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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봉구 추천0 비추천0




사우나에 의료보험을

2006 7. 10 (월)
욕망-미시정치연구소

 


 



사우나에 의료보험을!이라는 이 제목만 봐도 어떤 사람들은 달라진 건강에 대한 개념에 비추어 그럴 수 있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고귀한 세금을 사우나와 같은 곳에 쓸 것인가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어떻게 위상학적으로 건강이라는 개념이 욕망의 지도를 바꾸어나갔으며, 이에 따라 사우나라는 욕망의 기계적 배치가 어떤 변화를 보였는가를 밝힐 것이다.


사우나, 얼마나 시원스러운 공간이었던가? 사우나에서는 모든 사람이 벌거벗게 된다. 휴가 나온 군인, 온갖 문신을 한 조폭, 일터에서 돌아온 노동자, 외근을 나왔다가 땡땡이를 치는 공무원이나 회사간부들이 군복과 작업복과 양복이라는 복장을 벗고, 맨몸뚱아리로 마주 앉는다. 사우나의 공간에서는 복장도착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벌거벗은 신체밖에 없다.


 세계역사 속의 목욕  


유럽의 패권을 움켜쥐었던 로마에서는 목욕탕 문화가 가장 발전했다고 한다. 온갖 종류의 목욕문화가 시작되었다고 역사학자들은 고증한다. 로마 목욕 문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해서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봉구(이하 봉) : 로마의 목욕문화는 어떤 것이었나요? 그것이 알고 싶어용.


아우구스투스(이하 아) : 흠. 참고로 난 로마의 황제란다. 흠흠 원래 사우나는 열가욕이라고 하는 스파르타의 문화에서 시작되어, 로마에서 꽃피웠지. 로마의 대중목욕탕을 만든 것은 바로 짐이다. 그 이후 대중목욕탕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으며, 2천명이 동시에 목욕할 수 있는 12만평의 목욕탕도 등장을 했지. 이 목욕탕에는 휴게실, 상점, 도서실, 체력 단련실, 미술관이 있었으며, 오락, 휴식, 사교, 수영, 향유 바르기의 공간이기도 했지.


봉 : 아휴, 너무 좋은 공간이었네요. 근데 왜 로마는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는 평가를 듣지요.


아 : 음 그건 말이다. 사치와 방탕이 극심해진 목욕탕에서는 지체 높으신 남녀분들이 와서 노예들에게 마사지를 시켰는데 말이다..


봉 : 마사지가 뭐 별건가요? 그 정도 가지궁.


아 : 글쎄, 그 당시에 가장 유행했던 마사지가 음부마사지였다지. 음 그러니까 남들에게 자위행위를 대신 해달라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였다는 게 문제지. 그뿐만 아니라, 남녀혼탕 개념이 일반화되고, 급기야 불빛이 잘 안 비취는 야간의 개장마저도 허용되었다지. 한 마디로 내가 만들었던 대중목욕탕은 질펀한 난교와 향락의 공간으로 변질된게야.


봉 : 그렇군요. 야간개장을 했다면 롯데월드 야간개장 같은 개념이었겠네요. 로마의 몰락은 예견된 것이었군요.


아 : 아니야. 좋은 전통도 있었지. 예를 들어 등을 서로 밀어주는 전통이 로마에서부터 시작되었단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시절에 늙은 노병이 벽에 등을 대고 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황제가 서로에게 등을 밀어주도록 명령을 내렸다지.  


봉 : 아잉~ 그때 로마에서 살고 싶어랑~대중목욕탕이 야간개장하면 혹시 남자가 등 밀어 주겠다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겠죠.


로마의 제국이 약화된 시기 목욕문화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생긴다. 바로 개인목욕탕의 등장이 그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알기 위해서 봉구는 다시 중세 프랑스의 작가에게 목욕문화를 묻기에 이른다.


 봉 : 저기요. 중세 목욕문화는 어떤 것이었나요?


브르통(이하 브) : 중세 목욕문화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나의 작품을 읽으면 된단다. 오호호호~


봉 : 브르통님, 저기 너무너무 궁금한 거 있죠? 님의 작품의 내용을 살짝 공개하면 안될까요?


브 : 당시에 처음으로 개인목욕탕이 등장하게 되었지. 호호호. 당시에 내가 작품을 썼는데 말이야. 에센바흐의 궁정의 서사시 [파르치팔]의 비법으로도 불리지. 일단 38도의 온탕에 장미꽃잎을 뿌리고, 장미탕을 만들면 말이야. 음문이 흥분을 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봉구야 네가 여자 친구가 있다면 100송이 장미를 선물 하렴. 원래 여자친구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건 말이야. 음문을 흥분시키기 위한 장미목욕에 쓰라고 주는 것이야. 그것도 몰랐어?


