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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추천0 비추천0

2012. 03. 29. 목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8부작으로 방송한 '알래스카 실험- 야생탈출' 을 보았다.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에 도시인들 9명을 알래스카 오지에 비행기로 떨어트려 놓고 최소한의 장비만 지급한 뒤, 이들에게 바로 다음 번 목표만을 알려주는 식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야생으로부터 문명으로의 탈출을 하도록 하는 플롯의 시리즈물.


 



 


 




 


문명의 도움이 끊어진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보니 전에 이런 기사를 쓴 적도 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즐기기도 하고,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는 사람들도 늘어나고는 있지만, 실제 자연은 모닥불 피워놓고 바베큐 먹으면서 맥주 캔 들고 담소를 나누는 낭만적인 것 하고는 거리가 멀다.

 


적절한 장비와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또 생존에 필요한 먹거리가 주변에 풍족하게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연 속의 삶은 처절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돌변한다. 여차하면 죽는다.

 


이 시리즈물에서도 등장인물들은 평생 처음 맛보는 환경,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초겨울의 알래스카에서 오로지 먹을 것과 쉴 곳을 찾아 헤매이도록 강요 받으면서 그 야생의 환경을 탈출해서 다시 문명으로 돌아오기 위해 강행군을 시도한다.


이 시리즈가 특별하게 더 눈길을 끈 이유는 이런 류의 프로그램에서 흔히 나오는 불 피우기, 사냥하기, 다람쥐 잡아 먹고 뇌조 잡아먹고 뭐 이런 것들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핵심은 이 행군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휴대용 GPS 발신기가 주어지고 언제든지 포기하는 순간, 버튼만 누르면 헬기가 날아와서 포기한 사람을 데려가는, 정말로 포기하기 쉬운 환경이라는 점이다. 수틀리면 버튼만 누르면 되는거야. 그 날로 헬기타고 호텔로 돌아가서 더운 물에 샤워하고 만찬을 즐길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시작할 때 9명이 참여해서 최종적으로 4명이 임무를 완수하게 되는 이 전체 시나리오에서 포기하고 탈락하는 사람들의 캐릭터가 전혀 예상 밖이었다는 거다.

 


최초의 탈락자는 가장 경험이 많고, 나이도 많은 여성이었는데 명확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다른 동료들의 무능에 좌절한 탓에 포기하는 걸로 보였다. 야생의 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수칙조차 모르고, 그걸 설명해 주는 말에도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에 좌절했다는 거다.

 


두 번째로는 두명이 동시에 포기한다. 한명은 체력이 지극히 떨어지는 40대 후반의 흑인 남성. 자신이 동료들의 행군 속도에 맞출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스스로 포기를 하게 되는 거다.

 


또 한 명은 등산과 사냥에 경험이 있는 가이드급 실력자. 정해진 시간내에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행군 속도를 못 따라오는 중년 흑인을 감싸는 동료들과 싸움을 한판 벌이더니 자진해서 포기해 버린 것이다.

 


3명이 탈락한 후 남은 6명은 곧잘 해 나가는 것 같더니, 또 한명의 탈락자가 등장한다. 팀 중에서 가장 건장한 젊은 경찰관. 가장 많은 짐을 지고,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팀에 공헌도가 가장 높던 그는 자신의 체구를 유지할만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영양실조 증세를 보이면서 쓰러져 버리게 된다.

 


그 뒤로 남은 5명은 점차로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거의 끝까지 고난의 행군을 완주한다. 하지만, 이 행군이 어디서 끝나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또 주어진 새로운 미션에 좌절해 버린 일본계 여성 변호사는 거의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포기해 버린다.

 


그리고 남은 4명은 무리해 보이는 미션을 절망적인 심정으로 수행하던 도중, 버려진 마을을 발견하고, 그 마을을 통과하는 철도를 발견한 뒤, 열차를 기다려 문명으로 귀환.

 


별 거 아닌 스토리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사회의 각 계층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보였다. 아니 이들이 처한 상황 자체가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는 생각까지 들고 말았다.

 


이들은 야생의 환경에서 스스로 몸을 움직여 문명의 세계로 돌아오려고 기약없는 행군을 지속하고 있었다. 가끔 나타나는 사냥꾼들의 쉘터에서 삼사일씩 쉬면서 체력을 보충한 후 또 다음 번 목적지로 떠나는 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속한 이 사회, 야만이 지배하는 정글같은 약육강식의 사회를 보다 진보한 문명사회로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다. 끊임 없는 정치적 투쟁을 통해서 말이다. 가끔 조금 나은 집권층이 등장하면 잠시 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목적지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다가 극악한 정권을 만나면 다시 피 튀기게 싸우게 되기도 한다.

 


양쪽 모두, 목적한 바가 언제 이루어질지 기약이 없다. 기약이 없는 상황 속에서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는 미약한 희망만을 가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 까지 똑같다.

 


행군을 포기하고 GPS 버튼을 누르면 구출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구현되지 않은 기능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민을 가버리거나 자살을 해버리는 것일텐데, 그 비유는 결코 맘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회의 변화를 위해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을 멈추고, 무관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 더 그럴싸하다.

