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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2009-12-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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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 18. 금요일


너부리


 






: 이 기사는 필자가 지난 2001년도에 작성한 바 있는 '고우영 삼국지' 관련 기사 3편을 [읽은 척 매뉴얼]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취지


 


본 기사는 각종 매체에서 이루어졌던 광고 아닌 척 책 소개하기식의 서적 광고도 아니고 필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그 평가가 천차만별인 니맘대로 서적 리뷰도 아니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듯 본 기사는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서적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그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인문학적 데자뷰 현상을 도모하는 학구적 심령기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기력과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의욕이 있다 하더라도 직장 내 오랜 눈칫밥 습관으로 한 곳에 1분 이상 눈동자를 모으기 힘든 독자들에게, 그리고 어디 가서 모르는 책 얘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가녀린 영혼을 소유한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들어가며


 



삼국지를 읽은 척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읽은 척이 어려운 이유는 워낙에 방대한 분량이어서 설령 띄엄띄엄 읽는다 하더라도 그에 걸리는 물리적 시간 자체가 만만치 않은데다가, 작가에 따른 버전도 다양해서 누구는 이문열의 삼국지가 최고네, 또 누구는 정비석이나 황석영의 삼국지를 읽어 보지 않았으면 말도 꺼내지 말라는 식의 작가별 읽은 척까지 강요당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물론 바로 이 점 때문에 읽은 척이 용이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다 보니 잘 모르는 얘기가 나올 경우에는, 읽었지만 요즘 나이를 먹어 기억력이 예전 같지가 않다며, 그러니 어디 가서 DHA가 다량 함유된 참치나 좀 사주라 얼버무리면 그만이고, 또 너무도 다양한 작가들이 삼국지를 평역한 관계로 누군가 이문열의 삼국지 얘기를 꺼내면 황석영의 삼국지에서는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오히려 화를 낸다거나, 반대로 황석영의 삼국지에 대한 얘기가 나올라치면 ‘아 맞다. 그건 김홍신의 삼국지였지.’ 하는 식으로 빠져나갈 방법 역시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선택한 삼국지는 바로 <고우영 삼국지>되겠다. 여타 삼국지와는 달리 <고우영 삼국지>의 경우에는 그 책을 읽었는가, 읽지 않았는가의 식별 포인트가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개성이 강한 작품인데다가, 당 작품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만화인 관계로 십대부터 육십 대 이상의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애정을 받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의 말미에 밝히겠지만, 故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와 필자와는 매우 각별한 인연이 있기도 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읽은 척 매뉴얼



 


1)주요 등장인물


 



아마도 삼국지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나열하는데도 본 기사의 반은 잡아먹을 수 있으므로 일일이 주요 인물을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단, <고우영 삼국지>에는 기존 삼국지와는 전혀 다른 해석이 시도된 인물들이 등장하므로 이에 대해서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유비 : 오직 덕을 통해 유능한 장수와 책사를 얻고, 나중에는 촉의 황제가 되는 인물로 익숙하지만 당 서적에서 그려지는 유비는 그렇지 않다. '쪼다 유비' 라 불린다.


 



-장비 : 기존 삼국지에서는 늘 싸움은 잘하지만 좀 모자란 인물로 그려지나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그렇지 않다. 싸나이 장비임과 동시에 귀염둥이 장비라 할만하다.



 


-제갈 양 : 천재적인 두뇌로 촉나라에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인물로 묘사되곤 하지만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그렇지 않다. 머리가 뛰어나기 때문에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 데도 뛰어나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 현실적이라 할 것이다.



 


-조조 : 과거에는 간신, 역적의 대명사쯤으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많은 재평가로 이미지를 개선한 위나라의 황제다. 그 재평가의 초석을 다진 것이 바로 <고우영 삼국지>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포 : <고우영 삼국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이들이 가장 불만을 갖는 캐릭터다. 그 이유는 잘 생기고 멋지지 않다는 것. 당 작품에서 여포는 그저 싸움 잘하고, 욕심만 많은 개차반으로 묘사된다.




 


 


2)내용요약



 


솔직히 고백하건데, 내용 요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무진장 고민하며 썼다 지웠다를 여러 번 반복했드랬다.


 



삼국지의 내용요약을 구구절절 적어 내려가자니 그 양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무슨 구구단을 적어 내려가는 것만 같은 자괴감이 밀려들고, 그렇다고 내용요약을 생략하자니 삼국지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법인데, 그런 독자의 입장에서는 읽은 척 매뉴얼에서 조차 네가 이런 것도 모르면 어떡하니 식의 정신적 생략을 당하는 것만 같은 모멸감을 느낄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



 


‘중국 후한 말, 황건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모인 각지의 군웅들이 세력 다툼을 벌이다 조조의 위, 유비의 촉, 손권의 오나라로 삼각구도가 잡히면서 3강의 동맹과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에는 조조의 책사인 사마의의 후손들이 진나라를 세워 삼국을 통일한다.’


