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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대리점의 소개를 받아 우리 제품의 최종 사용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중에서 수상가옥에 살고 있는 한 가정에 방문할 예정이다.

 

이제 베트남의 시골길은 익숙하다. 아스팔트길과 비포장 흙길이 번갈아 나오고, 길이 좁아지면 오토바이로 갈아타야 하는 길을 여러 번 다녀봤다. 베트남의 운전 매너는 한국과 많이 달라서 차와 차가 슬쩍 부딪히는 접촉사고 같은 건 아무 일도 아니다. 좁은 길에서 마주 오는 차량과 서로 사이드 미러가 부딪치면 그냥 손 흔들고 제 갈길 간다. 차에서 내려보지도 않는다. 비포장의 울퉁불퉁한 흙길에서 우리 차 옆에 달리던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 했는데, 차 옆문을 발로 차서 균형을 잡기도 했다. 우리 역시 조심히 가라고 손짓 한 번 한 것이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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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 중인 직원들

 

이번엔 흙길은 아니지만, 배를 타고 들어간다. 베트남의 남부는 메콩강 하류의 메콩 델타 지역이라서 강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것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가정이 많이 있다. 강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길이 끊어지기도 한다. 아직 교량 건설이 많지 이뤄지지 않아서, 이럴 때면 강을 건너주는 배에 차를 올려서 강 반대편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렇게 두 차례 큰 강을 건너서 도착한 한 강가에는 작은 선착장이 있다. 이번엔 여기에 있는 배 위에 몸만 올라탄 뒤 수상가옥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이 배야? 우리 이거 타고 가는 거야?" 

 

통역 직원에게 물었다.

 

"네. 이 배를 타고 갑니다."

"생각보다 너무 작네."

"그렇죠? 이거 타고 15분 정도 더 가면 우리 제품 사용하는 거래처가 나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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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약간 더 큰 배를 타긴 했다

 

배 사이즈가 그야말로 초라하다. 이 넓은 강에서 작은 배에 몸을 맡겨도 되는 건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다행히 노를 젓는 배가 아니라 배 꽁무니에 모터가 달려있는 나름 '모터보트'라서 배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강을 달린다. 강바람이 얼굴을 세게 내리쳐서 서로 얘기하는 게 어려울 정도다. 또 배가 좁다 보니까 물 위를 달리면서 생기는 물보라에 옷이 다 젖기도 했다. 최대한 배 뒤쪽에 앉아야 한다는 요령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10분 이상 달려서 도착한 지역에는 강 위에서 물고기를 키우고 있는 수상 가옥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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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위에 떠 있는 양어장(수상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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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어장과 집을 이어주는 나무 다리를 건너는 중

 

우선 배에서 내려서 선물을 들고 좁은 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집과 양어장 사이에 있는 좁은 나무다리를 건너기 위해 어떤 직원은 신발을 벗었고, 어떤 직원은 식은 죽 먹기라는 표정으로 자신 있게 건너기 시작한다. 나도 살금살금 나무다리를 건너서 드디어 양어장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신짜오."

 

베트남어로 앳된 모습의 양어장 주인한테 말을 걸었다. 이 지역에서 태어나 친척들과 함께 양어장을 운영하고 있는 남자는 부인과 생후 백일 정도 지난 아이와 함께 강물 위에서 살고 있었다. 옆에 있는 양어장에 계신 건 큰아버지시고, 그 옆엔 작은 삼촌네라서 바쁠 땐 서로 아이를 봐주기도 한다. 이제 막 기어다니기 시작한 아이가 물에 빠질까봐 수상가옥 한편에 네모나게 울타리를 쳐 두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일을 보는 동안 아이는 울타리 안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옆집과 건넛집의 친척들도 다 내가 있는 집으로 건너왔다. 우리 회사의 영업사원 그리고 통역직원과도 서로 인사를 하고, 갓난쟁이가 있는 울타리 옆에 수건 돌리기 하는 것처럼 동그랗게 앉았다. 앉자마자 나에게 담배를 하나 건넨다. 담배를 사양하고 인사를 하는 동안 양어장 사장의 부인이 따뜻한 녹차를 주전자에 담아 왔다. 날이 더운데도 베트남에선 따뜻한 녹차를 즐겨 마신다. 또 손님이 오면 항상 녹차와 담배를 권하는 것 같다. 그렇게 앉아서 우리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게 되었는지, 만족도는 어떤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면서도 처음 보는 신기한 수상가옥 여기저기에 눈길이 간다. 여기서 생활이 가능한 건지, 전기는 들어오는 건지, 괜히 궁금하다. 언뜻 살펴본 결과 집에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다. TV도 있고 주방용품도 보인다. 강기슭에 있는 전신주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고 있는 것 같고, 휴대용 가스버너로 요리를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상수도는 들어오는지, 또 화장실은 어떻게 이용하는지 물어보니, 상수도는 없다고 하고, 화장실은 그냥 바닥에 구멍 뚫어놓으면 화장실이라고 한다. 지금 마시고 있는 녹차도 강물로 끓인 건가 싶었다.

 

궁금한 게 더 많았지만, 제품 사용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생활과 관련된 건 조금만 묻기로 했다.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다시 나무다리를 건너 작은 보트에 올라탔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통역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매일마다 뭍으로 나올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어때? 자주 나오긴 하나?"

"네, 맞습니다. 자주 나오지 못합니다. 태풍이 온다고 할 때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잘 안 나올 겁니다."

"그래? 그럼 애들 학교는 어떻게 다녀? 아까 그 애기도 자라면 학교에 가야될 거 아니야?"

"아마 여기 사는 애들은 거의 학교 안 갈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우리가 거래처 자녀들한테 학용품이나 장난감 같은 거 만들어서 좀 나눠줄까?"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돈 많이 벌어서 괜찮습니다. 이 동네에서 빠르게 부자가 되려면 물고기를 키워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르겠다. 아무리 빨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내가 보기에는 출렁거리는 강물 위에 살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또 '이렇게 살면서 돈만 많이 벌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다. 하긴 혹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도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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