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Don S. Bay 추천0 비추천0






1999.4.19.월

인도네시아 특파원 Don S. Bay



 


귀신잡는 해병대, 기생잡는 야비군이란 말이 있다. 이거 틀린 말이다. 해병대가 귀신잡았다는 보도를 한번도 들은 적 없는 것은 물론, 간첩이 출몰할 때마다 생업을 중지하고 산과 들을 누비며 수색작전에 참여한 예비군들이 적지 않고 지난 해 여수 간첩선 출몰사건 때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장불량은 기본에 교육 중에도 항상 밥먹고 합시다를 외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우리의 이웃 예비군, 그들은 누구인가? 동원 끝난지도 오래된 본 기자, 기억을 더듬어 첫 동원훈련 경험담을 통해 예비군들의 정체를 유추해 본다.





재수가 없었는지 정적 현역 시절에는 한 번도 참가해 보지 않은 팀스피릿 훈련이 내 첫 동원 예비군 훈련이었다. 아직 찬바람이 쌩쌩 부는 2월 중순, 6.25 당시 소위 마의 삼각지대였다는 철원으로 향하는 내 발길은 영 내키지 않았다.

소집일 오후에 도착해 보니 절로 한숨이 푹푹 나온다. 물어물어 찾아온 숙영지는 인근 소도시나 읍에서도 다시 산 넘고 물 넘어 들어온 첩첩산중이었고 다가오던 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살을 에는 찬바람만이 산골짝을 몰아치고 있었다. 오히려 제대로 지어진 막사랑 장교 숙소가 있던 현역시절이 그리워졌다. 물 좋은 서부전선에서 근무했던 내가 어쩌다 이런 중부전선 산골짝으로 밀려났나 생각하니 새삼 빽없는 슬픔에 목이 메어왔다.

당시만 해도 45세까지 동원훈련을 들어가야 했던 예비역 장교들은 사병소집일 하루 전에 소집되었는데 그래서 내가 도착하여 입소신고를 한 숙영지는 그날 백발이 성성한 노친네들로 들끓었다. 제대 1년차인 나는 JSA도 아닌데 부소대장 보직을 받았고 당연히 말단소총 소대 소속이 되었다. 동원 1년차 신출내기 부소대장은 고참장교들 주전자에 물떠다 주고 장기판 깔아주는 등 부대가동을 위한 매우 핵심적인 임무를 맡고 있었다.

"우리 예비군 아저씨들 다들 잘 알아서 하니까 우리 장교님들은 그저 조금씩만 거들어 주시면 돼요."

사람 좋아 보이는 중대장이 친절하게도 존댓말을 쓰면서 가르쳐준 우리 소대 위치는 숙영지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 가까운 곳이었다. 같은 예비군이면서도 군번은 몇 년 빠른 선배 소대장이 빈둥거리며 해대는 잔소리를 들으며 A형 텐트를 치는 마음은 당연히 우울했다. 옛날 같으면 당번병이 다 해줬을 텐데...눈물이 앞을 가로 막는다.

"자, 이제 우리 예비군 아저씨들 들어옵니다. 자, 장교님들, 이쪽으로 서서, 예, 그래요, 그리고 박수치세요."


다음 날 아침 대대본부 앞 공터에 긴 버스행렬이 들어오자 대대장은 예비역 장교들 등을 밀며 박수치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나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드디어 우리 예비군 병사들이 버스를 내리는데 그들이 입은 옷은 군복인지 사복인지 잘 구분이 안되는 모호한 복장들이다. 해가 거듭되면서 익숙해질 수 있었지만 아직은 그런 모습에 눈쌀이 찌푸러졌다.

"그런 짓 하면 욕먹어. 여기서 무사히 나가고 싶으면 다 현역들 시키고 넌 뒤에서 조용히만 있으면 돼."

3중대 3소대 이쪽으로 정렬하세요...


이런 소리를 하던 나를 황급히 뒤로 잡아 끌던 소대장이 한 말이다. 아니 소대장이면 소대지휘를 해야지, 소대원 이름도 외우고 면담도 해서 신상조사서 같은 것도 받고, 군생활 잘할 넘인가.. 아니지, 예비군 훈련 잘 받을 넘인가도 확인해야 되고...그런데 소대장은 그게 아니란다.

정말 그게 아니었다. 장비 수령 마치고 보급품 나누어주고 하면서 하루가 후딱 지나가고 벌써 밤이 어둑어둑한데 우리 예비군 아저씨들은 치라는 텐트 치지 않고 텐트날개 깔고 앉아 소주를 까고 있다.

"여~, 소대장, 술 한 잔 하세요."

"우리 자동소총순데 여~, 소대장??"


