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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느들이 장애인을 아능감?


2001. 11. 4
딴지 보건복지부


소리를 보고 그림을 듣고...


가을의 문턱에 성큼 다가선 10월의 어느 화창한 저녁... 방배동 지니는 영화 한편을 감상하려고 비디오방에 들어섰다. 가을에 딱 어울리는 영화를 찾고자 한참을 서성이던 지니. 하지만, 눈에 확 띄는 작품이 없어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기를 장장 열 다섯 분. 심사숙고 끝에 골라잡은 영화! 최신 개봉작은 아니었지만, 제목을 보면서 뭔가 가을에 어울리는 듯 한 필이 팍팍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런데, 예고편이 끝나고 본 프로가 상영되기 시작하면서..뭔가 좀 이상하다 싶다. 주인공인 줄리엣 루이스의 대사가 좀 부정확하게 들렸다. 내가 잘못들었나? 테이프가 많이 돌아서 씹히나? 왜 일까?








 


 나자바바라! 자바따!


이러한 궁금증은 곧 사라졌다. 무슨 영화냐구?


사랑하고싶은 그녀(원제 : The other sister)라는 조금 된 영화다. 게리 마샬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갑자기 영화 이야기는 왜 꺼내느냐고 의아해 하시는 독자제위께서는, 동네 비디오가게 가셔서 삼백원 주시고, 살짜쿵 감상해 보시라. 지니의 기사를 가슴으로 이해하시는데 굉장한 도움을 받게 될 것임을 감히 자신 있게 말씀 드린다.


이미 감상하신 독자제위 열분덜과 함께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 10월은, 가을이라는 계절답게, 문화 행사가 참으로 많았다. 서울 드럼페스티벌2001, 지구촌 등 축제, 고종 명성후 가례재현, 사직대제, 기타 등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30개 이상 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행사들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행사가 있었으니, 두둥!


그것은 바로바로 제2회 장애인영화제와 2001 서울시 장애청소년연극축제다.


엥? 그런 행사도 있었어? 라고 놀라시는 분들 계실 것이다. 혹은, 참석하셨던 분들도 계시리라 믿는다.


행사 명칭만 딱 봐도 삘이 팍팍 오시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두 행사 모두 백프로 장애인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는 점도 알아 두셨으면 한다. 흔히 생각하기에,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무조건 그들만 참석하는 행사로 오해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적어도 딴지 독자라면 이제 그 고루한 의식구조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왜냐구? 장애라는 것은 결코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영화제와 서울시 장애청소년연극축제 모두 장애인을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는, 이러한 구분의 벽을 허물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준비된 모든 프로그램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공감하며, 같이 즐길 수 있고, 같이 준비한 것들이었다. 물론,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기는 했지만..


비장애인 독자제위 여러분께서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단순한 것일 것이다.


어떻게 장애인들이 영화를 볼 수 있죠?


어떻게 장애인들이 연극을 할 수 있죠?


이에 대해 장애인 독자제위 여러분께서 궁금해하시는 것은 반대로 요거 되겠다.


왜 우리는 영화를 못 본다고 생각하죠?


왜 우리는 연극을 못 할거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그들은 무대에 올랐다.


영화제부터 살짜쿵 말해보자.


공식적인 대회명칭은 제2회 장애인영화제(Persons with Disabilities Film Festival)이다. 엇! 하고 놀라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그렇다. 벌써 2회 째다. 독자제위덜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두 번째 행사가 치러지고 있었다. 행사의 취지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상당히 심오하다. 간략하게 내용을 축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영화 관람이라는 문화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점 제기


2. 문화를 향유하고픈 기본적 욕구를 바탕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시선차이 극복


3. 대만, 일본 등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국제적인 행사로의 초석을 다진다.


좀 거창한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취지는 시선 차이를 줄여보자는 것! 요거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목소리가 끝내줘요!


오프라인에서의 홍보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실제로 기간 전에 이 행사의 내용을 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니도 한 3주전인가? 웹 서핑 도중, 우연히 알게 되었다. 게다가 비장애인들은 온라인으로만 접수를 하게 되어 있어서, 이너넷을 잘 활용하는 연령층이 아니고서는, 행사 참석도 쉽지 않다. 그래도 사람만 많더라 모...


