천인공노할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 사실을 국가와 민족 앞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야말로 한국인으로써의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캐나다 정부의 필사적인 저지에도 불구하고 연구결과를 공수 하기로 결심 했다는 특파기자를 함 찬양해 주믄서... 지금부터 그 진상을 낱낱히 공개토록 한다. 발 견 캐나다 (Canada) 라는 국적 불명의 국명을 보라. 이 나라의 두개의 공용어인 영어와 불어중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것을 철자와 발음으로 알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곳 원주민 인디언들의 말이라고 하지만, 웃기지 마라. 언제부터 자존심 강한 양코배기들이 정복지의 언어를 따서 나라이름 지었나? 역시 그 배후에는 숨겨진 역사가 있었다. 본 특파원이 캐나다 서부 브리티쉬 콜럼비아의 주도인 빅토리아시를 방문해서 역사 박물관을 이잡듯이 뒤진 결과, 한 귀퉁이 조명도 되어있지 않은 곳에서 전혀 뜻하지 않게도 우리에게 너무도 낮익은 문서 하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것은 훈민정음 이었다. 유리 진열장안에 모셔진, 혹은 가두어진 이 책의 아랫 푯말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다음과 같은 간단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 이 무슨 소린가. 훈민정음과 캐나다...? 그 순간 명민한 본 특파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가지 생각. 그것은 바로 가나다 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의 현실인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초기 캐나다 인들은 한글을 자신들의 국명으로 붙였단 말인가. 그것은 결국 우리 자신은 물론 캐나다인들 속에서 조차 완전히 잊혀지긴 했지만, 과거 어느 시절엔가 우리 한민족이 이곳을 지배했음은 물론, 우리 문화가 이곳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벅찬 감동을 안고 박물관 수위에게 이 사실을 설명한 후 관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이는 더 이상 개인의 발견에서 그칠 수 없는, 한 - 캐 양국간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관계 재정립을 요구하는 중차대한 공적 책임으로 승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정당한 요구는 수위의 야릇한 미소와 함께 정중히 묵살되어 버렸다. 몇달이 지난 아직도 난 그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분 석 오타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밴쿠버로 돌아온 본 기자는 확인된 사실하에 캐나다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지도를 펴놓고 주요 지명들을 고찰하는 것이 그 첫 단계였다. 먼저 수도인 오타와. 이 역시 영어도 불어도 아니지 않은가? 인디언 언어라는 종래의 주장은 이미 훈민정음 의 발견과 더불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낡은 이론일 뿐이므로 과감히 배척하기로 했다. 오타와의 두가지 특성. 조용하고 아름답고 편안한 도시라는 점, 그리고 겨울에 졸나 춥다는 점... 이 두 가지가 그 이름의 배경을 이루고 있을 터였다. 주변의 의견들까지 다양하게 청취한 결과 그 어원은 다음의 세 가지로 좁혀졌다.
3이 발음상 가장 근사하긴 했으나, 오타와에는 타워가 없다. 그 근거에 대해 제보자를 추궁한 결과, 가까운 토론토의 타워를 보고 오타와 주민들이 외친 말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캐나다 내에서는 가깝다고 해도 실제로 서울 부산 만큼이나 먼 도시라는 점과, 이는 한국어 지명이라는 우리의 절대명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본 기자의 민족정기 어린 지적에 그는 국가와 민족에 사죄한다는 쪽지를 남기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럼에도 이 이론에 미련이 남는 분들은 사회과부도를 참고하시라. 오타와는 결국 1과 2의 복합어였다. 초기에는 두 가지 이름이 함께 불리웠다가 이후 발음이 비슷한 좋 과 춥 이 융합하며 생략되고, 다 가 격음화 현상을 거치면서 타 로 바뀌어 간 것이 지금의 오타와 인 것이다. 토론토 다음은 동부의 중심도시인 토론토. 영어도 불어도 아닌 것은 이곳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곳에는 다른 캐나다 도시들과 달리 한인들이 스트릿 하나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며 오래된 코리아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한국사람들은 모이면 술마시고 노래를 부른다. 주로 부르는 노래는... 역시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나왔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동반자인 트롯토 가 아닌가 말이다. (트롯토가 왜색 음악인지 전통 가요인지의 논란은 본 기자가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니므로 생략함) 물론 트롯토의 어원은 트로트 (trot) 로서 한국어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중요성과 사용빈도로 미루어 한국어의 일원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겠다. 몬트리올 몬트리올 은 외견상 불어를 가장하고 있으나, 훈민정음의 발견으로 캐나다 건국의 근간에 한국어와 한글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그에 입각한 시각으로의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었다. 이미 불어의 영향으로 많이 변질되었기에 이를 해석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몬트리올이 동부에서는 비교적 관광도시이고 올림픽을 개최한 적이 있다는 점에 착안하였다. 관광도시, 올림픽, 관광도시... 올림픽... 본 기자 삼일밤을 머리 싸맸다. 사일째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던 중, 민족정기의 도우심인지 어떤 영감이 갑자기 싹트며 그간 굳어있던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관광도시, 올림픽이라면... 서비스업의 발전... 그렇다면...? 나는 상상속에서 몬트리올의 한 레스토랑에 섹시한 거얼과 앉아 있었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와서 묻는다.
