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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괴로운 이유, 홍콩이 힘든 이유

 

사춘기가 괴로운 이유는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고민하고 방황한다. 홍콩은 사춘기 청소년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홍콩은 스스로 정체성을 몰라서 힘들었다. 

 

대만의 사상가 천광싱(陳光興)은 ‘피식민자는 강자의 언어, 억양, 표현 방법 등을 습득한다는 점에서 통치자보다 훨씬 혼종적’이라고 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중국 쪽일까, 아니면 영국 쪽일까라는 물음이 홍콩을 줄곧 힘들게 했다.  

 

사춘기가 힘든 다른 이유로는 나다움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과 다른데 똑같이 취급받기에 답답하다. 홍콩은 자신을 잘 모른다기보다는 인정을 못 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남들과 다른데 다르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다. 중국도 영국도 나를 몰라주는 것은 똑같았다. 홍콩이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홍콩 길거리.jpg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상대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싶어 한다. 사는 곳은 어디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 등을 알고 싶어 한다. 나와 공통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같은 정체성을 지녔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 이해하기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고향이 어디세요’라는 질문을 주고받는다. ‘고향’은 태어난 곳과 성장한 곳, 역대 조상들이 살던 곳 모두를 가리킨다. 그 서너 곳이 나의 정체성을 크게 결정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곳은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오던 곳이다. 

 

(문화적) 유전자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데, 나를 만든 것은 조상들의 유전자이다. 조상들이 대대로 살던 환경이 중요하고, 그다음 내가 성장한 환경이 중요하다. 

 

중국인은 중국에 살고, 홍콩인은 홍콩에 산다. 중국인은 중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홍콩인은 홍콩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르다. 홍콩인과 중국인이 다른 이유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양자 모두 문화적으로나 혈통적으로나 보편적인 ‘중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몇 세대에 걸쳐 홍콩인은 홍콩에서 중국인은 중국에서 성장했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것이다. 

 

사람은 비슷한 사람과 어울릴 때 편안함을 느끼는 법이다. 나와 다른 사람은 불편하다. 문제는 그 다름을 서로 인정해주느냐에 달려있다. 특히 소수(약자)의 정체성은 다수(강자)의 인정 여부에 달려 있다. 소수는 홍콩인, 다수는 중국인이다. 

 

홍콩 시위.jpg

 

갈등이 발생하고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은 다수(강자)인 중국인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일 테다. 

 

“왜 중국인은 홍콩인과의 다름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일까? 중국인과 홍콩인은 무엇이 다른가?”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려 한다. 이해하기 쉽게 내가 눈여겨 보아온 실례를 들어 설명하겠다.

 

 

홍콩인의 성장 환경은 이랬다

 

①자유

 

홍콩에 6개월 이상 살아보면 반드시 홍콩을 다시 찾게 된다는 말이 있다. 유형무형의 자유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익명성’ 또는 ‘내 마음대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등의 말로 표현하고 싶다.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해주는 사회였다.

 

그중에는 언론의 자유도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홍콩의 언론 자유도는 세계 최고를 자랑했다. 언론자유가 바로 홍콩의 자유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발언을 하기 전에 이 말을 해도 될까 안될까 하는 자기검열은 아예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홍콩에는 정치적인 자유도 있었다. 홍콩에 처음 도착해서 내 눈에 들어온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주룽반도의 도로변 아파트에 걸려 있는 국기였다. 샌프란시스코의 단독주택 여기저기에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듯이, 홍콩의 아파트에는 대만을 상징하는 ‘청천백일기’도 중국을 상징하는 ‘오성홍기’도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알고 보니 일반 가정인 경우도 있고, 향우회도 있고, 친대만 혹은 친중국 관련 협회 사무실도 있었다. 상대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간섭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제 갈 길을 가면 되었다. 네가 반드시 내 쪽으로 와야 한다는 강요도 없었다.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중국인(華人)’ 학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은퇴하고 오는 곳이 홍콩이(었)다. 중국 문화가 주류인 데다가, 서구사회만큼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회라는 반증이었다. 중국인들에게, 특히 서구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홍콩보다 더 편한 공간은 없었다. 

 

일상생활에서도 홍콩의 특징, 가치관을 볼 수 있는 모습들이 있다. 우선 횡단보도 건너기를 말 할 수 있겠다. 법률과 제도를 자랑하는 홍콩이지만, 보행자는 빨간 신호등에 길을 건널 수 있다. 양쪽으로 차가 오지 않을 때 요령껏 길을 건넌다. 

 

길 건너기.PNG

출처-brunch<홍콩 필름; 길 위의 군상>

 

물론 자동차는 신호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나는 홍콩에서 자동차가 신호를 위반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보행자는 가능하다. 이쪽저쪽으로 차가 다니지 않을 때 파란불이 켜지길 하염없이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냥 건너면 된다.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홍콩에는 그런 자유가 있다.  