개막식은 17일 오후 5시에 아트선재센터 지하층 대공연장에서 있었다. 사회를 맡았던 이금희 아나운서. 초빙이 아니라 자원하였단다. 장애인과 관련된 행사에서 자주 뵙는 분이지만, 진짜 목소리 하나만큼은 끝내준다. 관계자 분들이 등장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마임 공연과 뮤지컬 배우들의 축하무대, 영부인 이휘호 여사의 영상축전에 이어서 홍보대사로 선정되었던 신하균-박예진 씨가 등장하고, 행사기간동안 상영될 작품들의 트레일러 상영으로 개막식은 끝이 났다. 개막식 무대 총 연출은 장진 감독님이 맡으셨고...


영화제답게, 행사 기간동안 많은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개막식이 끝난 뒤, 영화제 개막작품으로 선정된 와키를 비롯해서, 장애인들이 가장 보고싶어 했던 영화(친구, 엽그, 무사, 킬수, 신달등)들이 준비되었고, 그 외에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단편모음과, 해외작품 초청작인 도토리의 집(일본) 등이 상영되었다.


자아...여기까지는 머 행사를 치른다면 이만한 내용은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니까 그렇다 치지만, 항상 한가지 궁금증이 독자제위 아홉 분덜의 뇌리에서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소리도 못 듣고, 화면도 못 보는 장애인들이 어떻게 영화를 본다는걸까?


그럼. 이제부터 장애인들이 어떻게 영화를 감상하는지 고거를 갈켜주마.


 





 


장애인들이 왜 영화를 보아야만 하는가!


요즘 극장가들은 연일 승승장구! 떼돈 버는 메카로 자리잡았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는 미구기 애덜이 딸로를 왕창 때려 부어서 만든 영화들 사이에서 비루먹은 강아지 모냥으로 비실대기 일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서펑제를 비롯한 쒸리, 공동 경비원 JSA, 신라의 군밤, 엽서 쓰는 그녀, 조폭 마눌님, 무써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영화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연일 최다 관객을 동원, 무섭게 돈벌고 있다. 심지어는, 본 거 또 보는 년-넘도 있다고 하니, 한국영화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똥고가 뒤집혀서 벌렁거릴 만큼 대박 영화가 극장에서 넘쳐나고 있을 때, 그저 섭섭함을 뒤로한 채, 또까튼 대한민국 국민이면서, 세금도 또까치 내는데도 불구하고, (조)까튼 취급을 받으며 (조)까치 뒷전으로 밀려나기만 하는 분들이 있다 이거다. 누구냐고? 바로 우리의 이웃! 장애인들이다. 쓰바...... 장애인들은 다 외국사람이냐?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 마시며 살고 있는데, 왜 우리는 외계인 본듯 삐딱한 눈으로 쳐다보냐 이거다. 영화 좀 본다는데, 그게 그렇게 이상하냐?


그럼 어케 감상하냐?


비장애인들은 영화라는 장르의 문화를 즐기는 방법은 하나다. 극장가서, 표 사서, 스빽따끌한 영상과, 환따스띠그한 싸운드 감상하심 되겠다. 근데, 장애인들은?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두마디면 설명 끝난다.


소리를 보고 그림을 듣고!


자아~! 흔히들 말하는 장애라는 것을 좀 살펴보면, 주변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장애의 유형은 시각장애, 지체장애, 청각장애, 정신장애, 언어장애이다. 그리고, 이중에서 한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를 중복장애라고 하겠다.(헬렌켈러 여사가 대표적이지.) 이해 되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자.


일단 영화라는 건,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흥분을 느끼게 되는 문화적 장르다. 즉,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어야만, 영화라는 것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쥐.


그러므로, 지체장애의 경우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영화관람을 위해서 극장까지 이동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청각장애와 정신장애, 언어장애의 경우는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정신장애와 언어장애, 시각장애의 경우는 청각적인 측면에서 별 문제가 없고.


헷갈리지? 쉽게 정리해 주자믄, 시각장애의 경우는 시각적인 부분을 보완하고, 청각장애의 경우는 청각적인 부분을 보완한다면, 영화관람을 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거다. 그래도 몰러? 다시 설명해줘?


바부팅이.


그니까, 청각적인 장애의 경우는 소리를 보여주고, 시각적인 장애의 경우에는 그림을 들려주면 되는거다.


유노?









요거이 골도기여!


지니도 첨에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영화제에 참석하고 나서 그 해답을 얻었다. 가장 쉽게 생각해서, 들리지 않으면 보여주면 해결된다. 즉, 영화의 대사와 효과음, 배경음악 등등을 자막으로 처리해 주면 되는 거쥐.


