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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킥 시청후기

2010-03-2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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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22.월요일

 

연예불패 에혀

 

 

 

 

 

드라마 같은걸 보고 후기를 쓴다는 건 나로써는 처음하는 짓이다. 좀 쓸데없는 짓 같기도 하고. 그러나 원래 내가 좀 “뻘짓” 경향이 있다. 뭐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태클 거시라.

 

 

 

 

 

 

 


지난주 금요일에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이 종영되었다. 내가 꼬박꼬박 챙겨본 몇 안되는 드라마중 하나인데 뭐 엔딩을 두고 말들이 많은 듯 하다. 김병욱PD는 욕 깨나 먹는거 같더만... 사실 사람들은 해피엔딩을 원했을 거다. 해피엔딩 까지 아니더라도 주인공들이 나중에 재회할 수 있을 것 같은 여운을 주는 엔딩을 원했을 거다. 그러나 엔딩은 세경과 지훈의 죽음이었다. 사실 80회차쯤 방영되었을 무렵 주인공중 누군가가 죽는다는 소문이 돌기는 돌았었다. (증권가 찌라시에선 익히 알려진 엔딩이었단다. 걔넨 이런거 알아서 뭐 할려고 이런 소문이 도는건지...) 사실 많이 알려졌다시피 제작자 김병욱PD는 시트콤 엔딩 막장내기로는 전력이 꽤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슬픈 막장엔딩에 대해 성토하기 전에, 이런 뜬금없다 느껴지는 엔딩을 만든 의도가 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금 곱씹어본 끝에 내린 내 결론을 말하자면, 이 시트콤의 막장엔딩은 사실 이 드라마가 사람을 웃기는 와중에도 집요하게 제시해온 문제의식들을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온 사람들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엔딩이라는 거다.

 

 

 

 

 

먼저 하이킥이 웃음을 주는 방식을 분석해 보면, 사회와 인물간의 갈등 또는 인물과 인물간 갈등을 먼저 제시하고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인물들이 사용하는 비상식적인 접근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러는 과정에서 사회문제들을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가장 자주 제시되어온 인물간 갈등은 계급간 갈등이 주를 이룬다. 전형적인 블랙코미디의 구성인 것이다. 그리고 갈등해결을 위해 온갖 헤프닝들이 동원된 뒤에도 대체로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미봉된 형태로 남아 재발하면서 인물들을 괴롭힌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장인이자 사장인 순재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부사장 보석사이의 갈등은 가부장적 가족문화와 기업구조가 결합된 오늘날 대한민국 회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기 바쁘다. 보석은 항상 자신의 부족한 능력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우연히 그 치부를 드러낸 세경을 박대하고, 한편으론 식모인 그녀에게 자신의 부사장직을 뺏기게 될지 모른다는 터무니 없는 우려로 자신을 속박한다. 오늘날의 경쟁적 기업문화와 서열화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명문대 과외선생을 원하는 학부모 현경과 지방대생 정음 사이의 갈등은 이 사회의 학업 서열화와 입시교육문제를 지적한다. 결국 정음은 자신의 학벌을 속이려 온갖 해프닝을 벌이지만 결국 스스로 실토하게 된다. 또한 이 드라마는 그녀의 지방대라는 학력으로 인한 긴 미취업 기간에 대한 묘사와 함께, 진로를 고민않고 부모님을 믿고 소비적 생활을 일삼으며 느슨한 취업준비를 기울이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학벌서열화로 인한 병폐를 지적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아성찰의 고민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도 은근한 책임을 묻는다.

 

 

 

 

 

이 안에서 맺어진 부분적인 해피엔딩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되짚어 볼만하다. 순재와 자옥. 사장과 교사 커플은 애당초 계급차이가 그렇게 많아 나지 않았다. 이들은 결국 결혼에 성공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보석은 결국 회사를 물려받는데 성공한다. 부분적으로 무능 하지만 결국 세상은 가진 자에 더 관대한 것이다.

 

 

 

 

 

반면 가수오디션에 붙고 데뷔에 성공한 인나와 떨어진 광수는 결국 헤어지고 만다.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채 막을 내리지만 바람과 다르게 그 뒤로 둘이 어떻게 갈라서게 될지는 충분히 전개를 통해 암시된다. TV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팬 여러분 모두가 저의 남자친구라고 말하는 장면은 충분히 이별을 암시한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백수 정음과 의사 지훈도 이별한다. 이런 극단적으로 서열화된 자본주의 사회구조 안에서 다른 계급과의 사랑은 결국 비용으로 환원될 뿐이고,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겐 이 비용을 감내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정음은 헤어지며 말한다.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당당해진 후에야 다시 당신앞에 설 수 있을 것 같다고. 계급적 성취 없이는 사랑도 당당할 수는 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결국 계급을 뛰어 넘은 사랑이 가능해지는 순간은 죽음으로써만 완성된다. 세경과 지훈의 교통사고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이 그러하다. 세경은 결국 헤어지는날 지훈과 둘만이 함께 있는 차 안에서 말한다. 계급적 갈등으로 얼마나 힘들었고, 그래서 떠나야 했음을. 그리고 마지막에야 겨우 자신이 사랑했었음을 고백한다. (세경이 지훈에게 하는 마지막 대사에 사실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모든 주제의식이 다 담겨 있다. )

 

 

 

 

 

 

 


"신애 때문에요. 식탐도 많던 애가 먹을 걸 봐도 안 먹고 눈치를 보고... 아파도 병원 갈 돈 없을까봐 걱정하고... 저처럼 쪼그라드는 게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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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시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도 가고... 계급의 사다리를 한칸이라도 올라가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죽을 힘을 다해서 그렇게 사다리를 한칸 올라가면 그 밑에 또 다른 사람이 있겠구나. 물론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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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었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설레고. 행복했어요.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걸레질을 해도 행복했어요. 그러다 문득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그리고 비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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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순간이 오네요. 마음에 담아 둔 말들 꼭 한 번 말하고 싶었는데 이루어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올 지 모르지만 늘 지금 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왔나요? 아쉽네요.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결국 계급화, 서열화된 사회는 사람들을 갈라 놓는다. 사람들은 사랑을 잃고 소외된다. 그리고 결국엔 그것을 당연스레 받아들인다.....

 

 

 

 

 

결론적으로 말해 지붕킥은 사회 드라마이고 계급 드라마다. 설령 예쁘고 밝은 인물들의 얼굴뒤에 희석될지언정 여전히 집요한 문제의식만큼은 살아있던 것이 이 드라마의 특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밝은 얼굴에 속아 문제의식을 희석시킨 사람들이 막장엔딩에 겪는 배신감은 타인의 고통, 사회의 모순에 무감각해온 사람들에게 제작진이 내리는 회초리와 다름없다. 이 드라마는 웃기지만 웃을 일이 아닌 오늘의 우리에게 내리는 경고다.

 

 

 

 

 

ps. 젠장. 쓰고 나니 진부하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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