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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금요일


산하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불쑥 인사드리게 된 것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누구시더라 뜨악해하시는 모습 눈에 선합니다. 저희를 소개해 올리자면 꽤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야 합니다.


 



94년의 한가위는 끔찍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 해 한가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골똘해지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요, 아마 안상수 대표님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단어 한 마디만 덧붙이면 모두 탄성을 내지르며 두렵고 황망했던 추석날 밤을 떠올리며 몸서리치실 겁니다. 그렇게 만든 건 우리들이었습니다. 아직 이승에 남아 죄값을 치르고 있는 동료도 있지만 나를 포함해서 몇 명은 대한민국 역사상 마지막 사형대에 올랐었지요, 이제 짐작이 가십니까. 맞습니다. 우리는 지존파입니다. 대한민국 범죄사에 한획을 그었던 살인마 조직, 지존파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살인마들이었습니다. 눈에 비친 살기가 검푸르게 빛나고 사람 잡는 일을 훈련하고 숙달했던 짐승들이었지요. 사지를 찢어도 할말이 없는 잔혹범들이었습니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남편 관자놀이에 총알을 박았고 여자를 시켜 애인 목을 조르게 했어요. 길 가는 여자 아무나를 잡아 돌림빵을 놓아 버린 후 ‘요렇게 사람을 죽이는 거란다’ 하는 가르침을 베풀고 흰눈 번득이며 그 광경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던 악마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럴 수 있었을까 스스로도 몸서리가 쳐지곤 합니다.


 



백만년이고 천만년이고 지옥의 가마솥에 푹푹 삶기고도 모자라 그 수십 배의 시간 동안 벽만 바라보고 침묵으로 사죄해도 죄가 남을 저희들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집권당 대표님의 존함을 끌어대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를 자초하신 것은 대표님이십니다.



 




저희를 두고 엽기적이라는 형용사가 철을 만났고 전무후무라는 사자성어가 두루 사용되었습니다만 저희 이후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아직은 그 면면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저희 이후에도 참으로 무시무시한 살인마들과 인간 말종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요즘은 중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 아이를 납치해서 강간하고 그 숨통을 막아버린 김길태라는 녀석의 악명이 이곳까지 울립니다.


 


그런데 안 대표님은 이들이 출몰하게 된 이유를 “좌파 교육” 때문이라고 외치셨더군요.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너무 기가 막혀 하니까 “법치가 와해된 현상”에 대해 얘기한 것이 와전되었다고 변명하셨다는 것까지 들었습니다. 그 어려운 고시까지 패스하시고 승승장구를 거쳐 집권당 대표까지 오르신 안상수 대표님. 터진 입이라고 말 함부로 했다가 곤욕 치르는 풍경은 문화관광부 장관 하나로 족하지 않으십니까? 이크 죄송합니다. 말하다 보니 본색 드러나네요.




대표님. 우리들이 숱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끝에 끝내 체포되었던 것이 94년 한가위였습니다. 저희는 엄정하다 못해 살벌한 법치(?) 속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좌파는커녕 왼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좌경이라는 칭호조차 대역죄인으로 분류되던 무렵 학교를 다녔습니다. 12시 땡 치면 무조건 통금 위반 사범이 되어 파출소에 끌려가야 하고, 도둑질 몇 번 했다가는 10년이고 20년이고 징역 외에 보호 감호를 받아야 했던 무시무시한 법치의 시대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저희는 반사회적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혹시 그때 저희 교무실에 걸려 있던 사진 속의 그분들이 좌파셨나요? 선글라스 즐겨 썼던 가무잡잡한 분이? 아니면 교무실에 햇볕이 들면 유난히 머리가 빛나던 그분이? 아니면 조만간 저승 후배가 될 듯 보이는 보통 사람 그분이? 아니면 우리가 체포되자 방방 뜨면서 최대한 빨리 목매달라고 호령하며 닭의 모가지 비틀던 그분이? 헹 그분들이 좌파면 지존파가 성인입니다. 간만에 저승의 저희에게 큰 웃음을 주신 것에 대해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웃다 보니까 생각이 난 건데, 저희는 참 뻔뻔했습니다. 강호순이나 유영철도 마스크 쓰고 때로는 고개도 숙였는데 저희는 TV 화면 앞에서 뻣뻣이 고개 쳐들고 빙글빙글 웃었으니까요. 압구정동 야타족들 다 죽이고 싶었다고 외쳤으니까요. 사람들은 그 모습에 더 치를 떨었고 늬우침이 없는 것들이라고 발을 굴렀지요. 이번에 길태의 뒤통수를 누가 때려서 길태가 그쪽을 쏘아보는 걸 보고 열통들 내시던데 길태는 우리에 비하면 양반이지요. 기억나세요? 우리 모습?