그런데, 요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었다. 니들 혹시 골도기 라고 들어 봤냐? 그 뭐시냐... 쇼핑몰 광고하는 찌라시 보믄 가끔 등장하는 효도 전화기 있지? 간단하게 그거 떠올리면 되겠다. 원리는 간단하다. 고막을 통해서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어떤 경우는 전혀 들리지 않겠지만..), 고막 대신에 소리를 전달해 줄 수 있는 부분을 통해, 어느 정도의 사운드와 함께 진동을 주는 것이쥐.


즉, 소리라는 것이 원래 공기가 진동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니까, 이 진동을 느끼게 해 주면 된다 이거다. 생긴 모습은 손가락 네 개만한 수신장치와 헤드폰 정도를 상상하면 된다. 지니도, 잠시 사용해 보았는데, 솔직히 그 느낌을 말한다면, 비장애인이 사용해 보는 건 경험으로 만족해야 될 꺼 같다. 좀 괴롭다. 그 진동이란 으흐흐흐흐흐~!


헌데, 지니의 옆좌석에 앉아 있던 한 청각장애인은, 영화 시작 후에, 조금 지나지 않아서 골도기를 벗어 버렸다. 왜냐구? 배우들의 대사는 잘 안느껴 진단다. 어쨌든, 한국 영화를 자막과 함께 감상하니까, 마치 꼬부랑 말이 쑬라불라 흘러나오는 수입품을 감상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느낌이 색다르더구만.. (자막이라고 해서, 대사만 자막처리 한거 아니고, 예를 들면 상수 - 형 이제 우리 어디로 가지?, 갈매기 - 끼룩끼룩 ...뭐, 이런 식이다.)


다음은... 시각장애인들 위한 영화 관람법.


화면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감상을 하냐고?









요것이 화면 해설기고...


다 방법이 있다. 일단, 시각장애인들은 듣는 건 문제도 아니다. 다만, 보이지 않는 게 불편한 거지. 그러니까, 듣는 거 하나를 추가시키면 된다. 즉, 영화 자체의 사운드는 그냥 놔두고, 화면을 설명해 주면 되는 거다. 예를 들어서, 액션물 하나를 설명하자면,


사운드는 그냥 와장창 꾸앙! 퍽! 휘리릭! 파팍! 조용~~~하믄 되는 거구..


화면 해설은 ‘주인공 상철, 양손에 짧은 각목을 꼭 쥔 채로 장대비가 퍼붓고 있는 아스팔트 주차장에서 검은 옷을 입은 다섯 괴한에게 둘러싸인 채 쓰러져 있다. 상철의 왼쪽 이마에서는 빨간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의식을 잃은 상철을 뒤로하고, 다섯 괴한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상철의 눈꺼풀이 살짝 움직인다!’


머 대충 이런 식이다. 물론. 이게 완벽하게 동시에 나오는 건 아니구, 대사가 나오기 전에 절묘한 타이밍으로 설명되어진다.


피~! 이래가지고 영화를 어떻게 감상해요? 혼란스럽기만 하겠네 머...


라고 말씀하시는 독자제위 열분 계시다면 바로 떽끼 되겠다.


그렇담 니들은 소시적에 열독 했던 영웅문과 초한지, 삼국지 등등은 어케 감상했는가? 그냥..눈으로만 읽었냐?


결코 아니다. 책 속에서 펼쳐지는, 중원의 황량한 벌판을 떠도는 영웅 호걸들의 화려한 검법과 비술, 각종 초식들은 본인의 마음속에, 머리 속에 펼쳐진 스크린에서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끼룩끼룩 날라 다녔다! 때로는 내가 주인공이 되기도 했지만...


다 적응하기 나름이고, 연습하면 안되는 건 절대로 없는 거다. 지니도 안되는거 참 많았는데, 군대가니까 잘 되더라 뭐. 까라면 까야지 뭐. 쒸파. 생각도 하기 싫다!


장애인들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물론, 추가적인 비용이 있어야 하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기계적인 장치를 설치한다는 것은, 비용문제도 어느 정도 고려되어야 하니깐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자막처리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거 같은데.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세미나에서 혹자들은 자막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저해요소가 된다고 말하는 빙신같은 인간도 있었다고 하던데. 그 쉐이는 전세계 언어를 다 구사하는 엄청난 쉑인가 보다. 수입영화를 자막 없이 볼 자신 있나봐.


부디 영화사 관계자 분들. 각성좀 하시기 바란다.


자~! 잠쉬 물좀 마시고..