 


맨 먼저 포기한 나이많고 경험많은 여성은, 사회변혁과 정치에 등을 돌려버린 무책임한 지식인 계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구성원들의 무지를 비난하고, 그 무지를 깨우쳐 주려고 훈장질을 하다가 오히려 구성원들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은 떠나 버린다.

 


그 사이에 구성원들이 조막만한 다람쥐를 한마리 잡아서 껍질을 벗기고 구워 먹는 일이 있었는데 하필 그 여성은 혼자서 사냥 중이라 빠지게 되고, 다들 굶는 상황에서 겨우 쥐 한 마리 잡아 8명이 나눠 먹은 건데, 자기 몫을 남겨놓지 않았다고 화까지 낸다. 구차한 지식인의 모습.

 


두 번째로 포기한 가이드급 실력자와 중년 흑인의 모습은 가장 의미심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다음 번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산을 넘어야 하는 과정에서 일행의 속도를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흑인은 그 때 까지만 해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지키면서라도 따라오려고 노력을 한다. 다른 구성원들이 그의 노력을 존중하고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려고 짐까지 나눠 지는 형편에 이르자, 리더 역할을 하던 멤버는 결국 팀의 안전을 위해 당신이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하게 되는 거다.

 


이 부분은 약자에 대한 보호,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시금 생각케 해주는 부분이다. 과연 팀의 생존을 위해 짐이 되는 약자는 제껴 버려야 하는 것인가, 반대로 약자를 보호하려다가 모두가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풀기 힘든 질문이 나온다.

 



 

결국 이 둘 모두가 빠져버림으로써 팀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 두가지 부류를 빼 버릴 수가 없다. 약자를 포기시킬 수도, 약자를 포기시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빼 버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모두 함께 가야 되는 거니까.

 


네 번째로 포기하는 건장한 경찰관의 모습은 분배의 정의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음식물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겨우 구한 소량의 음식물은 공평하게 똑같이 나눠 먹는 게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음식물을 구하는 데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사람, 거기에 팀의 유지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하는 사람이 체구가 커서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단순한 균등분배는 결코 공평하지 않은 처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팀은 가장 큰 동력을 잃게 되고, 필요한 자원을 구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포기하는 일본계 여성의 모습은, 진보의 역사가 주는 피로감을 상징하는 것 같다. 고통스럽고 힘든 길을 동료애로 버텨 오긴 했지만, 도대체 이 고행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얼마나 더 버텨야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은 사회를 변혁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찾아 오는 절망의 목소리가 된다.

 


잡아온 동물들을 앞장서서 손질하고 부족한 재료를 가지고서 팀원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헌신하던 그 여성은 그렇게 행군의 막바지에 떨어져 나가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터무니없어 보이는 목표를 향해 행군하던 나머지 사람들은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고 야생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들이 열차에서 내리던 기차역에는 한 달여 동안의 행군동안 그렇게 그리워하던 가족들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고, 그들의 행군은 그렇게 행복한 성취감 속에 막을 내리게 된다.


 




 


당연히 예상하기로는 사냥 경험자, 등반 전문가, 체력 좋고 힘이 센 젊은이, 이런 사람들이 더 오래 버티고 임무를 완수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끝까지 버텨낸 사람들은 뉴욕이나 시카고 출신 도시인들로 야생의 생활이라고는 어려서 부모님 따라갔던 캠핑 말고는 없는 흔한 일반인들이었다.

 


오히려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더 먼저 좌절하고 더 먼저 포기해버린다. 거기에 이 멤버들은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했다. 끝까지 버티다가 막판에 포기해 버리는 안타까운 상황까지도 연출한다.

 


경험과 지식, 이성과 합리가 아니라, 곤경에 굴하지 않는 열정, 멘탈과 감성이 승리했다. 생존의 기술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무지한 구성원들이 그 짧은 경험을 통해 강력한 팀을 구성하고 일을 분담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버텨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감탄과 함께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맞다.

 


우리 사회와 이 역사의 주인공이자 주인들은 바로 저런 사람들이라는 거다.

 



 


바로 그들이 먹고 살기에 바빠 평소에는 정치에 전혀 관심도 없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아주 기초적인 상식에 의거한 판단을 내려주고 그 힘으로 역사는 진보해 간다는 것이다. 수많은 정치가들과 진보적 리더, 유명인사들은 그저 광대에 불과한 거다. 때가 되면 더 먼저 포기해 버릴 사람들이고, 더 빨리 변절해버릴 사람들이다.

 


생존의 법칙도 모르는 거 같고, 경험도 없고, 합리적인 판단도 내릴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답답하기 이를 데 없고, 바로 코 앞에 닥친 위험도 인지할 줄 모른다. 복장 터지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주인이다. 역사의 주인이고, 이 사회의 주인들이다.

 


역사가 이어지는 한, 마지막에 웃을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고,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결정권은 그들이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좀 더 존중하고 공경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사실 그들이 바로 우리거든.


 


정치부장 물뚝심송


twitter: @murutuk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