발끈하려는 나를 제치고 우리 고참 소대장은 건네주는 술잔을 기분좋게 받아 마신다. 이거…한국군대 맞아? 이건 꿈이야, 그럴 수가 없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자꾸 그럴 수 있는 쪽으로 흘러간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비가 올 거라며 텐트 빨리 치라고 중대장이 그렇게 목이 쉬도록 떠들었지만 어제 미리 쳐놓은 장교들 텐트 말고는 빗줄기가 굵어질 때까지 제대로 서있는 텐트가 없었다. 어, 그런데 예비군 아저씨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마치 도깨비 장난처럼 갑자기 뚝딱하는 사이에 텐트들이 세워진다. 야산 기슭에는 그 짧은 시간에 판초우의까지 덮고 나뭇가지 위장에 배수로까지 판 제대로 된 텐트촌이 금방 들어선다.


옛날 현역시절 데리고 있던 애들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시 우리 소대는 운전병, 영사병, 테니스병, 사진병, 보일러병, 공관병에 00J 특기번호를 가진 일어 통역병까지 거느린 가히 엽기적인 부대였으므로 하는 일의 특성상 텐트 칠 일은 다들 개인적으로 아침마다 한번 씩 치는 거 말고는 당연히 없었다.

그런 생각하고 있는 사이 저 아래쪽 비탈에 있는 텐트 하나가 세차게 퍼붓기 시작한 빗줄기에 폭삭 무너져 버리고 만다. 아하! 저 4소대 석사장교들... 아까 낮에는 훈련 그렇게 혹독하게 받았다고 뻥치더니 텐트까지 혹독하게 무너지고 마는군...쯧쯧. 4소대원들이 텐트 입구에서 빼꼼히 내다 보기만 하고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하늘이 뚫린 것처럼 퍼붓는 2월의 폭우 속에서 두 석사장교가 텐트날개를 부여잡고 버둥거리는 동안 밤은 점점 깊어지고 기온은 점점 떨어졌다.

아침이 되니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2월의 산골짝에서 맞이하는 영하의 아침. 아! 이건 정말 불공평하다. 남들은 예비군 훈련 쉬러 가는 거라더만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람! 빽 없는 사람은 하늘도 봐주지 않는건가? 하늘이 무심하다. 부스스 움직이는 예비군 아저씨들 동작은 더욱 굼떠지고 장교들은 오늘따라 더 늙어 보인다.


그리고 보니 면도는 커녕 세수도 안 한 지 벌써 이틀째다. 하긴 이 추위에 세수는 무슨...가능하면 화장실도 가고 싶지 않지만 그 것만은 어쩔 수 없다. 간부화장실이라고 푯말은 붙어 있지만 그런 거 지키면 예비군이 아니다. 하지만 볏단엮은 멍석같은 걸로 칸막이한 화장실보다 그 주변에 마른 풀들이 은폐와 엄폐를 제공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대인지뢰를 가설하는 예비군 아저씨들 머리꼭지가 더 많이 보인다. 보소! 여긴 내가 먼저 맡았다이~~, 니는 딴데 가라카이. 워매, 징해 부리네, 같이 좀 누잔께… 뭐 이런 소리도 들린다. 오, 하나님…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중대장이 날 보고 사격통제 보조하라고 할 때부터 기분이 찜찜했는데 저쪽 석사장교가 좌선 사격끝을 외칠 때에도 내가 맡은 우선에는 아까부터 버벅거리던 한 예비군이 자꾸 신경질적으로 탄창을 두들겨 대는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우선!?" 중대장은 지금 유일하게 찬 땅바닥에 배 깔고 엎드려 있는 그 예비군을 뻔히 보면서도 그런 질문을 해오는데 나도 알고 보면 오기있는 장교다.



"우선~~~ 사격중!!!"

"장교님, 여기, 이거 안 나가는데요??"


그 예비군이 총구를 휙 돌리며 나를 돌아보는데 꽝! 하는 소리가 나며 사로 중앙에서 사격 통제하던 중대장을 비롯해 사로 뒤에 물러서 있던 예비군들이 입소 이래 처음 보는 전광석화 같은 동작으로 바닥에 찰싹 업드린다. 오...마이 갓!! 내 머리 위, 사로 양철지붕에 총알구멍이 나 있고 그 예비군은 연기가 피어 오르는 총구를 하늘로 향한 채 사색이 되어 어깨를 잔뜩 움추리고 있다. 난 아직도 멍멍한 귀를 문지르며 그에게 다가가 총을 뺏어든다. 그리고 바닥에서 간신히 고개를 들고 있는 중대장을 노려보며 준엄한 목소리로 소리지른다.



