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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광고 속의 섹스를 까발려주마

1999.8.02.월요일
딴지일본특파원 맨뒤


안녕하심까. 넙죽. <일본애니를 까발려주마> 를 연재했던 일본의 맨뒤 입니다. 딴지 기자단 데모쿠라시 사건 때 실명이 발켜진 후 (씨바 구라기자 두고보자...) 졸라 오랜기간 숨어 지냈슴다.


그간 여러분의 협박성 멜 ( 야 뭐하냐.. 씨바 빨리 담편 올려라..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멜 스토커... 등등)을 받고두 무시로 일관했던 것두 우짜겠슴까. 다 니네가 참아야지.


다음 호에서는 지난 번에 약속했던 <우리 애니 살리기> 기사를 보내드릴 예정이지만, 어떻게 될 진 본 기자 꼴리는 대룸다. 본기자 현재 논문 발표 땜에 졸라 바쁨다. 똥꼬 원형탈모증에 시달리고 있심다. 애니 기사가 나가기 전 땜빵으로 요 기살 내보냄다. 졸라!





<신세대>, <개성시대>, <난 나야!>를 외치고 있는 테레비젼 광고... 근데 시내 나가보면 모두 똑같은 패션 똑같은 얼굴들... 똑같은 아시아 도시들...  여기가 워디여?.


본 기자 현재 한국, 일본, 대만의 도시 비교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슴다. 논문 제목은 <도시 풍경과 젊은이들의 패션의 演技的인 경향에 대해> 임다.


어떻슴까? 딴지기자답게 죽이지 않슴까? 근데 세나라의 현지 조사를 통해 정밀 비교분석을 마친 후... 결과는 한 마디로 이검다.


< 씨바. 니네 똑같잖아... >


딴지를 보고 있는 아쉐덜... 조디에 흐르는 침 닦고 잘 듣기 바람다. 니들은 니들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결정하고, 개인이건 집단이건 자유의지를 행사하고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지않슴까?


당신은 환상과 현실을 쉽게 구별할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얼마나 교묘한 전략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지 모를 검다. 본 기자 영상제작의 기본적 테크닉을 설명하면서 우리 아쉐들이 어떤식으로 획일화 되어가는지 보기로 하겠읍니다. 전번 <일본애니를 까발리 주나?> 편에서 니네가 보내준 멜 중에서 < 그냥 봐라... 뭘그래 디비냐?>했던 넘덜.. 씨바 왜 그냥보믄 안되는지 가르키 주마...


 영상은 반드시 진실을 전달하는가...



1969년 퓰리쳐 수상작품 『사이공식 처형』
에드워드 T. 아담스 촬영


1968년 2월 1일, 사이공 서부의 초론 지역에서 취재하고 있던 AP통신사의 아담스는 손을 뒤로 묶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간부가 사이공 정부군 해병대와 경찰에 체포되어 연행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뒤쫓아가자 지프가 멈춰서 있고, 그 곳에는 남베트남 국가경찰장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관은 연행되어 온 남자가 바로 앞에 서자마자 허리에 찬 권총을 뽑아 남자의 우측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 충격적인 길에서의 처형장면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그때까지 베트남 전쟁을 정의의 싸움이라고 간주하고 있던 미국의 여론을 반전으로 돌아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 사진 한장으루 총쏜 넘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잔인한 개쉐이로 남게 되었다.


근데... 이 사진은 진실인가?


진실과 사실은 분명히 다르다. 이 사진은 사실을 찍고는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실을 과연 있는 그대로 대변하고 있을까? 미국방송 CBS <20th Century>에 출연해 고백을 한 에드워드 아담스의 야그를 들어 보자.



" 그 상황을 찍은 나로서는 그 간부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교양인이었으며, 그는 3개국어를 능히 말할 수 있으며, 자신의 딸의 장래를 걱정하고, 자신의 부하에게는 존경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읍니다.


