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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금요일


문화불패 littlektk


 








편집자 주


 


게시판의 글이 3회 이상 메인 기사로 채택된 'littlektk'님께는 가카의 귓구녕을 뚫어 드리기 위한 본지의 소수정예 이비인후과 블로그인 '300'의 개설권한이 생성되었습니다. 조만간 필진 전용 삼겹살 테러식장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SF영화계는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 두 명을 낳았다. <District 9>의 닐 블롬캠프와 <더 문>의 던컨 존스(사족을 달자면, 데이빗 보위의 아들)다. 두 명 모두 기존 SF영화들에는 턱도 없는 제작비로 인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으며 오락성을 꾀하는 한편 정치성과 사회 풍자를 놓치지 않았다. 좋은 영화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나도 그러고 싶었으나, 두 편을 모두 이야기하는 글은 이미 많이 나왔고, 그럴 능력도 없으니 한 편씩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두 편 중에 한편을 꼽으라고 하면 <District 9>이다. <District 9>의 결말이 더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영화 중 <District 9>에 대해서 쓰기로 했다.


 


물론 <District 9>에 대해서는 이미 글을 쓴 적이 있다. (276호 참조.)하지만 그 때 쓰지 못했던 지점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DISTRICT 9



먼저 프론(외계인)들이다. 영화평론가들은 기존 SF영화와는 다르게 지능이 낮고 단순한 생명체로 표현된 외계인에 참신하다는 평을 부여했다. 물론 벌레에 가까운 외모와 음식에 대한 강한 집착은 그들을 더욱 그렇게 보이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실은 프론들이 지구인들보다 앞선 과학문명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굳이 우주선이 광속보다 빨리 지구로 이동했을 것이란 추론을 하지 않아도 거대한 우주선이 별다른 추진장치의 활동 없이 공중에 머물고 있는 숏이 그것을 증명한다.


 


게다가 그들의 무기는 인간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과학체계를 통해서 만들어진 물건이다. 인간의 총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비교 불가능한 파괴력을 지닌 그것은 외계인의 DNA에만 반응한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인간에게 종속되어 사는가. 다시 말해 다른 영화들처럼 지구를 정복하러 들지 않는가. 물론 외계인들이 ‘지구를 정복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걸려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구인들과 대등한 혹은 월등한 힘으로 협상이라도 한다면 지금의 비참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다.


 


그 때 크리스토퍼의 등장과 함께 비춰지는 프론의 사회 구조는 이들의 이런 상황을 설명한다.


프론들의 사회구조는 지구식으로 말하자면 과두정 혹은 왕정으로 보인다. 특히 크리스토퍼의 “내 국민을 구해야 돼”라는 대사는 자신과 동등한 신분의 국민보다 자신의 통치를 받는 대상을 부르는 뉘앙스로 들린다.


 


그런데 크리스토퍼(지배층)와 일반 프론들의 지적차이는 마치 (가카가 존경하신다는)안창호 선생과 가카의 도덕성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그 때 이러한 차이의 상당부분은 교육 때문인 것 같다. ‘District 9’의 프론들은 어떠한 교육시스템도 갖추고 있지 못한 걸로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프론들의 비참한 처지는 그들의 정치체제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를 일부가 점유했기 때문에, 대다수 프론에게는 지식 대신 무지가 계승되었기 때문에 앞선 과학문명과 우월한 전투력으로도 인간에게 종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정에 살고 있는 지금, 구태여 영화까지 들먹여가며 과두정을 비판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 물론 있다. 지금 한국 정부가 하는 짓이 민주정의 가면을 쓴 과두정이 아닌가. 권력의 손이 된 사법 시스템과 정보를 조작하는 언론과 소비자와 노동자의 돈으로 비자금을 만드는 대기업들. 그렇다면 그것에 멋지게 속아 넘어가는 한국의 프론들은 어떠한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을 공감하지만, 이건희가 돈을 벌어다줄 거라는 환상에 그의 사면을 원하는 사람들. 혹은 소래고 3학년 이희준 군이 파업 때문에 늦었다며 철도노동자들에게 욕을 하는 사람들. 비정규직 문제와 대학 등록금 문제에 당면한 88만원 세대는 어떠한가. 구조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구조가 원하는 기형적인 모습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오늘도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중이다.


