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필독 추천0 비추천0

2009.12.18.금요일


필독


 


누구에게나 지름의 개인사가 있다. 과거 질러왔고 현재 지를까 말까 고민하며 앞으로도 지르게 될 장구한 연대기. 나 역시 헤어나올 수 없었던 그 도도한 물결 속에서 특히 기억나는 것이 있다.


 



자동차.


 


글타... 대부분의 사람에게, 특히 남자에게 차만큼 선이 굵은 지름이 있겠는가.


 


2004년 나는 사람들에게 밝히기 좀 민망한 일을 하면서 돈을 좀 벌었다. 2005년 상반기에는 그 돈을 썼다. 부모님께도 드리고 동생한테 용돈도 백만원씩 주고 친구들 데리고 술도 많이 펐다. 그러다보니 돈이 연기처럼 증발해버렸고 정신을 차렸을 때쯤엔 전재산 달랑 이백만원이 통장에 남아있었다.


 


정신을 일찍 차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은 오너드라이버가 될 수 있다. 음... 내가 덩치가 있으니 중형차는 되어야 겠고, 값은 쌀 수록 좋고... 중고차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그것을 만났다. 40만키로를 뛴 쏘나타 3. 백오십 달라는 것을 백이십으로 깎아 집으로 몰고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어떤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다. 좆됐구나. 그렇다. 당연한 말이지만, 똥차였던 거다.


 


그것과 함께한 추억은 일일이 설명할 수가 없다. 있는 힘껏 밟아야 '멈추기 시작하는' 브레이크. 팔에 힘을 잔뜩 주고 마지막 1미리까지 올려야 안심할 수 있는 사이드브레이크. 내려가고 올라가는 속도가 다 다른 네 개의 파워윈도우. 우측 뒷자석 윈도우는 닫는 데 한 일분은 걸렸다. 또 조수석 윈도우는 주먹으로 특정 부분을 정확한 강도로 두 번 때려야지만 윈도우를 올리고 내릴 수 있었다.


 


음 또 고속도로에선 핸들을 오른쪽으로 계속 돌려줘야 일직선으로 달릴 수 있었고... 자동잠금장치가 고장나서 일일이 수동으로 차를 잠가야 했으며... 에어컨은 안 나왔고, 히터는 고무 타는 냄새가 나고, 선루프는 전동장치가 고장나 수동으로 개조되어 있었는데 그조차고 꽉 안 닫혀서 비가 오면 물이 샜고...


 


힘은 어찌나 없던지 중형차주제에 세 명이 타면 언덕에서 퍼지고... 차가 괴로워하는 걸 느껴본 적 있는가. 그 고통스러운 떨림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미안해서라도 악셀을 밟기가 힘들어진다. 금방이라도 거친 신음을 토하며 사망할 것 같다. 그러면 정말 두 눈을 감겨줘야 할 것 같단 말이다. 시동이 꺼지는 소리가 또 죽음이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정말 죽는 것 같았다.


 


"부륵 륵 륵 끄윽 끄윽 컥, 컥, 컥......


 


컥"


 


그리고 일순간 찾아오는 고요. 이 채로 다시는 시동이 안 걸린다 해도, 납득이 가는 소리다. 시동을 켤 때도 비슷한 소리가 났다.


 



흐엉엉 이 똥차... ㅠㅠ


 


음 또 뭐가 있었을까... 연료량을 알려주는 계침이 고장나서 언제나 E(엔꼬)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니까 들어간 기름량, 소모된 기름량을 예측해서 다니지 않으면 언제 차가 우뚝 설 지 모르는 거였다. 생각해보면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사람은 긴장하면 실수를 안 하는 법.


 


친구들은 이 차를 소나트럭이라고 불렀다. 트럭의 승차감을 제공하는 소나타. 하지만 나는 '소숙이'라고 불렀다. 쏘나타 쓰리 → 쏘쓰리 → 소숙이. 차가 너무 후지면 사람처럼 느껴진다. 언덕을 올라가는 그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 도저히 기계로는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언덕을 넘어가는 순간마다 "수고했어!"라고 핸들을 두들겼다. 또 어떨 때는 차가 알아서 멈추고 어떨 때는 급가속이 신기할 정도로 잘(즉 정상적으로) 되기도 하는 등 일종의 인공지능을 자랑했다. 그러니 소숙이라는 이름은 꽤 적절하다고 믿는다.


 


생각해보면 차는 비를 맞는데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안 맞는다! 이건 불공평하지 않은가? 나와 소숙이 사이에는 그런 거리가 없었다. 선루프 때문에 나도 함께 비를 맏아야 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소숙이를 아주 좋아했다. 나는 차를 아주 많이 몰고 다녔다. 그 값에 팔려와 이만큼 달려준 건 정말 선방한 거다. 그건 공장에서 만들어진 쏘나타 3의 기계적 조건이 아니라 소숙이만의  성실함 때문이라고, 나는 살짝 믿고 싶다. 소숙이와 함께 산과 바다를 달렸고 소숙이의 품안에서 카섹스의 추억을 만들었다. 내가 외로울 때면 한적한 국도를 달려주었고... 가끔은 지가 알아서 서기도 했지만... 으음 소숙이 안에서 키스를 나누었던 여인네가 몇이었더라?


 


나는 2006년 가을에 한국을 떠나 올해 돌아왔다. 그 동안 소숙이는 내 동생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반년 전, 소숙이는 대형사고로 장렬히 전사했다. 고속도로에서 백여 미터에 달하는 거리만큼 부품을 흩뿌려놓고 해체되었다. 그 안에 있던 동생이 어떻게 그렇게 멀쩡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크게 망가졌다. 그렇게 소숙이는... 폐차장으로 떠났다.


 


그리고 동생은 NF쏘나타를 질렀다. 동생은 소숙이와 정상적인 NF의 차이에 아직도 놀라며 자신의 지름에 만족하고 있다. 나도 간간히 그 차를 모는데, 확실히 좋은 차다. 최근에 나온 중형차고, 또 새차니까 뭐. 하지만 나는 가끔 소숙이가 그립다. 며칠 전엔 꿈속에서 내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그게 소숙이더라구!


 


꿈속에서 핸들을 치며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