봉 : 오홋! 전 여자 친구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이유를 처음 알았어요.


브 : 아잉 바보, 장미를 선물하기 힘들면 말이야. 로즈마이유라는 장미기름을 선물하렴. 효험은 중세시기부터 내려오던 전통이니까 내가 보장할게.


봉 : 근데 중세시기 유럽 사람들은 왜 때가 많은 모습으로 등장하죠.


브 : 그건 말이야. 초기에 로마만큼이나 대중탕이 발전했고, 혼탕이나 목욕탕 내에서의 매춘도 성행했지. 그런데 말이야. 매독과 혹사병과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목욕문화에 변화가 생겼지. 사람들은 목욕을 두려워했고, 도통 씻질 않았단 말이야.


봉 : 아하~ 그렇게 된 거구나. 그럼 냄새가 지독했겠네요.


브 : 그래서 발전한 게 향수와 화장문화였단다. 여친이나 남친 만날 때 깨끗하게는 보여야 겠고. 임시방편으로 향수뿌리고 화장으로 햐얀 척하면서 만났던 거지. 심지어는 루이 14세는 일생동안 딱 한번 목욕을 했다지. 목욕이 그토록 공포스러웠던 게야.   


봉 : 에휴, 향수나 화장이 중세시기의 더러운 사람들의 분장술이었다니...근데 장미 100송이를 선물하면 정말 효험이 있으려나. 그것이 알고 싶다!


서양의 목욕문화를 알게 된 봉구는 터키탕이 터키에 있는 목욕탕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남녀혼탕은 어찌 보면 전 세계적인 문화였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터키탕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 일본으로 찾아간 봉구는..


봉 : 안녕하세요. 터키탕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일본 분이시네요.


미스 터키(이하 미터) : 원래 일본은 1백여 년 전까지도 남녀혼욕이 일반화되어 있었지, 일본은 습기가 유달리 많아 목욕문화가 발전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보통 대중목욕탕은 남녀혼탕이었단다.  


봉 : 지금도 남탕과 여탕의 경계에 대나무 장벽 밖에는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남탕에서 여탕을 훔쳐보면 어쩔려구..


미터 : 1868년 막부시절에 와서 혼탕이 금지되었지. 그래서 사람들은 임시로 혼탕을 막게 된 게 대나무 같은 것이었다지. 오늘날도 그런 형태의 대중목욕탕이 많다고 하더구나.


봉 : 근데 터키탕은 어떻게 된 거예요? 터키에서 유래된 게 아니라, 일본에서 유래된 거였나요?


미터 : 그래, 일본은 많은 외국상인들에게 항구를 개방하는데, 그곳에서 증기를 불어넣는 증기탕을 운영하였지. 거기에는 유나라는 여성마사지사가 있었는데, 그것을 외국인들이 미스 터키라고 불렀던 것이 유래라지.


봉 : 그렇군요. 그래서 터키탕이었구나. 근데 터키사람들이 기분나빠해야 할지, 기분 좋아해야 할지.. 흠흠.


미터 : 대부분의 미스 터키들은 성서비스를 하는 여성이었고, 오랜 시간동안 항해를 해 온 뱃사람들에게 성서비스를 제공했대.


봉 : 잘 알겠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런데, 봉구는 우리나라의 목욕문화는 어떤 것일까? 매우 궁금해 졌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도 혼욕문화가 있었을까? 봉구는 너무 궁금해서 급기야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에게 찾아가게 된다.


봉 : 단군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우리나라 민족을 백의 민족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죠?


단군(이하 단) : 험, 우리나라 사람들은 박달나무 아래에 터를 잡곤 했는데, 그게 향유나 향료를 만드는 재료였다는 것만 봐도 백색을 유달리 좋아했다는 걸 알 수 있단다.


봉 : 그럼 중세 프랑스처럼 목욕대신에 화장과 향수가 먼저 발전했던 거군요.


단 : 강에서 같이 씻는 개념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목욕탕 같은 개념은 불교의 전파에 따라 신라에서 시작되지, 신라시대 때 목욕은 마음과 육체를 정화하는 신성한 의식과 같은 것이었단다. 가정에도 목욕시설을 이 때 만들기 시작했다지.


봉 : 그럼, 신라 때에 혼탕의 개념도 있었나요?


단 : 그건 고려 시대에 있었단다. 고려는 가장 성적으로 개방적이었던 시기기도 했지. 고려인은 하루에도 몇 차례나 목욕을 즐겼는데, 혼욕도 그때 이루어졌지. 난탕이라고 해서 남녀가 같이 목욕을 하는 거야. 그 때 목욕과 더불어 황홀경을 배가시키기 위해서 복숭아꽃물 등이 사용되었다고 하더구나.    