"우선~~~, 사격 끝!!!"


다시 땅거미가 질 무렵 아랫 동네 이장이라는 분이 저녁식사를 하는 숙영장에 찾아와 대대장에게 삿대질까지 해가며 항의가 한창이다.


"아무리 훈련이라도 그렇지. 여보쇼. 거 예비군들 똥 좀 아무데나 싸지르지 말라고 좀 해욧! 나 원, 예비군훈련만 있으면 우리 동네사람들 산에 못올라 와요. 똥 밟을까봐. 게다가 요번엔 전에 비해서 왜 양도 그렇게들 많아?"

대대장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이장에게 당할 일은 그날 밤 그것으로 다 끝난 게 아니었다. 밤이 깊고 기온이 더 내려가면서 예비군들은 다시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동네에 내려가 따끈한 라면이라도 얻어먹고 오자는 고참소대장 말에 야상에 목도리에 방한모까지 꺼내 단단히 무장하고 텐트를 나섰다. 중대 숙영지는 마치 캠프파이어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나무 꺾어다가 불을 지피느라 난리고 또 한쪽에서는 가방 한 가득 소주를 넣고 입소한 우리 선임
하사가 다른 소대원들까지 불러다 놓고 술 마시며 고스톱판이 한창이다.


산길을 중간쯤 타고 내려오니 이미 동네에서 라면 먹고 올라오는 예비군들이 장사병 다 합쳐 1개 중대는 된다. 왼쪽에는 버려진 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마당에서도 한 무리의 예비군들이 불을 지피고 있었다. 저거..., 남의 집에서 저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라면 다 먹고 올라오는데 아까 그 집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뭐, 엄밀히 말하자면 뗄감이 떨어진 예비군들이 어차피 사람도 안 사는 집이다 싶어 문짝이며 가구를 끌어 내다가 몽땅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지붕을 뜯기 시작한 사람들도 보였다. 좀 심한 행동이긴 했지만 그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날 밤의 추위는 무척이나 맹렬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예의 이장이 이번에는 연대장을 찾아가 강력히 항의를 했고 연대본부에 불려간 대대장은 재산피해를 보상하겠다는 각서를 연대장과 함께 연서로 서명하고 돌아와야 했다. 연대장에게 쪼인트 몇 번 맞은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종일 뚱한 표정이던 대대장에게 미안해서인지 그날 밤은 아무도 사고를 치지 않았다. 그것이 그 야산기슭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고 다음 날 동트기 전 예비군들은 숙영지를 정리하고 다음 숙영지로 행군에 나섰다. 텐트로 가득찼던 산기슭은 이제 다시 제 모습을 찾았고 텐트를 거두면서 옆방 담요들을 허락없이 빌린 게 들통난 소대원들 사이에 잠시 승갱이가 일기도 했다.



"중대장님요. 참말로 완장군장 해야 되는 겁니껴?"


예비군들의 파상적인 항의성 호소에 어쩌지 못한 중대장은 알아서 해라는 묘한 여운을 남기는 대답을 했고 그래서 알아서 군장을 꾸려 짊어지던 나를 다시 고참 소대장이 만류했다. 이제 벌써 4일차니까 제발 정신차리고 고문관 노릇하지 말라는 충고를 덧붙이면서. 그래도 예비군 중 일부는 군장을 제대로 챙겨 행군에 나서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우리 날라리 장교들을 중심으로 투철한 예비군 정신으로 무장한 대부분은 단독군장으로 40km 행군에 올랐다.


남은 군장들과 개인 가방들은 설영대가 다음 숙영지로 옮겨다 주기로 되어 있었다. 숙련된 예비군들의 고도로 발달한 행군기술은 현역들이 보면 혀를 내두를 만한 것이다. 전술 행군이란 원래 전술적인 행동을 하면서 은폐 엄폐물을 이용해 가능한한 적이 아군의 이동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적에게 불의의 기습을 받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산개하여 부대가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음...아마 맞을 거야...)

그런데 예비군들의 행군 중 전술행동은 그들을 얕잡아 보던 나의 의표를 찔렀다. 출발할 때에는 동시에 출발한 1개 대대가 40 km의 10분의 1도 가기 전에 아이스크림이 녹아 내리듯 3-5명 단위로 쪼개지면서 감쪽같이 산개해 버렸다. 적의 눈을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같이 출발했던 소대원들의 눈앞에서도 증발해 버리고 만 것이다.

