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화성 추천0 비추천0

2010.3.22.월요일


화성


 




바야흐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때가 온 것인가? 마구잡이 사냥질로 토끼의 씨는 말라가고 사냥개는 넘쳐나는 판에 선거까지 코앞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개 삶는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필자는 지난번 엄기영 사장의 사퇴 직후에 쓴 기사(MBC 엄기영 사퇴의 본질은 이것이다 )에서 김우룡이 조만간 '짤리게' 될 것임을 예견한 바 있다. 어차피 김우룡은 몸통이 아닌 꼬리에 불과하므로 선거를 앞두고 정권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잡음이 생길만한 꼬리는 자르고 갈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고, 뜬금없이 방문진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는 것을 그 징후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갑자기 터진 김우룡의 '양심선언' 과 다름없는 폭탄발언으로 스스로가 팽(烹)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에게도 당황스러운 사건이었지만 삶을 시기를 놓고 저울질하던 '큰집' 사람들이 느꼈을 당혹감에 비하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키우던 개에게 다른 곳도 아닌 얼굴을 물려버렸으니 쪽팔려서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지금쯤은 또 누구의 조인트를 까대며 분풀이를 하고 있을지가 사뭇 궁금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김우룡이 왜 갑자기 그런 양심적 발언을 하게 된 것일까, 하는 점이다.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 할지라도 최소한 출생의 비밀이나 지저분한 관계설정을 거미줄 엮듯이 엮어놓음으로써 막장짓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쓴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번 사건은 막장 드라마를 뛰어넘어 시공을 초월하는 무협지의 황당한 상상력조차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아무도 그가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하니 다들 그냥 김우룡 개인의 '똘끼'의 발로(發露) 정도로만 이 사건을 이해하려 든다. 낮술을 먹었거나 아니면 과도한 스트레스(탈모 등의 원인으로)로 잠깐  정신이 나가서 한 돌출 행동으로만 보는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입술까지 부르튼 얼굴로 사퇴하는  김우룡)


 


 


과연 그럴까?


자 이 사건의 원인 파악을 위해 그동안 벌어진 일들을 간단하게 나열해 보자. 


 


 







2월 8일| 엄기영 사장 사퇴 - 방문진 이사장인 김우룡의 퇴진 압력에 밀려 결국 '짤린' 것.



 


                                                              ▼      


 






3월 10일| MBC 접수에 큰 공을 세운 것에 크게 고무된 김우룡은 방문진 내 예산소위를 열어 자신의 연봉을 20% 인상함. 경영진에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연봉은 인상한 이유를 묻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방문진 이사장이 MBC 회장급인데 MBC 이사만도 못한 연봉을 받고 있다'며 자신을 '회장'에 비유함.   


 


                                                              ▼     


 






3월 17일| 김우룡은 3월 17일 발행된 신동아 와의 인터뷰에서 MBC 관계사 인사에 대해 <김재철 사장 (혼자 한) 인사가 아니다'면서 큰집(청와대)도 불러다가 ‘쪼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라고 밝혀>논란을 일으킴.



                                                              ▼     









3월 18일| 제주 서귀포 KAL호텔에서 열린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기자회견장에서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종편채널과 보도채널 선정과 관련 <개인적으로 금년 안에 결론을 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닭똥같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위의 사건들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이렇다. 김우룡은 자신이 총대를 메고 엄기영 사장을 몰아냈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되어 자신을 MBC '회장급'에 빗대며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연봉 인상을 단행한다. 그리고 이기간 동안 두 번에 걸쳐 신동아와 만나 인터뷰를 한다.(엄기영 사장이 사퇴한 다음날인 2월 9일과 자신의 연봉을 인상하기 하루 전인 3월 9일이니 얼마나 기고만장할 때였겠는가)


 


그리고 이 인터뷰 기사는 3월 17일, 신동아 4월호가 발행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하필이면 다음날인 3월 18일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종편채널과 보도채널 선정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금년 안에 결론을 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쯤되면 눈썰미가 좀 있는 분들이라면 뭔가 감이 좀 오겠지만, 아직까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분들을 위해 막장 드라마의 대본을 한번 써보기로 하자.


 


먼저 큰집의 입장에서 보자. 방송 장악의 큰 그림은 두말할 것도 없이 큰집의 작품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가카의 명에 의해 이동관 홍보수석이 시놉시스를 작성해서 최시중에게 전달하고, 최시중은 그것을 토대로 방송 대본을 완성한 후 드라마를 찍는다. YTN과 KBS는 비교적 손쉽게 접수하는데 성공하지만  MBC의 경우 노조와 국민들의 저항을 고려해  MBC 출신인 김우룡을 내세워 해결하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꼭두각시에 불과한 김우룡이 마치 자기가 주인공인양 눈치 없이 설쳐대고(경제가 어려워 400만이 백수인 상황에서 자기 연봉인상이나 해대고) 그가 임명한 김재철은 노조의 눈치를 보며 이사 선임에 제동을 걸기까지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동관은 차마 자신보다 14살이나 많은 김우룡은 못 건들고 만만한 김재철(그도 이동관 보다 3살이나 많긴 하지만)을 불러 조인트도 까고 몇대 쥐어박으면서 '똑바로 청소할 것'을 주문한다. 물론 김우룡은 적당한 때에 적당한 명목으로 '짤라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이번 사건을 터뜨린 신동아를 한번 살펴보자.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어떻게 보면 김우룡의 발언보다도 이를 보도한 매체가 신동아라는 사실일 것이다.


