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jpg



트라우마


과거 겪은 고통이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유사한 상황 발생 시 불안한 증세를 겪는 현상.


나는 테러가 있던 현장에 있지 않았다. 집 안에서 TV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저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 파리 시내이자, 가끔 가던 동네라는 사실 말고는 그 어떤 접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 나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지난 화요일, 수업을 위해 북역에 가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 예정 시각이 20분이 지나도 기차가 출발을 하지 않는다. 안내 방송은 나오는데 소리가 마구 마구 울리는 바람에 일개 외국인인 나는 알아듣기가 힘들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지금 사람들 몇 명이 철로 위에 있어서 기차가 출발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순간 정말 많은 갈등을 했다. 수업 시간에 맞추어서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수업을 취소할까 했지만 그래도 학교는 갔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목요일,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내가 탄 RER(광역 지하철) B선이 갑자기 속도를 현저히 낮추더니 정거장이 아닌 곳에서 멈추어 섰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 내가 이 글을 쓰고 앉아 있겠지.


사실, 파리에서 지하철 연착 및 운행 중 정거는 일상다반사다. 한국이라면 뉴스에 나올 수 있을 사건일 테지만 이 곳에서는 워낙 자주 일어나는 일. 보통 때라면 그저 코웃음 치며 테트리스 게임이나 계속하고 있었을 테다. 그런데 이놈의 트라우마. 그리고 아직 테러 위협이 제거되지 않았다며 수배자의 얼굴과 만약 생화학 테러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따위의 정보를 계속해서 내보내는 언론, 그리고 전에 없이 부쩍 자주 보이는 세계 곳곳의 테러 관련 소식. 이 모든 것은 이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던 파리의 풍경을, 그리고 그런 파리에서 사는 나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테러가 발생한 지 48시간이 되지 않은 일요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정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에 꽃과 초를 들고 나와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었다. 갑자기 인근의 마래 지구에서 전등이 폭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주변은 혼란에 빠졌고, 레퓌블리크 광장에 모인 사람들도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소동이 발생했다. 이는 파리에 남아 있는 긴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TF 1>은 집단 히스테리 증상이라 진단했다(<플라넷(Planet)> 2015년 11월 16일 자).


2.jpg

2015년 11월 13일, 파리 연쇄 테러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

추모 행렬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하나 하나 소개함으로써 보다 많은 이들이

조금 더 오랫동안 그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며 애도를 표하고 있다


실제로 파리 연쇄 테러 사건 직후의 일주일, 그러니까 2015년 11월 셋째 주의 TOP기사 25건 중 23건은 모두 테러 관련 소식이다. 테러를 이길 만큼 강력했던 두 건의 기사 중 첫 번째로 등장한 것은 뉴질랜드의 전설적인 럭비 선수 조나 로무(Jona Lomu)의 사망 소식. 그나마 사건이 있은 5일 후인 18일 수요일 기사. 참고로 럭비는 프랑스에서 축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이다. 두 번째 소식은 국제 부문.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수라바야(Surabaya)에서 라이언 에어(Lion Air) 항공기 출발이 늦어지자 부기장이 승객에 기내 방송으로 이 점에 대한 보상으로 이혼한 승무원을 보내겠다고 말한 것. 이에 빡친 비행기 승객 중 한 남성이 교통부 장관에게 이 부적절한 처사를 고발하는 서신을 보내면서 인도네시아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항공사에서는 내부조사를 실시, 부기장에 대한 비행 금지를 내렸다고. 이 기사는 20일 금요일의 기사.


여전히 프랑스 사회는 파리 연쇄 테러 사건을 중심으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소식은 저번 주 두 개의 기사를 통하여 전달한 바 있으니 기사 23개를 간략하게 카테고리 별로 정리하여 소개하도록 하겠다. 물론 사건 이후 일주일 동안 쏟아진 모든 소식을 여기에서 다룰 수 없음은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1. 프랑스는 전쟁 중


3.jpg

1870년, 프랑스는 프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일단 테러가 진압되자마자, 프랑스 전역에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150여 건 이상의 조사 결과 다량의 무기 및 마약이 발견된 것으로 밝혀졌다(<라 크루아(La Croix)> 2015년 11월 16일 자). 이와 같은 조사는 점차 확대되고 있어, 며칠 전에는 70여 명의 군경이 프랑스의 대표 공항인 샤를 드 골 공항을 조사하기도 했다. 각 항공사의 직원 락커 등까지 조사한 결과, 이슬람 급진주의와 관련된 물건들이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 문제가 되는 물건들을 소지하고 있던 이들은 공항의 보안상 주요 공간에 대한 접근이 금지된다(<아틀랑티코(Atlantico)> 2015년 11월 20일 자).


