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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30. 금요일

딴지관광청 썸머

 

 

 

 

 

 

 

 

 

 

 

 

 

이것은 낯선 이에게 자기 침대를 내어주고, 자꾸 먹을 것을 권하던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미국인 남자 하나가 아이슬랜드로 여행을 계획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호텔이나 숙박업소에 머물다 관광지를 돌아보는 여행이 아닌, 현지인들의 집에 머물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친구네 나라에, 친구네 집에 놀러가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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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남자가 홈스테이 주선 업체에 가입해 일정의 비용을 내고 단란한 아이슬랜드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다면 굳이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남자는 새로운 길을 만들기로 했다. 천 명이 넘는 아이슬랜드 대학생들에게 다짜고짜 이메일을 보내 “나 너희 집에서 좀 재워줘! 마룻바닥이든 카우치든 괜찮아.” 라고 물었고 50통이 넘는 초대메일을 받았다.

 

 

남자가 아이슬랜드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이후 행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남자는 미국에 돌아와 <카우치 서핑 프로젝트>를 본격화하고 비영리 성격의 단체와 사이트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프로필을 정성껏 작성하고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검색해 그에게 자신을 초대해 줄 것을 요청한다. 초대를 요청하는 측을 서퍼(Surfer), 그 반대쪽에서 집을 개방하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측을 호스트(Host)라고 한다. 사이트 이용은 무료이며, 호스트가 서퍼에게 제공하는 편의-잠자리, 식사, 여행안내 등-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선의로 즉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

 

 

나는 2010년 10월에 아일랜드로 날아가 그곳에서 9개월간 장애우 복지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한 후, 2011년 7월, 8월, 9월, 뜨거운 여름의 유럽을 카우치 서핑을 이용해 여행했고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 볼 참이다. 여행에 관련된 이야기니 나의 여행력에 대해, 특히 그 여행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시점의 상태에 대해 조금 풀어보자

 

 

 

 

 

서른세 살의 나는 그동안 수두룩하게 많은 곳을 여행했다. 아시아, 유럽, 남미... 한국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 하거나 가본 곳이라면 나도 갔다. 나의 여행 패턴은 이랬다. 가고 싶은 곳을 고른다. 예를 들어 쿠바. 포털 검색어 입력창에 쿠바를 입력한다. 영혼을 쏙 빨아들이는 사진빨과 말빨로 장식된 블로그 포스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것들을 통해 쿠바공항부터 후미진 뒷골목까지 다닐 수가 있다. 탱고가락이 귀에 남실거리고, 사람들이 피워대는 시가냄새가 콤콤하게 맡아질 정도의 고밀도 대리체험을 한다. 자, 이제 비행기표를 끊나? 아니다. 나는 쿠바에 질렸다. 끝. 그렇게 나는 손가락과 눈알을 분주히 움직여 머리로 여행을 했다.

 

 

그래서 비행기표를 내 손으로 사본 적도, 여행계획을 짜 본 적도 없었다. 가이드가 붙는 동남아 패키지여행을 3박 4일 일정으로 두 번 했고, 일주일 정도의 자유여행을 유럽과 뉴질랜드에서 했는데 늘 동행자가 각종 예약이며 루트를 짜 놓고 나는 그에 따르기만 했다.

 

 

아! 말을 똑바로 하자면 나는 ‘따르기만’ 하지는 않았다. 나는 불만이 많았다. 동행자가 예약한 숙소는 위치가 마음에 들면 인테리어가 싫었고, 인테리어가 좋으면 아침밥이 부실했다. 그가 찾아놓은 맛집은 사진에서 본 것(!)만큼 맛있지가 않았다. 또한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 숙소나 교통에 불만을 항의할 때 그의 어눌한 외국어가 나는 창피하기만 했다.

 

 

그가 표지판과 지도의 스펠링을 맞추기 급급하거나 길을 제대로 못 찾으면 한심하다는 표정을 자주 지어 주었다, 나는 누군가가 짜놓은 판에 폴짝 올라타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말만 가득인 얌체. 그 판을 짜고 끌고 나가는 것이 어떤 부담과 성취감과 좌절과 희열을 주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참! 혼자서 여행을 해본 적은 애초 없다. 그리고 지금보다 10kg이 덜 나갔다.

 

 

좌우간, 그랬던 여행력을 되짚으며 “어눌한 여행은 하지 않겠어!” 라는 각오를 했고, 이후 완벽한 여행을 위한 완벽한 선택을 척척 해내...는 꿈을 꾸었다. 당신의 예상이 맞다. 여행에서 그런 각오는 씨알도 먹히지 않으며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것을 알 리 없던 나의 여행은, 쉽게 예견되듯,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비행기표야 저가항공 전문 사이트에서 가장 저렴한 것을 끊어놓았는데, 문제는 숙소였다. 첫 번째 나라였던 벨기에의 모든 호스텔을 검색해 후기를 모조리 읽는데 몇박 몇일이 소요되었다. 시간소요는 차치하고 강도 높은 정신노동이 수반되었다. 평점 9점인 곳에도 불만을 쏟아놓는 후기가 있었고, 청결함에서 별 5개인 곳에 깔끔함이 좋았다는 후기와 더럽기로는 다리밑 거지소굴 같다는 후기가 동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 중에 어떤 놈이 알바일까, 혹은 어떤 놈이 호스텔에 의도적으로 엿을 먹이려는 걸까를 구분하려 하니 정신적으로 너무나 지쳤고 도무지 숙소를 결정할 수가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동료 봉사자들은 혀를 찼다. 그들은 대체로 우리나이로 20대 초반의 유럽인들인데 이 아이들이 휴가를 내고 여행을 다니는 것을 지켜보면 이랬다. 가장 싼 비행기표를 끊는다. 가장 튼튼한 신발을 챙긴다. 몸을 덮을 정도의 옷을 챙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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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좋아하는 니콜라스의 여행준비 끝!>