 


신동아는 조중동련의 찌라시 중에서도 가카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가장 '꼴통보수'의 논조를 내세우는 동아일보사가 발행하는 월간지다. 설사 김우룡의 똘끼가 발동하여 그런 발언을 했다손치더라도 어떻게든 입막음을 하는 게 정상이다. 적어도 그들이 그동안 보여준 '빨아주기' 행태를 보자면 말이다.


 


더구나 이동관과 최시중이 모두 동아일보 출신임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을 단순히 '특종'을 의식한 기자의 욕심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끌어주고 땡겨주는 선후배의 끈끈함이 미덕으로 자리잡은 그들의 세계에서 대선배를 엿 먹이는 기사를 일개 기자가 윗선의 허락 없이 내보낼 수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여기에서 동아일보와 큰집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부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종편채널 선정'의 문제이다. 알다시피 작년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이후로 조중동 찌라시는 종편채널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준비 작업에 착수하며 그전보다 더 '쎄빠지게' 가카를 빨아줬다. 그런데 처음의 기대와 달리 큰집에서는 뜸만 들이고 선정 작업에 대한 일정을 자꾸만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큰집이 괜히 선정 작업을 늦추는 건 아니다. 철저히 힘의 논리에 따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박쥐같은 언론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조중동의 목줄을 서둘러 풀어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줄듯 말듯 서서히 시간을 끌면서 최대한 이용해 먹겠다는 꼼수가 작용했으리라. 이미 세종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차기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그네 쪽으로 줄을 서는 듯 한 일부 찌라시의 움직임도 감지한 그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종편에 사활을 건 조중동의 입장에선 똥줄이 탈 수 밖에. 만약에라도 이 정권이 지방선거에서 패하여 레임덕이 예상보다 빨리 오게 되면 자칫 어렵게 통과시킨 미디어법도 물건너가게 될지도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무슨 수라도 써야했을 것이다. 하여 자신이 MBC를 장악한 일등공신이라는 생각으로 '간뗑이'가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김우룡의 똥꼬를 살살 간지르며 '껀수'를 잡아내기에 이른다. 


 


"MBC는 쉽지 않았을텐데, 역시 선배님은 대단하시네요. 그 과정 중에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뭐 우리끼리니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양주도 한잔 빠시면서..."


 


" 선배님은 다음에 더 큰일을 하셔야 할 분이니 이번 일과 관련된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습니다. 당연히 큰집의 신임도 두터우신 분이니 그쪽과도 충분한 교감이 있으셨겠지요?" 하는 식으로... 


 


 



                     (어때, 좋지? 우리끼린데 뭐 어때. 속시원히 까놓고 말해봐.)


 


 


김우룡의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에 인터뷰한 매체가 신동아가 아니고 '시사인'이나 '한겨레21'이었어도 그가 그런 발언을 했을까. 경향신문이었어도 감히 큰집 사람을 언급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설치던 와중에 '자기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그들의 덫에 걸려들어 스스로 뜨거운 솥단지 안으로 뛰어든 꼴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의도한대로.


 


한마디로 이번 사건은 정치권력에 대한 언론권력의 경고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확실하게 챙겨주지 않으면 언제든 등뒤에 칼을 꽂을 수 있다는 협박이다. 그리고 그 협박에 굴복해 정치권력은 바로 목줄을 풀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는데, 조만간에 이에 따른 방통위의 후속조치가 있으리라 본다.


 


또한 국정감사나 청문회 개최 요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여론이 더 악화되면 '인적쇄신'이란 명분하에 이동관이나 최시중에 대한 문책성 경질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악재들만 넘쳐나는 선거를 무사히 치르기 위해선 어쩌겠나. 머리만 살릴 수 있다면 손이든 발이든 닥치는 대로 자르고 봐야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서라면 피로 맺은 의리쯤은 언제든 내팽개쳐 버리는 비겁한 세상이다.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온갖 험한일을 다 한사람이라 할지라도 쓸모가 없어지면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로 삶아버리는 무서운 세상이다. 마치 영화 '비열한 거리'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건 그렇고, 더러운 아사리판의 희생견(犬)이 되어 졸지에 전백련 회원이 된  김우룡을 우리까지 모르는 척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가카의 집권 이후로 정권 핵심을 향해 그처럼 용기있는 발언을 한 이는 그가 처음이다. 그는 그 양심 발언을 위해 MBC 회장직도 내놓았고, 20% 인상되어 1억 5천만원이나 되는 연봉도 과감히 포기했다.


 


아무런 조건도 사심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다는 거,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그는 그러니까 바보가 틀림없다. 그의 휑한 머리를 생각하면 짠한 마음에 자다가도 눈물이 솟구친다.


 


 




 


마침, 올해 1월에 제 2회 바보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동일님 이후로 마땅한 인물이 없어 다음 수상자를 내지 못했던 바, 이참에 김우룡씨를 제 3회 딴지 바보상 수상자로 적극 추천한다. 


 


혹시라도 딴지 총수가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가카스러운 변명을 했다간 독자들에게 쪼인트를 까일수도 있으니 부디 서두르시라. 다른 쪽에서 '양심냉장고' 라도 주면서 선수를 치면 뒷북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