그런가 하면 프랑스는 IS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그를 위하여 러시아와 동맹을 맺었다. 오는 11월 26일, 올랑드 대통령은 직접 러시아로 건너가 푸틴 대통령과 이 주제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르몽드(Le Monde)> 2015년 11월 18일 자). 그에 따라 미국 역시 러시아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였고, 터키와 미국 사이의 대 테러 동맹 역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랑드 대통령은 UN의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신속하게 IS의 테러리즘에 대처할 방안들을 강화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RTBF> 2015년 11월 19일 자).


또한 11월 20일 금요일 브뤼셀에서 개최된 EU 각국 내무부 장관 및 사법부 장관 회의는 프랑스의 요청에 따른 것. 여기서는 지하디스트 세력에 대한 유럽의 대응을 논의했다. 이는 파리 연쇄 테러 사건의 총책으로 알려진 압델하미드 아바우드가 유럽을 통과해 시리아에서 프랑스까지 들어와 사건을 벌이는 동안 단 한 번도 유럽 국가에서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성토하는 것부터 시작될 듯하다. 프랑스는 지하디스트들이 난민사태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에 따라 마뉘엘 발스 국무총리는 쉔겐 조약에 대한 재검토 가능성을 내비쳤다. 쉔겐 조약은 유럽 각국이 공통의 출입국 정책을 사용하여 국경시스템을 최소화함으로써 국가 간 통행에 제한이 없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또한 프랑스는 유럽의회에서 PNR(Passenger Name Record)을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 PNR은 유럽지역 내 여행객의 신원정보에 대한 수집을 가능토록 하는 프로젝트(<라 리브르(La Libre) 2015년 11월 20일 자).



2. 파리 연쇄 테러 사건 범인 추적


4.jpg

2015년 11월 18일, 생드니에서 테러범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범인의 총에 맞아 죽은 폭발물 탐지견, 디젤


최소 132명의 생명을 앗아간 파리 연쇄 테러 사건의 범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난 이 시점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상태. 다만 이번 주에는 파리 연쇄 테러 사건의 브레인이자 총책으로 알려진 압델하미드 아바우드가 11월 18일 목요일 오전, 파리 북쪽의 생 드니 시에서 경찰과의 대치 끝에 사망했다. 본래 시리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그는 테러 당시 프랑스 주 경기장 팀과 함께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11월 13일 21시 20분, 테러의 시작을 알린 자살폭탄이 테러범의 신체와 함께 폭발할 무렵, 주 경기장 근처에서는 총격이 있었다. 바로 압델하미드 아바우드가 그곳에서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발사하고 있었던 것(<프랑스TV앵포(FranceTVinfo)> 2015년 11월 18일 자).


새벽 4시 20분 경부터 시작된 테러범과 경찰 특공대 사이의 대치는 오전 7시 30분 경까지 계속 되었고, 상황이 종료된 것은 그로부터 세 시간이 흐른 후였다. 총 3명이 사망했고 7명이 체포당했다. 사망한 3명 중 여성 한 명은 폭탄을 터뜨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나중에 압델하미드 아바우드의 사촌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BFMTV> 2015년 11월 19일 자). 처음에 경찰은 압델하미드 아바우드의 행방을 찾지 못하였으나, 시체를 확인, 이번 대치로 그가 사망했음을 발표했다(<허핑턴 포스트 프랑스> 2015년 11월 20일 자).


현재는 파리 시내에서 자살폭탄을 터뜨리고는 혼자 죽어간 브라힘 압데슬람(Brahim Abdesslam)의 형제이자, 이번 테러에 사용된 두 개의 차량 중 한 대를 빌린 것으로 보이는 살라 압데슬람(Salah Abdesslam)과, 위조 여권을 사용하여 프랑스로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프랑스 주 경기장 자살폭탄 테러범에 대한 추적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소탕당한 압델하미드 일당이 라데팡스 및 샤를드골 공항에 대한 추가 테러를 계획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아직 용의자가 모두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파리의 긴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샤를드골 공항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프랑스의 대표 공항이고, 라데팡스는 샹젤리제의 개선문을 본따 만든 건축물이 자리한 프랑스 금융권이 모여 있는 곳이다. 파리는 그 광경을 유지하기 위해 고층건물이 거의 없는 데에 반해 이곳은 애초에 비즈니스 센터를 계획하고 조성된 곳이라 프랑스에서 보기 힘든 고층건물이 집중적으로 들어서 있는 지역이다. 18만여 명이 출퇴근하는 곳이기도 하고, 근교에 2만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거주 지역이기도 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는 것. 그 중에서도 레 까트르 텅(Les Quatre temps)이라는 쇼핑센터를 노렸다고 하는데, 이 곳은 230여 개의 매장이 입점해 있는 대규모 쇼핑센터. 내부 주차장에만 6천5백 대의 차를 주차시킬 공간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라고 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5.jpg

파리 시내 테러 현장에 모인 시민들

그들이 놓은 꽃이 수북히 쌓여 있고 초가 어둠을 밝히고 있다



큰일났다.