그 상황이 전쟁상황이었고 처형을 받은 자가 한 짓을 생각하면... 난 이 사진으로 퓨리쳐상을 받아 명예를 얻고 그는 이 사진 한장으로 역사에 남는 악인이 되었읍니다... "


그 때 그는 평소 악질적인 행동을 일삼던 자를 간신히 체포해, 민족의 이름으로 전쟁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형태로 처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경우, 사진은 그 사진 속의 실제상황을 그대로 전달했다기 보단, 그 사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의미가 왜곡되고, 진실이 아닌 것을 전달하고 있다.


영상은 진실을 전달하지 않을 때도.. 많다.


 무의식과 광고의 만남 - 의식조작


인간은 늘 무의식 속에서 도안과 배경을 찾아내 양자를 구별하고 있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둘 중의 하나는 놓쳐버리게 마련이다. 밑의 그림을 보기 바란다.


왼쪽 두 꽃을 보면 서로 다정하게 보이지 않는감? 반면 오른쪽 꽃은 뭔가 소외되어 있는듯이 보일 것이다. 두 식물이 만약 암.수 한 쌍이라고 상상해보라.


아구! 둘이 사랑하는 꽃 줌봐...


하지만 이 그림은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매몰과 반전>을 사용하고 있다. 꽃 아래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보일 것이다...



안 보여? 안 보이면 크게 심호흡하고 다시 들여보시라. 씨바 그래도 안보이믄 <니 똥꼬를 후비주마>의 똥꼬 선생님하구 상담을 해보시든지. 만약에 이 그림을 보는 독자들이 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갔다면, 무의식적 기억 속에 그 인상이 남게된다.


프로이드의 <무의식 중에는 아무 일도 끝낼 수 없고, 지나간 일도 아주 잊혀지는 것이 없다>라는 말을 기억해주시기 바란다. 이제부터의 설명에 아주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일상생활 중에 눈은, 의식하진 않지만, 엄청난 정보를 뇌에 쏟아붓고 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정보는 의식의 기억 속에, 그 나머지 부분들은 무의식이라는 부분에 남게 된다. 정보 통신학자인 윌슨 브라이언키에 의하면 그 <의미있는> 정보는 전체 정보량에 1/1000 밖에 안된다고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믄 이 매몰이란 수법을 이용하면



1. 지각체험을 강화하고
2. 심전도 EKG, 뇌파계 EEG, 피부전류반응계 GSR의 진폭을 증대시킨다.
3.매몰의 내용이 섹스나 폭력일 경우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그 불안에 대대 주의를 일깨우며(도피 반응)
4.어떤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공격반응)으로 이어진다.


뭔 소린지 잘 모르겠지 ? 자 바바. 설명해주께. 이러한 효과를 이용하면 우리가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웠던 <종 치면 침을 흘려대는 개>와 똑같은 효과를 인간에게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무의식에 어떤 인상을 남겨 놓는 <매몰>이란 수법을 이용하여, 그 인상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든다는 것인데...


이걸 오늘날 광고에 이용한다.


니들이 안정을 하던, 안하던 우리들은 끊임없이 행동을 바꾸라는 요구를 광고로부터 받고 있다. 광고는 우리들 소비자에게 이 상품을 구입하세요, 이 브랜드를 구입하세요, 라며 매일같이 유혹을 던지고 있다. 무의식에 호소해 거의 조건반사와 비슷하게 물건을 사버리도록 끊임없이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먹는 거든, 입는거든...


기본적으로 광고라는 것은 짧은 시간에 브랜드나 상품정보에 관한 인상을 남겨야 하므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소비자에게 공격을 가한다. 제한되는 건 돈과 시간일 뿐이지 기술적 제한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대부분의 이러한 지적에는 < 전혀 그런 의도없다. 그것은 음란한 억측이다>라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이런 수법은 거의 무제한적으로 활용되어진다. ( 미국에서는 먹거리광고에서 직접 먹는 광고는 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이 정도로 의식조작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


 서구패션의 아시아 공략


아시아시장이 급격히 발전하고, 1990년 초기를 전환점으로, 소비의 문화에서 정보의 문화로 시장추세가 바귀어가자, 미국의 비롯한 서구의 패션시장은 만세를 불렀다. 아시아시장이 침체되어 가던 패션시장을 먹여 살렸던 것이다.