 

학위를 받고 귀국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야기다. 도로를 무단 횡단하다가 벌금 딱지를 받았다. 경찰이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지만, 양쪽에서 차가 오지 않았기에 씩씩하게 도로를 횡단했다. 바로 앞에서 권위를 훼손당한 경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딱지를 끊었다. 양쪽으로 차가 없었기에 도로를 건넜다는 내 인식이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기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또 다른 걸로는 에스컬레이터 위의 보행이다. 홍콩에서는 걸어서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것이 정상이다. 보행자의 미덕으로 장려되던 시절도 있었다. 언젠가부터 한국도 그런 추세에 있지만, 홍콩에서는 애초부터 에스컬레이터의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한쪽은 비워뒀다. 운행 중에 가만히 서 있고 싶은 사람들은 다른 쪽을 선택하면 된다. 처음부터 이런 문화가 가능했던 건 홍콩인의 시각에선 에스컬레이터에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도 억압이었기 때문이다.  

 

에스컬레이터.jpg

다음 블로그-<산하 사랑>

 

 

②지켜지는 원칙(법률과 제도)

  

나는 홍콩의 가장 큰 장점으로 원칙준수를 꼽고 싶다. 홍콩은 원칙이 있고, 원칙이 지켜지는 곳이다. 이젠 그런 곳이었다고 해야 맞겠다. 나이가 들면서 원칙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는 원칙이 있고,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 코로나 사태라는 특이한 상황을 맞이하여 내 관심사는 줄곧 원칙과 그것의 준수였다. 

 

지키지 못할 원칙은 만들지 말고, 일단 만들어진 원칙은 사회 전체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홍콩이 원칙을 지키는 사회라는 이야기를 풀 때, 친구들에게도 강의실에서도 자주 꺼내는 화제가 있다. 

 

하나는 ‘택시 타기’요, 다른 하나는 '자동차 선팅'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홍콩에서는 택시를 탈 수 있는 곳이 따로 있다. 노란 선이나 이중의 선이 그려진 곳은 모든 차량이 주정차를 할 수 없다. 교통의 흐름을 위해 그런 규정을 만들어 둔 것이다. 홍콩에서 사는 동안 나는 그 선을 위반하며 주정차하는 택시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택시 승차장.jpg

홍콩의 택시 승차장

 

자동차 선팅도 마찬가지다. 각국은 안전 운행과 범죄 예방 차원에서 차 유리창의 가시광선 투과율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운전을 방해할 수 있고, 자동차 내부를 볼 수 없기에 범죄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뒤에 따라오는 차가 앞차의 유리창을 통해 미리 앞의 교통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도 있다. 

 

법률을 위반할 경우 일본에서는 선팅 업자를 구속하고, 네덜란드에서는 차량을 압수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선팅 차량이 사고가 나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물론 홍콩에서도 영국과 같은 법률이 적용되는데, 나는 홍콩에서 선팅한 자동차를 한 대도 보지 못했다. 

 

한국에도 규정은 있다. 가시광선 투과율이 전면 유리 70% 이상, 앞 좌석 측면 유리 40%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차 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선팅을 하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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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자동차들. 짙은 선팅이 보이지 않는다.

 

학자들은 이런 '원칙의 홍콩'이라는 테마를 자주 다룬다. 중국인이 통치하는 나라(중국, 대만 등)에서는 원칙, 즉 법제가 홍콩처럼 이렇게 철저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도로교통 관련 법률과 적용은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사회를 분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홍콩에는 원칙과 자유가 있었다.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문화적) 유전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개인의 생각, 선택, 취향이 존중되는 사회였다. 학자들은 그것의 바탕에 영국의 합리성이 있다고 본다. 영국식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머거리지(Malcolm Muggeridge)는 ‘인도인들은 최후의 살아있는 영국인들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홍콩인들은 최후의 살아있는 영국인들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인보다는 영국인에 가깝다는 말이다. 

 

 

정체성을 만드는 성장 환경

 

나는 두뇌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홍콩인의 정체성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두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를 가지고 정체성을 분석하고 싶었다. 

 

이제 나는 ‘저 사람은 왜 저래?’,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그런 이유는 그 사람의 두뇌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선천적(유전자)이고, 후천적(환경)인 영향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두뇌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 바바라 오클리는 가정교육, 종교, 정치적 신념, 교육적 배경, 노동 경험 등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의 신경계 수정체를 각각 다르게 만들어 낸다고 했다. 성장 환경은 두뇌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역(국가)의 정체성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인은 어떤 두뇌와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홍콩인과 충돌할까.

 

 

중국인의 성장 환경 : 국가와 당

 

중국(대륙)인들과 대화를 하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우리와 다른 사회주의적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비록 개혁개방을 해서 자본주의 요소를 많이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일당독재로 국가를 이끌고 있다. 중국인들 중에 입만 열면 조국, 애국, 인민, 시진핑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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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멍완저우 부회장

 

2021년 9월 말 캐나다에서 귀국한 화웨이(華為) 그룹의 멍완저우(孟晚舟)부회장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으로 체포되어 가택연금 당한 지 2년 9개월 만에 정부가 보내준 전세기편으로 돌아왔다. 귀국 과정을 보면, 애국주의 열풍 그 자체였다. 그녀의 도착 성명은 현행 중국의 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류영하(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계속>  

 

 

 

추신 : 다음 편에선 멍완저우 부회장의 귀국 과정에선 어떤 모습들이 있었는지, 중국인들의 성장 환경은 어떻고 그 성장 환경은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는지부터 시작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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