 

 

 

 

 

"옷은 더 챙기지 않아? 바람 불면 어떡해? 습하면 어떡해? 추우면 어떡해? 더우면 어떡해?"

"가 봐서 필요하게 되면 사지 뭐."

"그럼 어디에서 자?"

"가서 구하지 뭐."

 

 

 

 

 

이런 녀석들에게 내가 숙소를 고르는 꼴은 무슨 영생의 성수를 부어 마실 성배를 목숨 걸고 고르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헤이, 썸머. 3개월간 여행을 하는데 네가 몇 군데에서 잠을 잘지 생각해봐. 그때마다 이 정도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어? Take it easy!"

 

 

 

 

 

모든 것이 준비되고, 모든 것이 들어맞아야 직성이 풀리는(슬리퍼도 기내용, 실내용, 실외용을 챙겼을 정도) 나에게 자유여행이라는 것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인가 할 때쯤 카우치 서핑에 대해 알게 되었다. 독일인 자원봉사자 커플인 루카스와 미아는 아일랜드 전역을 자동차로 돌아볼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고, 역시 “그럼 숙소는?” 이라고 묻는 내 질문에 그 단어를 꺼냈다.

 

 

 

 

 

"응. 카우치 서핑 찾아보고 있어. 아일랜드 사람들 집에 가보고 싶거든. 그런데 우리는 둘이라 쉽게 잡힐지는 모르겠어. 너는 혼자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한 번 해봐."

 

 

 

 

 

혼자서 호텔을 잡는 것은 부담스럽고 호스텔은 고르다가 지쳤다. 가정집이라면? 아무리 낡거나 지저분하다 해도 가정집이 주는 안락함이라는 게 있지 않나? 외국에 친척집, 혹은 친구집이 있다고 해보자. 그 나라에 놀러가 그 집에 머문다면 걔네 집이 이렇네 저렇네 따지지 않는다. 머물게 해 주니 고마울 뿐이다. 그래! 숙소보다는 집! 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이었다. 시작은 그랬다. 진정한 문화교류라는 카우치 서핑의 주된 목적은 아주 나중에 카우치 서핑을 실제로 하던 중에,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캐츠프라이즈가 아닌 가슴 한켠의 울렁거림으로 확실히 느끼게 되었고.

 

 

그 길로 카우치 서핑 사이트에 들어가, 수백만 회원 중,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사는 사람들을 추리고 그 중에서 한국어나 일본어를 공부하거나, 동양문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골랐다. 사이트가 검색기를 돌려 내게 보내준 사람은 딱 두 명이었다. 그 중 한명은 내가 벨기에에 가는 그날 한국으로 여행을 간다니 함께 지낼 순 없었어도 오히려 굉장한 인연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한명. 그는 일본어, 중국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스물다섯의 직장인. 핵심적으로 그의 프로필 사진이 앞치마를 걸치고 쿠킹클래스 같은 것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카우치 요청을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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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그에게서 답장 메일을 받았다.

 

 

- 와우. 네 메시지 정말 마음에 들어! 한국 요리 먹어 보고 싶어!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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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녀석이 먹게 된 닭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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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녀석이 구워준 대량의 와플! 럼주를 잔뜩 넣어 꽤 취해버렸다.>

 

 

 

 

 

카우치 서핑에 대한 자세한 시스템이나 이용현황은 이렇게 첫 번째 카우치가 정해지고 나서야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첫 번째 여행지인 브뤼셀에서 카우치를 구하지 못한다면 아예 카우치 서핑을 하지 않을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냥 한 번 해볼까? 라는 가벼운 기분이었을 뿐이다.

 

 

재밌었던 것은 사람들이 서로의 프로필 페이지에 서로에 대한 평가를 남기고 있었다는 거다.(마치 쇼핑몰 구매 후기처럼!) 그것들을 읽어보니 근 몇 년 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사이트를 이용하고(우리나라 회원도 1만 명에 가깝다.) 서로 만나며 발생했을 아름다운 일화의 수만큼 사건사고도 가득했다. 아무런 연락없이 나타나지 않는 서퍼, 수락해 놓고는 당일에 취소하는 호스트, 심지어 호스트의 카메라를 들고 튄 서퍼, 서퍼의 지갑을 턴 호스트까지...