그때 우리 심정은 그랬지요. 우짜라고. 대가리 숙이고 참회의 눈물이라도 흘리라고? 그런다고 우리가 죽인 사람들이 살아오나? 어차피 당신들은 우릴 죽일 건데 늬우치는 체 한다고 살려 줄 것도 아니고, 이왕 지은 죄 할 말이나 하자. 이런 거였어요. 뭐 이판사판인 거지. 죽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죽이지 못한 사람들이 미워서, 우리 손이 미치지 못하는 저 높은 곳의 인간들이 미워서 그런 말들이 툭툭 튀어나왔던 거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삼국지를 열 번 씩이나 읽었다는 얘기 혹 기억 나시나요? 우린 여포가 되기 싫었던 겁니다. 짜슥이 뒈지려면 좀 멋있게 뒈져야지 말이야.
 



지존파라는 이름은 영화 <지존무상>에서 나왔다.


 



솔직히 길태 정도한테 난리 부루스 추는 거 웃겨요. ㅋ 대표님. 뭐? 좌파교육? 예끼 여보쇼. 솔직히 길태가 아니라 유영철이나 강호순이도 우리는 우습소. 압구정동 야타족들이라도 죽이겠다는 계급적(?) 증오감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안마사 아가씨나 노래방 도우미나 재개발촌 여중생이나 죽여 없앤 새끼들이 무슨 얼어죽을 좌파 교육의 사생아란 말이오.


 


아마 우리가 16년 전이 아니라 지금에사 등장했더라면 안 대표나 조중동이나 미친 년 선무당 된 춤을 추고 있겠다 싶습디다. “좌파 10년 살인마를 낳다.” “부자에 대한 비정상적 증오 누구 탓인가” “정당한 부에 대한 존경 교육 필요하다.” 이 무식한 지존파가 헤드라인을 다 쓸 수 있겠습니다 ㅋ 근데 어쩌죠 우리는 박정희때 태어나고 전두환 때 자라나고 노태우때 별 달고 김영삼 때 사람 죽인 것을.




우리 사건 난 뒤에 어떤 신문에서는 “인간성을 살리자”라는 캠페인을 벌였어요. 그때 우리는 감옥에서 그 얘기를 들으며 낄낄대고 웃었지. 왜? 인간성 회복을 위한 궐기대회나 열고 어깨띠 두르고 인간성을 살리자 구호 천 날 외쳐 봐라 씨발. 하루에 7백만원씩 가볍게 쓰는 사람이 있었고 전셋값 7백만원이 없어 목숨 끊는 인간이 있었는데 (요즘은 단가가 더 올랐겠지만) 이런 기막힌 나라에서 혓바닥만으로 인간성 회복 잘도 되겠다. 그래서 비웃었지요. 근데 그 기막힘이 요즘은 좀 풀렸나요? 우리가 비웃지 않을 만큼? ㅋㅋ




우리 일당 중 하나는 공납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잘렸답니다. "돈 없으면 학교 나오지 마라."는 얘기를 듣는 사람 맘이 어떤지 당해 본 사람은 잘 알 겁니다. 그런데 요즘 웃기는 게 외고 못가고 자사고 못가고 그냥 뺑뺑이 돌려서 들어온 고딩들한테 선생들이 뭐라고 한다고 하는지 들어 보셨어요? “너희는 찌꺼기다.”


 




야 참 나는 그 소리 들으면서 고분고분 공부하는 애들이 용해. 그 선생 그냥 배 수박처럼 갈라서 그 창자 가지고 줄넘기 하지 않고 말이야. 앗..... 아 미치겠네 죄송합니다. 대표님. 이거..... 제 버릇 개 주겠습니까요. 근데 지금 교육 현장이 어떤지는 아시잖아요. 모르면 좀 공부 해 이 시키야. 아이코 죄송합니다. 이거 아직도 수양이 덜 되었네요.




식구들 모여앉아서 우리 차라리 죽어버리자고 얘기해 본 심정이 어떤 건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그렇게 살았어요. 헌데 장담컨대 국민소등 만 불이 되니 안되니 하던 우리 때보다 2만불이 넘니 안넘니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을 겁니다. 안 대표님. 우리는 도시락 없어서 수돗물로 배 채운 적 많은 사람들이요. 요즘은 그런 아이들은 없다고 뿌듯해 하시나요. 우리가 수돗물로 배 채운 이유가 뭐지 아십니까? 뭐 물배 채우기도 있겠지만, 수돗물만큼은 맘대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짜였기 때문이에요. 씨발.  맘 놓고 배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씨발.




대표님이 속한 정당 국회의원들도 참 터진 입이라고 말은 참기름에 낙지 미끄러지듯이 잘도 합디다. 뭐 5만원 정도는 너끈히 낼 수 있는 내 자식이 왜 무상 급식을 받느냐? 부자한테 줄 급식으로 다른 데 투자하자? 내 들으면서 열통이 터지고 다시 한 번 도끼 쥐고 싶습디다. 좋아요 좋아요. 그럼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그 대신 부자들이건 까짓거 5만원 정도는 낼 형편 되는 사람들이건 제 새끼들 급식비를 세금으로 더 내면 안 되나요? 낸대매? 낼 수 있대매? 왜 나같은 사람한테까지 혜택을 주느냐고 지랄이라매?