어쩌다 보니 부지불식 중에 구사하게 된 예비군식 전술행동 덕택에 나도 어느새 본대를 벗어나 우리 고참소대장을 비롯한 서너명의 장교들과 함께 그 지역에서 현역생활을 했다는 고참 예비역 중위를 따라 산길을 털렁털렁 걷고 있었다. 햇살이 찬란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다가 도착한 목적지는 어느 야산의 공동묘지였는데 금잔디가 아름답게 깔려 벌써 기울기 시작한 짧은 햇살을 눈부시게 반사하는 곳이었고 벌써 동작 빠른 예비군들 상당수가 대충 알아서 도착해 있었다. 우린 그 금잔디 위에 누워 지난 밤 추운 텐트 안에서 제대로 못잔 잠을 보충했다.

행군 중 본대를 상실한 대대장은 대대기수와 기간병 몇 명을 거느리고 씩씩거리며 숙영지에 들어왔고 낮에 산개한 대대원들은 해가 진 다음에도 속속 도착했다. 불쌍한 중대장들은 대대장에게 한참 욕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정작 문제는 남겨 둔 군장을 싣고 와야 할 설영대가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엔 대부분의 텐트와 담요가 실려 있었다. 우리가 목이 빠지도록 기다린 설영대는 그날 밤 결국 도착하지 않았다. 행군 때문에 열 받은 대대장, 이번에는 설영대 때문에 예비군들에게 면목을 잃어야 했다.

기온이 다시 영하로 떨어지면서 우리 장교들은 다시 한 번 투철한 예비군 정신을 발휘하여 기간병들이 메고 온 텐트 날개 두 장을 빼앗아 A형 텐트를 하나 세우고 네 명이 들어가 잠을 청했다. 네 명이 모로 누워 칼잠을 자는 우리 텐트는 터질 것 같이 비좁았고 짬밥에 밀려 한쪽 구석에 밀려난 나는 차가운 텐트가 얼굴을 스쳐 밤새 잠을 설쳐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불편한 자세 때문에 일찍 일어난 우리들은 정말 대단한 광경을 목격했다. 이제 막 새벽 다섯 시가 넘은 시간이라 세상은 아직 어둑컴컴했지만 변변한 텐트 하나 제대로 서 있지 않은 넓은 숙영지에는 꺼져가는 모닥불의 잔해들만 간간히 보일 뿐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지난 밤 텐트 안에서 자던 우리들도 추위 때문에 그렇게 뒤척였는데 이렇게 노천에서 자던 예비군들 중 동사자라도 생겼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예비군 아저씨들도 이제 부스스 눈을 뜨며 새 아침을 맞으려 하고 있었다. 바위 사이에 몸을 웅크리고 자는 사람들, 야전삽으로 땅을 파 맨땅에 지푸라기만 깔고 버려진 비닐 하우스의 비닐이며 카톤박스 종이를 덮고 자는 사람들, 꺼져가는 모닥불을 교대로 지키면서 그 주변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새우잠을 자는 사람들, 심지어 아무것도 없이 서로 부둥켜 안고 추운 밤을 지낸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모두 피곤하고 지친 표정이었다.



"소대장님들요! 이리 오이소. 추울 때 쐬주가 최고라 안캅니꺼."


밤새 소주를 마시며 버텼는지 작은 모닥불 주변에 눈이 벌겋게 충혈된 한 무리의 사람들 틈에서 우리 선임하사가 소주병을 흔들며 지쳤지만 쾌활한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대대장에게 미안했다는 거다. 그들은 그 전날 혹독한 추위 때문에 남의 가재도구까지 불태워 이장과 연대장에게 면박을 당한 대대장이 민망스러워 지난 밤 결국 한 명도 숙영지를 이탈하지 않고 이 추운 벌판에서 영하의 밤을 텐트 한 장 없이 버텨 냈다는 것이다. 물론 민가가 좀 멀리 떨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심전심이었는지 전 대대에 한 명도 예외가 없었다는 것은 놀라운 단결력이었다. 좁은 텐트 안에서 불편한 칼잠에 밤새 불평했던 우
리 장교들은 그때 정말 부끄러운 마음에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설영대가 그날 오전에 도착하고 죄없는 설영대 운전병들이 대대장에게 속절없이 쪼인트를 맞으면서 계속된 동원훈련 후반부는 다시 개판을 죽였지만 그날 예비군들은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현역 못잖게 할 수 있다는 저력을 보여 준 것 같다.

그 동원 예비군을 이제는 장교들도 일곱 번만 들어가면 되는 것으로 오래 전에 제도가 바뀌고 나는 그나마 지사로 발령받으면서 마지막 해 동원훈련을 놓쳐 버렸다. 이젠 향토예비군이 된 거다. 뭐...시원섭섭하다.



 


- 갑자기 엽기국방부 예비군동원파트로 놀러 온
인도네시아 특파원 Don S. Bay ( donsbay@cbn.net.id )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