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4.19.월
더 어렸을 때에는 고양이도 한 마리 있었는데 항상 기와집 지붕 위로 돌아다니다가도 밥을 내놓으면 어디선가 나타나곤 했지만 며칠씩 보이지 않는 날이면 나는 마루에 앉아 애타게 기다리기도 했다. 아마도 제 짝과 살만한 다른 곳을 찾았는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고양이가 개보다 정이 없는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휴전선까지 불과 몇 km 남겨둔 전방지역에서 처음으로 혼자 잠을 이루어야 했던 그 날 밤, 문밖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는 마치 아기 울음소리 같았는데 전방부대 수풀 우거진 한 외곽시설에, 그것도 칠흙같은 한 밤중에 갓난 아기가 버려져 있을 리는 만무했다. 어딘가 구슬픔마저 느껴지는 그 스산한 소리가 또 다른 아기 울음소리들과 어우러지며 내 방문 밖을 자꾸 어른거리기에 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교배기에 이른 고양이들이 그런 소리를 낸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날 밤 나는 방문 앞에 오랫동안 쭈그 그래서 그 중 밤색 털 고양이를 밤탱이, 호랑이 축소판처럼 생긴 넘을 얼룩이라고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늘 혼자 잠자리에 들어야 했던 나는 그 두 마리를 바라보며 밤마다 얘기도 걸어보고 식당에서 음식도 챙겨주면서 무척 정이 든 반면 내 방을 청소해 주던 소대원들은 질색을 했던 것 같다. 고양이들이 방안에 배설물을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1년에 두 번 털갈이를 하는 몇 주 동안 내 방은 매일 한웅큼씩은 될 고양이 털이 날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양이는 개보다 정이 없는 동물이야...어릴 적 밤마다 기와집 지붕 위를 바라보면서 키우던 고양이를 기다리며 가졌던 그 느낌이 새삼 떠오르며 오랫동안 섭섭해 했다. 부대 장교들 모시는 것도 쉽지 않은데 소대장 고양이까지 상전 대우해 주는 게 고까웠을 것임을 나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는 말 한 마디 하면 됐을 걸...다짜고짜 고양이를 나무에 매단 소대원들은 그때까지 한번도 동물을 키워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들 보기에 내가 부하들 요청을 귓전에 흘리는 오만하기만 한 소대장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후 선임하사가 개 한 마리를 찝차에 싣고 왔다. 소대원들이나 내게 대충 할아버지뻘이 되는 김상사는 사단사령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맛있어 보이는 개가 도로변을 배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입맛을 다시며 유괴해 온 것이다.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대원들에게 그렇게 말하던 김상사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침 고양이들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쓸쓸해 하던 내게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내무반 앞에 가만이 앉아 짬밥 찌꺼기를 얻어먹고 있던 이 흰털의 순한 개가 너무 반가웠기 때문이다. 개 때문에 김상사와 한번 말다툼까지 해야 했지만 결국 문산에서 보신탕 거하게 사드리는 조건으로 흰둥이를 넘겨 받을 수 있었다. 그날부터 내 방에는 고양이털 대신 개털이 휘날렸다. 심지어 아침에 내가 상황실에 들어설 때마다 따라 들어와 책상 밑에 자리를 잡아 장교들에게도 귀염을 받았다. 하지만 너무 나를 따라다녀 가끔 멸공관에 고위장성이 행차할 때에는 내 숙소에 가두어 놓아야 했다. 흰둥이는 생리현상이 급해지면 짝이 잘 안맞아 완전히 닫히지 않는 내 숙소 문을 스스로 앞발로 차고 뛰어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누군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릴 줄도 아는 영리한 개였다. 김상사로서는 속 터질 노릇이겠지만 어린 소대장 계급에 눌려 입맛만 다실 수 밖에 없었다. 그 때에 이르러서는 소대원들이 내무반 옆에 개집까지 지어주었지만 가을이 깊어지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내 숙소 연탄난로 옆에 새끼줄로 엮은 큰 바구니를 혼방으로 따로 만들어 주었다. 와~~앗!! 만삭이던 흰둥이가 나 없는 사이에 새끼를 두 마리나 낳은 것이다. 술이 다 깼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을 가만히 집어 드는데 엄마인 흰둥이는 걱정스러운 눈치로 낑 하며 앓는 소리를 낸다. 걱정 마, 조심할께. 나도 나중에 내 아이들을 갖게 되었지만 갓 태어난 생명을 보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새끼들은 신기하게도 엄마 흰둥이의 흰털을 바탕으로 아빠 누렁이를 닮은 누런 색 점들이 큼직큼직하게 머리며 몸통에 몇 개씩 박혀 있었다. 한 놈은 숫놈, 다른 한 놈은 암놈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군생활을 한 노병 김상사의 말에는 전혀 악의가 묻어있지 않았지만 개들 걱정 말라는 부분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개들은 내게 부대를 떠난 후 차례 차례 식탁에 올랐다는 것을 후에 전역한 소대원들에게 듣고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어느 정도 자란 두 마리의 새끼 중 한 마리를 전역하는 날 안고 나와 뜰 있는 집에 살고 계시던 외삼촌 댁에 억지로 맡기는 것 뿐이었다. 아마도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우리 집 뒷뜰에서 쥐약 먹은 쥐를 잡고 죽은 지난 겨울 서울출장 중 어느 일요일 아침, 집에서 석 달 째 키우던 토끼가 죽었다. 매일 먹이를 주고 정성을 쏟았던 아내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이들은 어? 죽었네? 하며 놀라지만 그렇게 정서적인 충격을 크게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아내는 전날 밤 특별메뉴로 토끼에게 처음 준 쑥갓이 원래 먹여서는 안되었던 것 같다고 말하며 이내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된다. 나는 나대로 추운 겨울 다들 잠든 밤에 회사에서 가져온 일을 한다며 창문도 열지 않은 거실에서 며칠째 담배를 피워댔으니 문간에 있던 토끼가 질식해 죽었을 것 같다는 확신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작은 애 지현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기도를 시작한다.
처음엔 장난끼가 잔뜩 묻어나던 지현이 목소리가 갑가지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먼저 울음을 터뜨리는 건 수현이부터였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우리 아들 수현이도 사실은 토끼에게 정이 들대로 들어 토끼의 죽음에 그 작은 가슴이 시리도록 아파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대도 남자라고 애써 내색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찬 겨울아침의 공기가 옷깃을 저미게 하는 오금공원에서 울고 있는 두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아이들의 울음에서, 그 눈물에서 전염되는 슬픔이 내 마음도 적셔 왔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동물에게 정을 주고 그 불행을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아이들의 예민한 감수성과 그 착한 마음 역시 따뜻하게 전해져 왔다.
공원을 내려오면서도 걱정스러운 듯 토끼의 나뭇잎 무덤을 자꾸 뒤돌아보던 지현이가 한 말이다. 이미 잊혀진 것 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순수가 아이들의 동물사랑을 통해 투영되는 것을 발견하면서 어려운 시기에 더더욱 가족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아울러 이미 가족이 된 것과 같은 동물들을 길거리에 내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아도 개나 고양이들은 때로는 어이없이 때로는 처참하게 쉬 죽게 되곤 하지 않는가..
- 논설우원 Don S. 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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