일본은 돈이 많으니깐(씨바 빽 하나에 100만원씩하는 루이비통의 전 생산량의 70퍼센트를 일본에서 해치운다) 그렇다고 쳐도, 중국인민의 일년 평균급료는 150만원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구치니 입셍로랑이니 칼빈클라인 같은 게 없어서 못판다는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뇬들은 미쳤나?


아니다.


내마누라, 내 앤, 내 여동생이 미쳤을 리가 없다. 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이미지조작에 넘어가고 있을 뿐이다. 좌측의 그림을 잘 봐주시기 바란다. 여자들이 팔짝 뛰는 구찌의 선전이다.


여자의 목덜미 부분을 주목하시기 바란다. 불룩하게 두개의 알이 보이고 그 알을 중심으로 불룩하고 서 있는 조시 보이는가?


이거 완전히 남성성기다.


거대성기(혹은 불끈 서있는 성기)는 옛부터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고 옆에 넘어지는 멍청한 남자는 넘어지고 있는 부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딴지 독자들이라면 단박에 이해 하겠지만, 일부 민간인들은 <니가 그런 생각을 하구 보니깐 그렇게 보이는고야...>라 생각하는 의심많은 넘덜을 위해 좀더 설명하면...


실은 이러한 성기 삽입장치는 옛날부터 사용되어 왔다. 깡 마른 예수의 복부를 잘 보시기 바란다. 복부의 그림자를 이용한 거대한 성기 삽입이다.


이러한 효과는 거대 성기에 대한 경외감(다분히 프로이드적인..)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남성들에게 예수를 판매하기 위한 상술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구찌의 선전 이미지는 <이제부터 가정의 왕초는 너다>라는 메세지와 함께 구찌를 사는데 방해를 하는 남편(혹은 금전사정)은 날려 버려라! 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흔히 생각하기에 남성성기는 여성에게, 여성성기는 남성에게 강력한 인상을 줄 것 같으나 실은 그 반대다. 더 강력한 터부일수록 더 강력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아래의 그림을 봐주기 바란다.


왼쪽 그림은 에포카사의 패션광고 이다. 왼팔 겨드랑이 부분의 과장된 여성성기의 형체가 보일 것이다.


아래 그림은 솔드 플렉스사의 남성을 위한 운동기구 선전이다. 남자의 복부 부분을 자세히 보시기 바란다. 복부 좌측에 남성 성기 모양이 보일 것이다. 


이 선전도 마찬가지로 성기 삽입으로 인한  효과를 노리고 있다.


최근 남성 상대의 제품에 게이(남성동성연애자)의 이미지를 삽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성애 남성에게 게이는 마치 전염병자라도 되는 양 옆에 있으면 퍼뜩하구 놀라는 이미지이고, 뇌에 가해지는 충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상품의 선전효과는 커지기 때문이다.


이 선전의 더욱 더 가증스러운 부분은 의도적으로 이러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는 건데...



고통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메타언어 삽입>이다.


<똥꼬가 찌게지는 고통없이는 동성연애를 할 수가 없다> 라는 이중적인 언어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왼쪽 어깨의 새도우 처리를 잘보시라, 남성의 엉덩이처럼 보인다.


우측 그림은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선전으로 어떤 넘이 여잔지 구별할 수 없다.


키스 하기 직전의 사진으로 성의 구별을 할 수 없는 독자는 혼돈스럽다.