 



정도가 아마도 대부분의 소설 삼국지 및 역사적 사실로서의 삼국지를 아우를 수 있는 초간단 내용요약이라 할 것이다. 다만 <고우영 삼국지>는 그 끝이 촉의 멸망에서 진나라의 삼국통일까지 넘어가지는 않는다. 제갈공명이 오장원에서 죽은 후 사마의가 그의 시체를 보고 놀라 도망가는 대목, 즉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까무러치게 했다’는 유명한 일화까지만 그려진 후 끝을 맺는다.


 


 




3)읽은 척 세부스킬


 



 인물의 재해석



 


앞서 등장인물의 소개에서 언급한 바 있듯, <고우영 삼국지>를 읽은 척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작가가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을 기존의 천편일률적 관점에서 벗어나, 독특하면서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시각으로 재해석을 시도한 국내 최초의 작품이라는데 있다.



 


- 유비와 조조에 대하여



 


특히 등장인물의 가장 큰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비와 조조에 대한 평가가 그러하다. 유비는 선으로, 조조는 악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불문율과도 같은 인물설정에서 과감히 탈피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이문열 삼국지>를 비롯하여 <창천항로>, 심지어는 게임에서도 조조를 뛰어난 전략가이자 정치가로 보는 시각들이 흔해졌지만 당 작품이 처음 연재된 시점이 대략 30여 년 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바로 이 점에서 고인이 된 작가에게 일단 존경의 념을 바친 후 차근차근 읽은 척을 하는 것이 순서라 할 것이다.


 











위의 그림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유비를 겁 많고 우유부단한 쪼다로, 조조를 영민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사나이로 표현하고 있다.


 


좀 더 예를 들어보자. 아래 그림은 조조가 여포를 친 후, 유비가 조조에게 빌붙어 살며 자신의 야망을 감춘 채, 바보행세를 하여 조조로 하여금 유비 자신에 대해 방심토록 유도한 대목의 평가이다. 작가는 그런 유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얼마나 교활한가?'



 



다음 그림은 유비가 전쟁터에서 줄곧 줄행랑을 치는 것에 대한 작가의 평가다.


 








 


다음은 조조를 보자.


 




위 그림은 조조가 자신의 실수를 간하는 참모들의 의견에 대해 담백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참모들의 의견을 따르는 장면이다.


 



아마도 삼국지에서 묘사된 조조의 모든 행동을 미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백사의 일가족을 몰살시켰던 사건이라던가, 천자를 등에 업고 명분만을 확보한 채 자신의 권력욕을 충족시켜 나갔다던가, 의심 때문에 많은 충신들을 참수시켰다던가 하는 일들은 분명 그의 악덕이라 할 것이다. <고우영 삼국지>에서도 물론 조조의 간악한 행동에 대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고우영 삼국지>에서 작가는 당시 거의 반공사상과 흡사할 정도로 민간인들에게 세뇌되었던 간웅 조조에 대하여 국내 최초의 객관적 시각을 확립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즉, 한 사람의 일생을 어느 한 부분에만 치우쳐 마치 낙인을 찍듯 낙장불입적 평가로 단순화시키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 제갈 양과 관우에 대하여


 



<고우영 삼국지>의 인물에 대한 재해석 부분에 있어서 기존의 삼국지에 익숙한 독자라면 가장 큰 혼란 내지는 놀라움을 보이는 것이 바로 제갈 양과 관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 하겠다.


 



일단 작품의 내용을 확인해보자.



위의 발췌내용은 적벽대전에서 제갈 양이 관우에게는 임무를 하달하지 않고 일종의 왕따를 시키는 장면이다. 관우가 지난날의 은원관계(조조에게 포로로 잡혔으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적토마까지 선물로 받은 것) 때문에 조조를 죽일 수 없음을 제갈 양이 간파하고 일부로 화용도에 가게끔 하여 관우의 기를 꺾을 속셈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면에 더욱 자세히 묘사된다.