봉 : 아 프랑스에서는 장미를, 고려에서는 복숭아꽃물을 목욕 향유로 사용했군요.


단 : 그래. 근데 말이야. 고려는 상당히 성에 대해서 개방적이었는데 말이야. 조선의 유교가 도입되면서 거 뭐 있잖아. 남녀칠세부동석 같은 해괴한 이론이 판을 쳤다는군. 그래도 이때도 마음과 몸의 청결이 중요시되던 시기라 난탕 같은 건 없었지만, 개인목욕통은 있었다고 하는군.


봉 : 그럼 대중목욕탕은 언제 생기죠?


단 : 우리 민족에게 수치였던 일제 강점기에 평양에서 1924년에 처음 생겼고, 1925년에 서울에도 생겼다지. 일본인들이 처음으로 위생이라는 개념을 우리 민족에게 강요했다고 하더군.


봉 : 그렇군요. 공중위생 개념이 그 때 시작된 거군요. 단군할아버지 감사합니다.


 근대의 목욕개념에서 탈근대의 목욕개념으로


앞서 밝혔듯이 일제시대 우리나라에는 위생과 공중보건의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훈육사회의 통제방식의 특징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대중을 계몽시켜내는 것이었다. 권위적인 선생님이 회초리를 들고, 손등검사, 머리검사, 손톱검사, 내복검사를 하는 것은 일제시대의 위생개념에서 유래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대중목욕탕에도 도입되어,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낳게 되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이태리타월이었다. 이태리타월은 결코 이태리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살을 불려 인위적으로 죽은 표피를 벗겨내는 이태리타월의 목욕행위는 근대 위생개념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건강 개념은 섭생 개념이었다. 몸을 음양의 조화원리로 보는 섭생 개념은 위생개념보다 더 앞서서, 훈육의 의미라기보다는 삶의 방식과 의식주의 환경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하튼 대중목욕탕은 초기에 위생개념을 강조하는 근대적 의미에서 등장하였던 것이며, 목욕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의무적인 것으로 강요했다.  


그러나 목욕의 개념은 탈근대적인 욕망의 배치로 바뀌기 시작했다. 찜질방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배치물의 등장은 목욕에 일대 혁신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사람들은 사우나를 하면서, 쉬고, 잠자고, 놀기 위해서 찜질방을 찾았다. 웰빙이라는 개념은 아무래도 섭생의 의미에 근접한 탈근대적 건강개념으로 볼 수 있다. 웰빙은 잘 먹고 잘 살자라는 개념인데 그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욕망하는 사람들의 코드를 자극했다.


웰빙열풍 속에서 등장한 사우나의 혁신적인 모습들은 기존의 공중보건의 개념의 건강개념과는 완전히 괘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근대의 건강은 그야말로 겉보이기 방식의 공중보건과 병자와 정상인의 격리, 병의 전염에 대한 격리와 치료를 위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탈근대의 건강에는 섭생의 의미인 삶의 방식, 먹거리, 주거환경, 생활환경, 노동환경 등에 대한 근본적인 욕망의 투여가 존재한다. 즉, 한마디로 삶에 대한 욕망이 강렬해 졌다고 할 수 있다.


 사우나에 의료보험 혜택을!


이제까지 한국의 보건복지 개념은 네거티브한 근대의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제는 보건복지의 개념이 탈근대적인 코드인 웰빙이나 섭생의 원리로 재구성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사우나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은 이러한 탈근대의 건강의 문제를 전면화 시킬 것이다.


이미 각종 피부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우나는 하나의 의료적 처방의 일종인 상황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는 사우나의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 등의 문제를 갖고 있다. <욕망-미시정치연구소>의 연구결과 일단 사우나의 의료보험 적용은 처방의 일종이나, 60대 노인들에 대한 혜택으로 시범운영되는 것이 수순일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사우나 시설을 네트워크화하고, 그것에 의료보험을 통한 지원을 강화한다면, 전 국민적으로 포지티브한 섭생의 원리로 사우나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새로운 공공서비스의 영역을 개발하는 것이며, 욕망 미시정치의 새로운 대안적 정책을 마련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정책적 대안 뿐만 아니라, 사우나에 대한 욕망투여 즉, 웰빙에 대한 욕망의 폭발적인 성장을 미시공학적 차원에서 배치하는 새로운 욕망미시정치가 개발될 필요가 있다.



  


-욕망-미시정치연구소
문봉구(apep@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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