모스키노의 선전을 보면 더욱 더 교묘하게 이러한 장치가 되어 있는데,


위에 솔드 플렉스사처럼 유치하게 언어로 이러한 상징성을 노리는 것이 아닌, 손의 상징성으로 호모 섹슈얼을 표현했다.


좌측 사진에서 오른쪽 동성애자는 성기 부위에 엄지 손가락을 세워 < 난 지금부터 네 똥꼬에 삽입 할꺼야> 이미지 처리,


우측 사진에서 왼쪽 레즈비언은 <몸의 밀착>을 통해 동성애 행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심벌기호 표현은 아주 많은 광고에서 볼 수 있는데 아래의 랄프로렌의 선전을 보기 바란다.


졸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가 버클의 구녕 안으로 손가락을 넣으려 하고 있지 않는가...


여기서 손가락은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그대로 남성의 성기를, 허리띠는 성의 속박을, 반이 쪽 갈라진 배꼽은 여성성기를 상징하며 <니네가 아무리 막아봐 내가 랄프로렌 안사나..> 하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성적 이미지를 차용해서...


이러한 메타언어적인 공격은 비단 광고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가까이 에서 접할 수 있는 음악에도 이용되는데, 예를 들면, 마이꼴 잭순의 같은 것이다.


본기자 어렸을때 <삐리~ 삐리~>하며 뭔 뜻인지두 모르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지금두 졸라 열심히 들어 볼라구 노력 했지만 < 아무도 빗잇을 하구 싶지 않다 >라는 것 밖에 안들린다. 사전적 의미로 Beat it은 <음악의 Beat>, <누군가를 때리다.>, <헐뜻다>, <체제를 타도하다> 등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딸딸이 치다의 <치다>다.


아.. 씨바 갑자기 인류의 보편적 동질감에 대한 감동이 밀려든다. 미국넘덜두 딸딸이는, <치는>거시었던 거시다.


이 마이꼴의 대 히트곡은 <동성애자의 자위파티에 모인 청년>을 주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래 참고 비디오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보아주기 바란다. 한무리의 청년들이 (여성은 한 사람도 없다) 커다란 방 안에서 전원이 일제히 넓적다리 사이를 오른손으로 뒤트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Beat it >





이러한 장치들은 한 눈에 쉽게 판단할 수 없게 교묘한 방식으로 숨겨져 있다. 아무도 일부러 보려 하지 않고, 또 보려고 하더라도 쉽게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외국광고는 화끈하구 그로테스크하구.. 뭔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 적은 없는가? 물론 외국 광고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광고기법을 써먹기 시작한 원조들이 그 놈들이니까, 국내 광고보다 월등히 이런 부분으론 발달해 있다.


특히 요사이, 우리 식으로 바뀐 광고가 아닌, 외국 광고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엘루 인터내쇼날> 같은 잡지는 아시아 각국에서 조금씩만 바꾸어 동시판매를 한다. 그렇다면 요즘 두꺼운 여성잡지 속에 이런 광고는 몇 퍼센트나 될까?


아시아는 양넘들의 봉이라고 스스로 자학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광고에 무의식을 점령당한 아시아 여성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이러한 상업미술에서 의도 일부러 읽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광고는 점점 교묘하게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정의하려고 하고, 그걸 대하는 독자는 그냥 흘려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고가 어디 한 둘인가.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오늘날 어떤 영상을 대할 때는, 그리고 그 영상이 어떤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 광고와 같이 - 일부러 그 영상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러 읽지 않는 영상은 <사이공의 처형>처럼 전혀 다른 사실이 전달된다.


그리고 그것이 그저 광고를 보고 충동구매로 연결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진실을 덮어버리는 꺼풀이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목적을 가진 자들이 만들어 낸 영상에 의해 대중이 휘둘리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매한 대중을 말이다.


휘둘린 소비자..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매한 대중이 되는 걸 당신은 원하는가 ?


오랜만에 희한한 기사 하나 들도 복귀한 일본특파원 맨뒤
( mandui@netplus.co.j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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