정말로 내 밥그릇이 날아가게 생겼다. 지난 8월 <프랑스는 지금> 연재를 계획하면서 이런 일이 터져 프랑스가 한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위에서 다룬 기사들 중에 한국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기사는 정말이지 하나도 없는 듯하다. 아니, 한국 언론에서 나보다 더 많은 기사들을 다룬다. 한국 소식이나 좀 자세히, 그리고 제대로 전해 줬으면 좋겠다. 헉 ! 충격 ! 이런 거 말고.


현재 프랑스 곳곳에서는 이슬람 혐오적인 사건이 터지고 있으며, 무슬림들은 광장으로 나와 "나를 믿나요? 나를 믿으면 안아 주세요." 라며 자신들의 죄 없음을 애써 증명하고 있다. 많은 시민들은 이들을 안아 줌으로써 연대를 재확인했지만 사실 나는 화가 났다. 그들이 어찌하여 자발적으로 나서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를 외쳐야 하는가. 사람들은 애도와 분노를 반복하고 있으며, 프랑스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끝내 3개월 연장하고 시민의 자유를 대폭 제한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아마 이 조치는 한동안 더욱 강력해질 것 같다. 말 그대로 광풍이 몰아 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집중적인 취재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리고 프랑스에 사는 이방인이라 그나마 약간은 외부인의 눈으로 이 사회를 보고 있는 나로서는 뭐랄까, 어딘가 우려스럽다. 테러 이전까지 사회당(PS)과 프랑스 정부는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야당에 비하여 비록 이곳 저곳 모두에 치여 병신 취급을 받았지만 적어도 프랑스 국적의 젊은 무슬림들이 어떤 이유로 급진주의에 빠져 결국 IS로까지 흘러가는지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해 왔었다. 물론 그 노력은 야당과 적지 않은 이들의 비웃음을 샀다. 전혀 즉각적이거나 강력하지 않은 것들이었기에. 이제는 사회당 정부가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야당은 너네 정책 탓이라며 정부 책임론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무슬림에 대한 이해를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목소리는 한참이나 작아졌다. 대신 무슬림들을 잠재적 이슬람 급진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점차 강해 지고, 이슬람 급진주의자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고 있다. 안전이라는 ‘대’를 위하여 개인의 자유라는 ‘소’가 충분히 침해당할 수 있는 국가 비상사태 안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한 조치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이기는 하지만 테러리스트는 아닙니다."라는 한 S파일(국가 보안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이들의 파일) 등록자의 외침과, "저는 운수업을 합니다. 그런데 S파일에 등록되어서 하루에 세 번씩 경찰서에 가서 저의 무죄를 증명해야 합니다. 일을 전혀 못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는 또 다른 이의 한탄은 어쩐지 마음을 울린다.


6.jpg

곧 S파일에 등록된 이들의 팔에 채워질 전자팔찌


프랑스가 어떻게 흘러갈지, 꾸준히 소식 전하도록 하겠다.



덧붙임. 2015년 11월 셋째 주 TOP25 기사


image001.png



1. <프랑스는 지금> 연재 기사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힌 인터넷 기사 매일 5건, 한 주에 총 25건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사로, 동시대의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 프랑스어로 된 매체의 기사들을 모두 프랑스인들만 읽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전 세계 프랑스어 사용자의 대부분이 프랑스 본토에 분포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구글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기사 검색 시간은 프랑스 시간으로 매일 오전 8-9시 사이입니다. 프랑스 현지 시간에 따라서 기사를 수집하여 오류를 최대한 좁히려 하였습니다.


3. 본 연재물에서는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혹은 프랑스 매체에서 다루는 모든 기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는 않는 관계로 그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인권의 나라’라던가 ‘낭만의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민낯은 어떤지, 한국의 모습과는 어떻게 닮고, 또 다른지를 전할 수 있다면 제 목표는 충분히 전달한 것일 듯합니다.







지난 기사


사법부vs전 대통령 사르코지

파리 테러, 현재 상황






아까이 소라

트위터 : @candy4sora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