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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술집에서만 아이를 사랑하지 말자

 

2009-10-05
김지룡

 

 

아이는 서너 살 때 견딜 수 없도록 예쁜 것 같다. 내 아이들이 그 나이가 되었을 때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아이 이야기를 했다. 기회가 올 때마다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술자리에서 여느 때처럼 아이의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술집에서 아이를 사랑한다고 아무리 얘기해 봐야 우리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찾아내고 느끼고 즐거워하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다. 어려운 것은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니다.

 

술집에서만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들이 무척 많다. 자신이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지 말하며 사진을 보여준다. 요즘은 핸드폰에 저장된 동영상까지 봐야 한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남의 아이 동영상을 보는 것은 꽤나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자신이 얼마나 아이의 얼굴을 못보고 사는지 자랑하는 아빠들이다. 도대체 그게 왜 자랑거리가 되는 것일까.

 

 

아마 이런 심리일 것이다. 자신이 잘나가고 있기 때문에 아이 얼굴을 볼 새도 없이 바쁘다는 것을 과시하거나, 마치 그런 것처럼 허풍을 떠는 것.

 

예전의 아빠들은 사랑 표현에 서툴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지, 표현이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아빠들이 많다.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이들은 언젠가 아빠의 사랑을 깨닫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죽고 난 뒤에 아이들이 아빠를 회상하면서 ‘우리 아빠가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은 우리를 무척 사랑했던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기쁨이나 위안이 될까. 사랑은 지금 표현되고 느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는 술집이 아니라 집에서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일찍 일어나 아이가 깨어있을 때 귀가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술자리를 줄이는 것이 훨씬 쉽다.

 

3년 전까지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저녁 때 사람들을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외롭고 불안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남자는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에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한다. 외로움을 느끼면 아무나 만나고 싶어진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 빠지면 불안해진다. 좋은 정보를 나만 놓치는 것이 아닌가, 좋은 기회를 나만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만남이나 모임의 절반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고 불안하다보니 허접한 인간들까지 만나고 있었다. 내 주위에서 허접한 인간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허접한 인간은 어떤 인간들인가.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놈들이다. 약속 안 지키는 놈, 말 바꾸는 놈, 아부 잘하는 놈,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면 막 대하는 놈 등, 수도 없이 많다.

 



하도 세상에 놈 이 많으니까 영화도 나왔다.

 

그동안의 의리나 다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만나주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런 경우라도 허접의 극치에 해당하는 인간들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접의 극치는 이 세상에 돈 벌러 온 놈들이다.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이고, 돈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 수 있는 놈들이다.

 

그런 인간들 중에는 돈을 잘 버는 인간들이 꽤 있다.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입장에서는 이런 인간들을 거부하기 힘들다. 재미있는 건 그런 인간들의 특징은 평생 먹고 살 돈이 생기면 그 다음에는 꼭 명예를 원하고 권력을 원한다는 점이다. 내가 그들을 만났던 시기는 대개 그런 단계였다. 무슨 일을 했는지는 밝힐 수 없다. 나는 허접하게 살고 싶지 않으므로 함구 약속은 지켜야 한다.

 

돈을 버는 데 꽤 도움이 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인간들이 내게 큰돈을 벌게 해 준 적이 없다. 허접한 인간들은 다른 사람이 큰돈을 버는 꼴을 못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인간들을 만나는 데는 돈도 많이 든다. 최근 수입이 많았다거나, 뜻하지 않은 돈을 벌었다는 말을 하면, 한턱을 쏠 것을 강요하면서 비싼 곳으로 끌고 간다. 허접한 인간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기 때문이다. 배 아픈 것을 줄이기 위해 한턱을 쏘라고 하는 것이다.

 

진정한 친구라면 아무 조건 없이 축하하고 함께 기뻐해 줄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한턱을 쏘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허접한 인간들에게 한턱을 내는 것은 속이 무척 쓰리다.  허접한 인간들은 평생 누군가를 뜯어먹을 기회만 노리면서 사는데, 내가 뜯어 먹힌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멋진 삶의 가장 중요한 근원 중 하나다. 좋은 친구를 갖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나이가 다른 선후배여도 좋다.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는 사람은 멋지게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좋은 친구가 아니라면 별다른 이유 없이 외롭고 불안하다는 이유로 습관적으로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특히 허접한 인간들은 피해야 한다. 일체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허접한 인간들을 만나지 않게 된 이후로 술자리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술 약속이 있는 말보다,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 더 많아졌다. 만남과 모임이 줄었지만 외롭기는커녕 속이 시원하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알게 모르게 허접한 인간들에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아빠 자신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자신의 삶에서 허접한 인간들을 털어 낼 필요가 있다.

 

 

 

애 키우는 일에 미쳐서
문화평론에서 자녀교육으로 직업을 바꾼
김지룡(blog.naver.com/edu_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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