이제 상상력은 캐나다 건국 이전, 한인들이 지배하고 있던 때로 수백년을 거슬러 오른다. 장소는 인근 주막집. 나는 아릿다운 처자와 마주앉아 있다. 주모가 달려와 사극 말투로 묻는다.
바로 이거였다!
본 기자의 논리력만으로는 얻어낼 수 없는 결론이다. 조상님들의 음덕에 감사할 뿐이다. 저 하늘 어딘가에 단군 할아버지가 수염을 휘날리며 미소짓는 것이 보이는 듯 하다. 밴쿠버 이제 마지막 남은 주요도시, 본 기자가 살고 있는 밴쿠버만이 남았다. 기존의 주장에 따르면 밴쿠버는 이 지역을 발견, 개척한 영국인 밴쿠버 선장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고, 실제 본 기자 역시 빅토리아 시에서 그의 밀납인형을 직접 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간 일본을 포함한 세계 전역에서 강자들에 의해 행해졌던 역사의 왜곡을 무수히 목격했던 터다. 박물관 구석에 외로이 놓여있던 훈민정음을 내 눈으로 확인한 이상,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박물관 수위의 묘한 미소를 본 이상, 밴쿠버에서 포기해 버릴 수는 없었다. 또다시 사흘밤을 머리 싸맸다. 밋밋한 오타와, 트롯토, 뭘드리오 (어원이 밝혀진 이상 이제부터 한국어 원이름을 사용할 것임) 와는 달리 산, 바다, 숲이 어우러진 이 도시의 특성... 분명 거기서 이름이 나왔을 거였다. 산.. 바다.. 숲.. 산.. 바다.. 숲..
편집증에 걸리기 직전에 이른 나흘째 새벽, 본기자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밴쿠버의 북한산이라고 할 시모어 산을 맨발로 허위허위 오르고 있었다. 그곳에 오르면 무엇인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를 품은 채. 얼마나 올랐을까. 본 기자는 그만 길을 잃은 채 단지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눈물과 땀이 뒤범벅이 되어 숲속을 헤매게 되었다. 부르튼 발에 깨진 맥주병 조각이 꽂혀 피가 흐르는 것도, 발가락에 누군가 쓰고 버린 콘돔이 씌워져 있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맨손으로 곰과 싸우고 코요테를 물리쳐가며 도달한 곳은 영험한 기운이 흐르는 한 계곡이었다. 물이 흐르는 옆으로 돌 비석의 한 귀퉁이가 흙밖으로 삐져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손톱이 빠져나가는 것도 모른 채 미친듯이 흙을 파헤쳤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비석은 그 전체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한글 시조가 쓰여져 있었다.
이… 이것은? 우리 민족의 기운이 이곳에서 쇠해가던 시절에 어느 장수가 남긴 시비 가 아니던가! 시비가 세워질 정도였으면 분명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웠으리라. 반굽어가 반구버로, 이후 영어의 영향으로 밴쿠버로 변하는 과정을 일일히 설명하는 것은 이 역사의 증거물 앞에서 시간낭비일 것이다. 단지 본기자에게는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장수의 모습이 환영과도 같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대 가나다 제국 한인 왕조의 쇠망... 그 거대한 역사의 도전속에서 그가 느꼈던 좌절감... 본기자는 복받치는 설움속에서 그만 넋을 읽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등산객들이 나를 발견한 것은 그후 삼일이 지난 후였다. 콘돔이 씌워져 있던 발가락에 이상한 피부병이 생기긴 했지만,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어찌 이만한 희생이 없으랴. 결 론 이렇듯 각고의 노력 끝에 본 기자는 결국 캐나다가 한왕조의 속국 이었다는 고대 커넥션의 비밀을 일정부분 실증하고야 말았다. 이를 세계최초로 민족정론지이자 천만 독자를 자랑하는 딴지 일보의 지면을 통해 공개하게 되었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이 연구결과는 조만간 학계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확신하는 바, 이후의 고대사 연구는 양심적인 양국의 전문가들에게 일임할까 한다. 많은 성취를 기대하는 바이다. 따라서 본 특파원은 이후부터는 현재의 가나다, 특히 반구버의 특징과 삶에 촛점을 마추고 이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이곳에 졸라 많은 한인들의 삶은 물론 (이 또한 한 - 캐 커넥션의 연결선 상에 있는 사회적 현상이 아닌가 말이다) 세계각국에서 모인 넘년들의 삶을 통해 국제도시이자 인종전시장, 그리고 인류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실험이 행해지고 있는 이곳 반구버의 현재를 읽고 우리의 삶과 관련되어 이것 저것 느끼고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많은 성원 (격려멜을 뜻함) 부탁한다. 꾸벅. - 딴지 地名고증팀 지혼자 대표기자 겸 가나다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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