 



 


와 씨발. 내라고 하라니까요. 왜 안 내는데. 아무리 급식비가 통장으로 나간다고 해도, 애들이 그 눈치 빠른 애들이 아무개는 돈 내고 아무개는 공짜로 먹고 그 꼬라지를 모를 거 같아요? 애들한테 왜 그런 쪽팔림을 줘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 푼돈 그냥 니들이 세금 내면 안돼? 이 불구덩이에 처넣어서 그 살을 볶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야타족들아?

아이고 죄송해요 대표님 용서하세요. 출신이 천해서....... 흥분을 감추지를 못해요. 근데 대표님. 대표님은 대표님의 발언이 매우 창조적이며 독보적인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할 지 모르는데요. 벌써 저희가 범죄를 저질렀던 그 시절에 너구리 닮은 정치인, 왕년에 좌파였다가 5.16을 주도하고 중앙정보부를 만들고 평생 2인자를 징그럽게 해먹었던 정치인도 한 소리예요.




“평준화 교육이 되면서 이상한 사상으로 오염되었다."는 발언 혹시 기억나세요?

세상에 그때 우리는 자포자기를 하고서도 웃었어요. 야 우리 같은 살인마들에서까지 빨갱이 냄새를 맡으려는 저 콧구멍은 개코냐 스컹크 코냐. 콱 그냥 우리가 사람 기절시킬 때 썼던 전기 충격기 콘센트를 그 콧구멍에 꽂아버리고 싶더라니까? 아 뭐 대표님 콧구멍에 그러고 싶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에요. 아무렴요. 요즘같이 공직자들 명예가 신주단지인 판에 (허허 유 장관.....) 저승까지 출두장이 날아오렴 어쩌라구요. 헌데 그때 김종필씨의 발언을 되새겨 보면 지금의 판이 눈에 보여요. 그래요....... 어릴 때부터 싹 격리시켜서 서로 서로 엿볼 수 없는 딴 나라 사람을 만들어야 된다는 거 아니겠어요. 후우...... 근데 그러고도 우리 후배들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랄 자신이 있었을까요? 그럴 염치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대표님께 물어요. 그럴 양심이 있어요?


 





우리가 세상에 무서운 존재로 알려진만큼 우리도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요즘 자살이다 뭐다 저승에 입문하는 한국 국적들 살펴 보면 우리 때보다 세상은 더 무서워진 것 같아요. 우리도 꿈많은 어린 시절도 있었고 열심히 땀흘려 일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꿈이 현실의 칼날에 이그러질때, 땀흘린 성취감이 빼앗긴 박탈감에 상쇄될때의 좌절은 잊을 수가 없었단 말입니다.



 



당시 한겨레 만평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씨발 조또 그러나, 우리는 엽기적인 살인마들이었습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능지처참을 해도 시원치 않은 나쁜 놈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탁 하나 할께요. 우리는 무슨 오멘의 데미안처럼 악마의 씨가 아닙니다. 우리를 만든 것은 아빠의 정자와 엄마의 난자고, 우리를 기른 것은 엄마의 품과 아빠의 손이고 동시에 학교와 사회였어요. 얼마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좌파 교육 탓에 이렇게 되었나요? 정말로 그리 생각하신다면 안 대표님. 고시 패스 돈 주고 하신 겁니다.




솔직히 우리는 우리 후배들이 밉소. 아니 왜 칼을 갈아도 우리같이 “압구정동 야타족”(시도하기 전에 잡혔지만)도 아니고, 지들하고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 불쌍한 사람들한테 칼을 겨누고 전기톱 시동을 건단 말이오. 오히려 좌파 교육이 덜해진 거 아닌가요? 안 대표님 동네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 볼 일이 없겠지. 좀도둑 같은 건 얼씬도 못하고 수상한 사람이 서성거리기라도 하면 대번에 캡스가 출동하겠지요 그죠? 그래요 결국은 우리같은 사람들의 분노마저도 당신들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거나 비슷하거나 고만고만한 사람들한테 퍼부어질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왔고,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안 대표님 행복하십니까. 지금도 좌파 교육 탓을 하고 싶으십니까. 

우리에게 퍼부었던 것처럼 분통을 퍼부으세요. 말려 죽일놈 찢어 죽일놈 욕설을 들이부으시오. 김길태 뒤에 별 말이 다 나옵니다. 청송에 사형장을 만드니 어쩌니........ 참 어찌 그리 똑같은지....... 우리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검찰에서 ‘집중심리제’라는 걸 도입했었어요. 잽싸게 구형 때리고 빠르게 선고받게 해서 신속하게 죽여 없애겠다는 거지. 그러면 우리같은 꼴통들이 겁먹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리라고 순진하게 여기는 것도 똑같고.......



 




안 대표님 한 번 돌아 보세요. 분이 좀 풀리면 돌아보시오. 지존파가 왜 나왔는지.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어요. 하지만 걸레를 들고 뒷수습은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소 잃고도 외양간은 고쳐야 되요, 다시 소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부탁입니다. 박정희 장군 코멘트를 도용한다면... "다시는 우리같은 불행한 살인마가 없도록......." 뒤틀린 세상 좀 바로잡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