 




즉, 적벽대전 때, 제갈 양이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조조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제갈 양에게는 조조를 잡아 천하통일을 이루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삼형제 중 실질적 리더격인 관우에게 일종의 엿을 먹인 것이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대목은 관우의 죽음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다. 작가는 형주 땅에서 오나라 육손의 계책과 여몽의 용병술로 고전하고 있던 관우의 상황을 누구보다 제갈 양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천재적인 전략가 제갈 양은 그 상황에서 관우에게 일부러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은 채, 수수방관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삼국지 전편에서 그야 말로 천재적인 지략과 용병술을 보여주던 제갈 양이 유독 관우의 죽음을 야기한 형주성에서의 전쟁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아무런 후속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권력관계에서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관우를 은밀히 제거했다는 분석이라 하겠다.




 


관우와 제갈 양에 대한 팬심이 가득한 독자들의 경우, 그 둘에 대한 <고우영 삼국지>의 시각이 마치 촉나라 아이돌 그룹의 리더격 멤버들 간에 내분을 불러일으키는 해석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냉정한 정치판의 생리로 비추어본다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유추라 할 것이다.


 



참고로, <이문열 삼국지>에서도 역시 제갈 양과 관우를 정치적 라이벌의 관계로 묘사하는데, <고우영 삼국지>는 78년도부터 일간스포츠에서 연재되었으며, <이문열 삼국지>는 1판이 1988년도에 나왔으므로, <이문열 삼국지>가 어느 정도는 <고우영 삼국지>의 영향을 받았거나, 아니면 시기적으로만 보더라도 <고우영 삼국지>의 관점이 대략 10년을 앞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고화백님께서 무척 반기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고화백님은 어느 날 갑자기 이문열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별말없이 '헤헤'거렸다는 말씀을 하신 바 있다.)  


 



고로 삼국지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경우, 굳이 10여 권의 소설 삼국지를 토대로 읽은 척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할 것이다. 만화 <고우영 삼국지>를 가지고서도 충분히 그 어떤 유명 삼국지와도 읽은 척 맞짱을 뜰 수 있기 때문이다.


 



- 장비에 대하여



 




여타 삼국지에서는 항상 과격, 무식, 난폭, 단순의 대표적인 인물로 설정되어 무력이 출중한 것 외에는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고 모자라 보이기까지 한 것이 장비의 모양새다. 하지만 <고우영 삼국지>에서의 장비는 무척이나 직선적이고, 가끔은 지적이며, 코믹스러운 캐릭터로서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에 가깝다.


 



실제로 <고우영 삼국지>의 시작은 저자거리에서 장비가 돼지고기를 팔며, 노점상의 고객과 시비가 붙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대부분의 소설 삼국지가 유비의 소개, 또는 황건적에 대한 역사적 서술로 시작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장비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몇 장면을 보도록 하자.




위 장면은 관우가 조조에게서 떠나오기 전 자신은 조조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않은 것에 대한 나름 품위 있는 자랑을 늘어놓는 관우에게 후추 가루를 뿌리는 장면이다.


 



다음은 관우가 죽은 후 장비가 오나라로의 출정 전날, 형의 복수에 대한 흥분을 초등학생 수준의 일기로 코믹하게 표현한 장면이다.


 



 


이 외에도 장비는 늘 입에 개고기와 술을 달고 다니는 인물로 그려지면서 단순하고, 어딘가 어설프긴 하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정감어린 웃음을 자아내며, 적어도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만하다.


 


참고로 과거 고화백님께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무엇인지에 대해 여쭌 적이 있었다. 필자는 당연히 장비를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하지만 고화백님게서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더랬다.


 


"뭐, 장비도 있고 일지매도 있지만... 사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다 애틋하지요. 왜냐면 이게 다 내 일부거든. 그러니까 내 스스로가 어쩔 때는 장비가 되었다가도, 또 어떤 때는 조조가 되기도 하고, 동탁이 되기도 하거든."


 


아마도 고화백의 만화가 '작품'으로 인정을 받는 데에는 이와 같은 작가의 섬세한 시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패러디와 엽기의 원조



 


마치 성경책이 아닌 영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듯, <고우영의 삼국지>에는 전편에 걸쳐 기발한 패러디와 소위 엽기적 발상들이 넘친다는 것 역시 당 서적의 읽은 척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조조를 좃조라고 칭하는 장면으로, 고우영 화백의 작품에는 성적 농담이 자주 양념으로 사용되곤 한다.



위 그림은 오나라 장수들이 막간을 이용해 고스톱을 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미인계에 넘어간 여포가 의부인 동탁을 죽이면서 줄 다생 감독의 영화 <페드라>의 마지막 장면을 패러디 한 부분이다.


 



일본 만화에서나 봤을법한 엽기적 하드고어가 이미 20여 년 전에 대한민국에서도 구현되었다고 평할만한 장면이라 하겠다.