 

 

이런 상황들은 예상이나 추정이 아닌 실제로 일어났고 또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로부터 추려져 카우치 서핑 이용 매뉴얼의 형태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서퍼와 호스트가 지켜야 할 예의, 안전을 위한 대비책부터 시작해, 호스트네 물이나 과일을 먹어도 되는가, 요리를 할 경우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등등 시시콜콜할 정도다. (실제로 해보면 알게 되겠지만, 매뉴얼은 그저 매뉴얼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내가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완전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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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오일 파스타 위에 참치알 말린 것을 열심히 갈아 넣고 있는 이탈리아의 루카.

모든 식재료는 물론 젤라또, 커피 등 자잘한 것도 내가 지갑을 열려고 하면 손사래를 쳤다.>

 

 

 

 

 

카우치 서핑에 대해 알아볼수록 강하게 든 생각은, 가느다란 인터넷 라인과 평면의 모니터와 디지털 이미지와 텍스트 너머로 무언가가 강하게 꿈틀대고 있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하나의 거대한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거다.

 

 

사람들은 식물처럼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자신을 열어 보이며 서로 만나길 원하고, 한결같이 교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을 위해 ‘모르는 이’에게 초대받기를 원하며 ‘모르는 이’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집을 개방한다. 카우치를 요청한다는 것은 ‘당신과 함께 여행하고 싶다’는 의미와 같다. 심지어 어떤 호스트는 1박만 하겠다는 서퍼는 받지 않겠다고 명시한다. 단 하룻밤 자고 가는 것으로 우리가 어떤 교감을 느낄 수 있겠느냐는 거다. 우리 집은 무료 호스텔이 아니라는 거다.

 

 

 

 

 

이쯤 알고 나자, 그리고 두어 번쯤 경험해 보고 나자 호스트는 돈을 받지 않지만, “카우치 서핑은 공짜가 아니다!”는 결론이 내 맘대로 내려졌다. 호스트와 서퍼는 서로 교류를 할 시간과 에너지를 지출할 자세와 준비가 되지 않으면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호스트는 서퍼를 데리고 명소에도 가고 맛있다는 레스토랑에도 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관광가이드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나라에 대한 정보를 쏟아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문화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반대로 서퍼의 나라에도 관심이 있고(당연히) 궁금한 것도 많다. 나 역시 함께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고 우리나라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호스트가 편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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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이것 좀 보라구!!!! 너희는 어떻게 이런 걸 만들어 우릴 놀릴 수 있지?"시칠리아에서 만난 프란체스코는 2002년 월드컵에서 일어난 일이 아직도 분통하다. 그가 난생처음 만난 한국인에게(바로 나) 유튜브를 검색해 보여준 이 화면은 다름 아닌 돼지바 CF. 축구는 잘 모르지만 성깔만은 훌리건 맞먹는 나는 “니들이 그렇게 흥분하니까 진 거라고! Stupid Azuri!” 라고 응수해 주었다.>

 

 

 

 

 

이런 흐름 때문에 카우치 서핑을 하게 되면 방문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보려는 자세가 생기며, 자국에 대해서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두루 도통하지 못한 나는 요리라면 조금 할 줄 안다. 그래서 자원봉사지에서 차로 두 시간 떨어진 아시안 수퍼마켓에 꾸역꾸역 찾아가 고추장과 참기름, 당면, 떡볶이 떡, 김밥용 김을 한가득 사는 것으로 카우치 서핑에 대한 준비를 했다. 말했지 않는가. 카우치 서핑은 공짜가 아니라고.

 

 

돈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결론적으로 나는 무척 풍족한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여행의 마지막 3일을 제외하고는 단 한 푼도 숙박비로 지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행의 총 경비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숙박비로 썼을 돈을 나의 사람들과 나 자신을 위해 썼기 때문이다.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를 사서 호스트나 그의 가족들,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 먹였다. 요리를 할 수 없으면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사거나 작은 선물이라도 건네는 등 감사표시를 꼭 했다. 박물관이나 명소 앞에서 입장료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고, 이탈리아의 땡볕 아래 젤라또를 보고 침만 삼키지 않아도 되었다. 돈을 쓰되 제대로, 즐겁게 쓰고 왔다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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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열흘간 함께 지낸 가족에게 선물한 식초 한 병>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나로서 카우치 서핑을 선택한 것은 너무나 엉뚱한 결정이다.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여행의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하겠다고 했을 때는 무슨 대단한 각오라도 있을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기야, 남자에게 차여 아일랜드로 도피성 자원봉사를 떠난 순간부터 나는 “이것이 바로 나”라고 여겨왔던 것들과 그에 위배되는 새로운 결정들 사이에서 정신이 없기도 했다.

 

 

어쩌면 카우치 서핑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여행이라는 놈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여행을 한다며, 완벽한 호스텔을 골라낸다며 설치다가 지쳐 떨어져 만사 귀찮아지지 않았더라면 나의 여행은 달랐을 것이다. 더불어 지금의 인생 역시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카우치 서핑에 필요한 것은 딱 하나다.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는 용기!

 

 

 

 

 

 

 

<힐링여행은 노매드에서! 그림을 야무지게 클릭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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