 


<District 9>을 보면서 프론들의 지능이 낮구나,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한국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사람들이 많다. 어차피 프론들과 똑같이 각성하지 못하고 고양이밥이라는 돈에, 그것도 눈앞의 이익에 환장한 꼴 아닌가. 그러나 이 비난은 상당히 틀린 셈이다. 사기꾼과 사기피해자 중에 누구를 욕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프론이 되지 않으려면, 프론에게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찌 보면 쉬운 일일 수도 있다. 프론이 되지 않게 깨어 있으면 된다. 프론들을 깨워주면 된다. 서로 이야기하면 된다. 서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사회적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시스템이 바뀌는 것은 매우 거대한 일이지만 그 시작은 항상 개개인의 각성으로부터 시작된다. 딴지에서 말 많았던 <매트릭스> 시리즈도 네오의 각성으로부터 시작된다.


 



비커스


 


그 때 비커스의 각성은 감동적이다. 물론 프론으로 변이되가는 신체상의 변화 때문에 그의 각성은 시작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MNU의 비인간적 실험들을 직접 겪어가는 동안 그는 MNU의 구조와 체계에 대해 회의적 입장에 서게 되며 나중에는 자신이 맡았던 ‘외계인 대이주 프로젝트’ 역시 잘못된 것이라는 뉘앙스의 대사까지 한다. 결국 인간 육체로의 회귀라는 개인적인, 그러나 절박한 이유를 희생하는 것도 그가 좀 더 인간적인, 좀 더 깨어있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MNU라는) 부도덕한 거대 조직에 인간성을 요구하며 반항하는 인간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시스템의 말판과도 같았던 그가 육체가 프론으로 변이되면서 오히려 더 인간적인 인간이 된다는 건 아주 역설적이고, 매우 강렬하다.


 


마치 감독 닐 블롬캠프가 내 귀에다 대고 “인간? 그게 뭔데? 조건이 뭐야?”라고 묻는 것 같다.




                                                             크리스토퍼


 



그런데 그 때 내가 제일 걱정되는 인물은 오히려 크리스토퍼다. 그는 영화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캐릭터로 보임에도 그가 떠난 뒤에는 모종의 불안감이 남는다. 크리스토퍼는 돌아온다고 굳게 약속하고 떠났다. 그가 외계인임에도 보인 명성높고 기품있는 여러 인간 황족들과의 유사점을 본다면, 그는 약속을 지킬 인물이다. 아마 외부환경이 허락한다면 돌아올 것이다. 문제는 그가 돌아온 이후다.


 


애초에 “프론들을 다 데리고 떠날” 계획이었던 그는 “국민들의 생체실험”을 보고 마음이 바뀌어서 3년을 기약하고 떠났다. 영화 말미 한 사람의 말처럼 “전쟁의 가능성”이 있다. 그는 프론 군대를 끌고 와서 남아공과 지구를 짓밟아 버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그가 프론들을, 그의 국민들을 구한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이냐다. 그는 자신의 체제가 가진 불합리성과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비극적 결과를 목도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국민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가 정치체제를 개혁할 것인가, 그가 혁명을 할 것인가 에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기득권이 되었건 이데올로기가 되었건 그가 그것들을 포기하고 프론들에게 진정한 진보를 일으킬 수 있을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가 올지 안 올지 아무도 모르는 순간, 그냥 어떤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그 희망을 기다려야 하는 순간, 그런데 그 희망 역시 사실은 희망이 아니란 게 밝혀진다면?


 


난 크리스토퍼에게 용기있는 선택을 요구하고 싶다. 그러나 크리스토퍼는 한국을 본 다음,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게 지금 나의 가장 큰 비극이다.


 

운영수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