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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 지난밤, 고인을 찾는 이는 없었다

 


2009년08월20일  

 

 

기자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김대중 대통령 빈소를 찾은 것은 19일 밤 12시경이었다. 이제 오늘 낮이면 입관을 하고 국회 빈소로 옮긴다는 말에, 조금이라도 개인적인 느낌으로 그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둘째 날 밤이니 그 동안 정신을 수습하고 문상을 온 많은 지지자들과 국민들을 만나게 될 거라는 예상, 그래서 한 두 시간 정도 줄을 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대비를 하고 떠난 길이었다. 특히 노무현 서거 당시 봉하마을과 분향소의 상황을 지켜본 입장에서, 설사 그보다는 덜하더라도 추모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가 막상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장례식장 입구는 놀랍도록 한산하기만 했다. 너무나 뜻밖의 분위기에 내가 제대로 찾아 온 건지, 혹시 다른 입구나 줄이 있는 건 아닌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는 경찰 두어명이 설렁거리며 서 있었을 뿐,
조문객의 행렬은커녕 들고나는 이조차 거의 없다
 
 

 

 

지하 2층에 위치한 빈소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그러나 내부에도 조문객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면 정면에 바로 빈소가 있다.
그러나 보는 것처럼 찾는 이는 거의 없었고, 이곳이 거인 김대중의
빈소라는 사실을 전해주는 것은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군인 뿐이었다.

 
 


허망한 화환만이 복도를 칭칭 감아 늘어서 있다.

 


밤 12시라는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기자는 이 광경을 보면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비현실감과 충격에 사로잡혔다. 여기는 천하의 김대중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그리고 이제 돌아간 지 불과 이틀째 밤일 뿐이다. 그런데 찾는 이가 아무도 없다니.
 
얼마 전 모 방송사 이사 출신인 기자의 친척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도 빈소는 밤새도록 북적거렸다. 물론 낮에는 수천 명이 다녀갔다고 하지만, 김대중의 빈소에 이렇게까지 조문객이 뚝 끊기는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새벽 3,4 시도 아니고 밤 12시일 뿐이지 않나.
 
기자와 함께 이곳을 찾은 오랜 친구 모 교수도 당혹스러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석연치 않아 발길을 돌려 서울광장으로 가 보기로 했다. 아마도 세브란스의 빈소는 일반인들에게는 들어서기 좀 부담스러운 장소일지도 모른다. 좀 편한 마음으로 분향소를 찾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택시를 잡아타고 시청 앞에 내려서 본 광경은 아래와 같은 것이었다.
 
 

 

 

분향소 표지판. 뒤쪽 넓은 잔디밭에 수십 명의 시민들이
마치 열대야를 피하러 나온 사람들처럼 삼삼오오 앉아 있다.

 
 

 

거대한 천막들은 불만 환히 밝혔을 뿐 조문객의 행렬은
전혀 없이 텅텅 비어있다.

 

 

 분향소 쪽은 크레인으로 정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자와 동료는 이 광경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볼 수 있을 뿐이었다. 분향소 정비 작업으로 인해 분향이 일시 중단되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현장에 와서야 비로서 알 수 있는 거다. 아무리 야심한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김대중의 분향소가 이렇게 썰렁한 상태가 되어 있을 수 있냔 말이다.
 
와중에 분향소 앞에는 한 노인이 ‘빨갱이 새끼가 죽었는데 왜 이렇게 하고 지랄이야!’ 라고 끊임없이 소리치고 있다. 말리는 이도 없고, 말릴만한 인원도 없다.
 
…노무현 때와는 너무도 다른 이 모습. 물론 노무현 서거의 경우 다들 알다시피 특별한 면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김대중이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대중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불렸던 바로 그이다. 매 대선 때마다 승패를 떠나 수천만 표의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다.
 
모르겠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혹시 연로했던 고인의 죽음을 그저 노령에 의한 자연사이자, 심지어는 ‘호상’이라고들 여기는 걸까. 노무현의 죽음으로 몸의 반이 무너지고, 민주주의의 후퇴가 분하고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로하고 간 그의 죽음이?
 
아니면 일련의 크고 작은 죽음들에 이제 다들 지친 걸까. 진이 빠져 버려 늦은 밤까지 그를 찾을 힘이 없는 것일까. 혹은 패배감과 상실감이 이다지도 큰 것인가.
 
그렇다고 해도 의리가 있는 거다. 버스를 대절하고 와서 자진해서 상복을 입고 빈소와 분향소를 지키고 있을 거라고 여겼던 그 많던 옛 동지와 지지자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정승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가득해도 정승이 죽으면 상가집이 텅 빈다더니, 과연 김대중을 대상으로도 그런 말이 성립되는 것인지… 기자와 친구는 다양한 여러 가지 논리로 이 상황을 설명해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세브란스에서 기자는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빈소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젊잖게 차려 입은 중년 신사 두 사람이 기자 바로 앞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들이 빈소 앞에서 티비 카메라를 발견하자 이렇게 말하고는 황급히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다.
 
‘야 카메라 있다. 가자.’
 
물론 이것이 서울광장을 포함한 전체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2009년 현재 우리나라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모습임에는 분명하다. 차라리 전두환 김영삼 이명박은 직접 올 수 있더라도, 중간의 어정쩡한 사람들은 오히려 불이익이 두려워 문상조차 오지 못한다. 실제 불이익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류의 공포심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게다가 이제, 오랜 세월 그런 류의 두려움을 걷어내 주곤 했던 투사이자 어른 김대중은 가고 없다. 예컨대, 이미 죽어 나를 지켜주고 구원해 줄 수 없는 메시아는 더 이상 메시아가 아닌 거다.
 
머 꼭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마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기자 조차도 세브란스를 꼭 가봐야 하는 건지 잠시 주저했었고, 서울광장에 나 아니어도 많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다들 지치고 피곤하다. 또다시 울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의 죽음에서 의미를 찾고 전의를 다지는 것도 사실 힘든 일이다.
 
하지만 기자가 어젯밤 돌아본 자정 무렵의 두 곳은 너무도 외로웠다. 웬만한 대기업 임원의 것보다도 썰렁해 보인 빈소. 크레인 아래 덩그러니 걸려 있던 고인의 영정과 그 주변에 삼삼오오 돗자리를 깔고 무심하게 앉아 있던 시민들.
 
물론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진다고 하고 또 영결식은 정부와 각계 요인들이 가득한 속에서 성대하게 거행되겠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가식과 체면의 모습이 아닌, 진정으로 김대중에게 남은 우리들의 마음은 이게 다가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감싸고 돌았다.
 
대통령까지 했지만 실은 언제나 비주류였던 고인. 잃어버린 10년의 수괴로 매도 당하고, 한때의 ‘평생’ 동지로부터 정신병자로까지 비아냥을 사야 했던 그. 평생 쌓아온 민주의 여정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까지 현재의 최고 권력과 각을 세우고 비판과 통한의 말을 서슴지 않았던 원로.
 
이런 냉혹한 현실의 벽 앞에서, 죽음으로서 그 모든 것을 이제 놓아버린 인간 김대중의 처절한 고독을 밤새 느끼고 온 것 같아 나는 쓸쓸할 뿐이다.
 

 

 
딴지 논설위원 파토(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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