 




 


 삭제판과 무삭제판


 



<고우영 삼국지>는 한 때, 100여 페이지가 삭제되고, 500여 페이지가 수정된 채 유통된 바 있다. 그 이유는 선정적 장면과 잔인한 장면 등에 대한 당시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압력으로 작가의 동의도 없이 출판사가 자진 삭제 및 수정을 가해 출판하였기 때문이다.


 



고로 당 작품이 20여 년간 너덜너덜한 삭제판으로 유통되었음을 알아두는 것은 <고우영 삼국지>에 대한 읽은 척뿐만 아니라, 7~80년대 출판문화의 후진성과 당시 만화가들의 정신적 고충까지 아는 척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스킬이 될 수 있다 할 것이다.


 




위 그림의 빨간색 부분이 원본을 칼로 도려낸 부분이다. 당시 어떤 대목들이 삭제, 수정되었는지 살펴보자.



 



삭제판



 



무삭제판



 


 


위 그림은 조조의 부친인 조숭이 자신의 애첩과 도겸의 부하인 장개가 놀아나는 장면을 목격하고 칼을 휘두른 장면인데 두 컷의 이어짐이 뭔가 어색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 컷 사이에 빠졌던 대목은 다음과 같다.


 



번개처럼 뭔가를 뽑으며... 과연 여인과의 정사 중에 장개가 무엇을 번개처럼 뽑고서 칼을 피한 것일까? 참고로 글에 가해진 삭제는 작가의 연출일 뿐이다.




지금은 욕이라 볼 수도 없는 ‘새끼’라는 단어도 수정의 대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위 그림에서는 남성의 성기를 수도꼭지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라 하겠다.


 



물론 지금은 온전한 무삭제 작품이 유통되고 있다. 2001년에 인터넷 신문 딴지일보의 한 기자가 처음 <고우영 삼국지>의 삭제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후, 오랜 시간 작가를 설득하여 무삭제 CD로 복원을 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 기자는 바로 본 읽은 척 매뉴얼의 필자 되겠다.


 



필자가 살면서 그 어떤 반발 가능성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랑하는 것이 딱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잘 생겼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고우영 삼국지>를 복원시키는데 필자가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2001년 본지에서 발매된 ‘무삭제 고우영 삼국지 CD'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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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고우영 삼국지>는 성적 묘사가 노골적이라거나, 육두문자가 난무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될 성인용 작품으로 취급되곤 한다. 그래서 혹자는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나 <고우영 삼국지>를 보게 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한참 혈기 왕성한 나이에 성적 흥분을 유발할 수 있는 작품을 접했다가 자칫 사고를 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우려에서 비롯된 나름 지당한 방침이라 할 것이다(물론 요즘 아이들의 관점에서 과연 당 서적이 성적으로 노골적인 축에 끼기나 할는지는 필자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책은 성적 묘사가 노골적인 책이 아니라, 성적 모티브를 억지로 생략, 변형하여 논리적 비약의 부자연스러움을 연출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더욱 좋지 않은 것은 그 부자연스러움을 강요하는 어른들에 의해 아이들 스스로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포기하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


 



버트런드 러셀이 말한 바 있듯,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은 기차가 무슨 원리로 움직이는가를 궁금해 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지적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지레 어른들이 화를 내거나 당혹스러워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뇌리에 심어주어 일종의 호기심 공포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얘기되겠다.


 



필자의 경우, 당 서적을 초등학교 2학년 때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범죄 한 번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추신 : 지난 2005년 4월 25일. 그러니까 고화백님께서 영면하시던 날 본지를 방문했던 독자들 많았을 걸로 안다. 그리고 당일 고화백님에 대한 추모의 글이 따로 마련되지 않아 서운했던 독자들도 많이 계셨을 줄로 안다.


 


이제 한 4년이 지났으니 당시의 사정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2005년 4월 22일쯤으로 기억을 한다. 평소 고화백님 댁이나 작업실 전화번호가 찍힌 전화를 보면 만사를 제치고 마치 짝사랑 하는 여인에게 전화라도 받듯 두손 모아 전화를 받았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왜냐면 당시 본지의 경제적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삼국지 CD에 대한 고료를 고화백님께 제때 지급을 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러니까 필자는 고화백님께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 아마도 마지막으로 불러 얼굴이나 보자 하시려 했던 고화백님의 전화를 무슨 빚독촉 전화(물론 고화백께서 직접 독촉을 하신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쯤으로 오해를 하고 일부러 받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고화백님의 부음을 듣게 되었고 말이다.


 


왜 필자가 당시 지면을 통해 뭐라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는지, 이해가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