영화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연극축제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 해볼까?


영화제가 어느 정도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였다면, 연극축제는 청소년이 그 대상이었다. 물론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장애청소년연극축제는 올해로 8회를 맞는, 비교적 연륜 있는 행사여서 인지, 규모나 진행 면에서 원활한 움직임이 보여졌다. 게다가 청소년연극축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린 학생들이 바글바글 했고, 묵묵히 감상하는 영화와는 달리, 생동감 있는 무대로 객석이나 무대를 구분할 수 없었다. 배우와 관객이 하나가 되어 혼연일체 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쥐......


영화가 조금은 우회적인 표현이라면, 연극은 아주 직설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피라카숑 하퐁출롤 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보았다.


아니.. 보았다 라는 표현보다는, 느꼈다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노들 장애인 야간학교 학생과 교사가 한마음으로 열심히 갈고 닦은 솜씨를 보여주고자 했다. 처음 무대에 올라 선 그들은, 설레임과 수줍음으로 흥분한 상태였다. 몸풀기를 진행하는 배우들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계속해서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극이 시작되고, 연기에 몰입하면서, 그들 스스로가 장애인이 되었고, 장애인을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구속하고, 통제하려는 비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무대에서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들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었다. 단지, 배우일 뿐이었다.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섰다. 마이크를 이마에 붙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다란 무대에 서 있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리높이 외치고 있었다.


우리도 덩가를 쌀 수 있다! 나도 소리를 지를 수 있다! 나도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라고......


출연한 배우들은 프로가 아니다. 아마추어. 그것도 정말 순수한 아마추어, 게다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 배우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대본에 맞추어진 연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었고, 생활이었고, 아픔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공연을 마쳐야 될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급해졌고, 더욱 소리를 높였다.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알리기 위해서,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은 안타까워 발을 굴렀다. 과연 그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토록 애태웠던 배우들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아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그들의 가족이 진정 무엇을 배려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려 한 것은 아닐까?


기사의 맨 처음에 언급했던 영화 ‘사랑하고 싶은 그녀’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가장 쉽게 풀어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약간의 언어장애와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 칼라. 나무랄 데 없이 유복한 가정에서 세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자신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독립을 원한다. 그러나 곧 벽에 부딪히고 만다. 그녀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어머니는, 결코 칼라를 혼자 내버려두려고 하지 않는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칼라가 힘들 것이다, 내 생각에는 너무 위험한 일이다.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엄마 생각에는 엄마 생각에는... 그러나 그 사랑의 이면에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막내딸에 대한 부끄러움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막내딸의 독립에 적극적인 아버지와 언니들의 도움으로 칼라는 자신을 사랑하고, 서로를 위로해주며 인정할 수 있는 비슷한 장애를 가진 대니얼과의 사랑을 키워가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다는 전형적인 해피앤드형 영화다.


지니가 왜 이 영화를 꼭 보라고 추천했을까?


주인공 칼라의 어머니의 모습을 잘 살펴봐라.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우리들은 항상 이러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장애인은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굉장히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 비장애인은 몰라도, 장애인이 하기에는 위험한 일들이 많다. 장애인들이 원한다 해도, 그들이 직접 하는 것은 반대다. 시간적, 금전적 손실이 많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이 대신 해주면 된다. 그게 더 빠르고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들은 부끄러워하고 있다. 챙피해 하고 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과 함께 걸어가는 비장애인을 마주보게 되면, 같이 있는 그 둘을 묶어서 장애인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으면, 그 구성원들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하다고 생각하고, 창피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진정한 우리의 현실이다.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힘들 거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간에, 실제로 장애인영화제와 장애청소년연극제를 취재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경험은, 인터뷰는 하는데, 내 이야기는 기사로 나가지 말아야 하고, 내 사진, 특히 내 장애인자식의 사진(일부 학부모)은 절대로 신문방송에 실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거였다.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지...... 보도자료에 첨부된 사진들은 모조리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다. 궁금하문 함 찾아바바. 정말 이상하지? 난 방송한번 나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결국 TV에 세 번, 라디오에 2번 출연했다. 우하하하하!) 자랑스럽지 않아? 내 자식이 연극무대에 선다는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라.


니들은 조금 전 까지도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지 않았냐?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것들이 그들에게는 큰 고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니들은 착각하고 있는 거다. 장애인들은. 그들은 세상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싶어한다. 보고 싶은 것도 많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다. 그들은 결코 우리와 다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금 특별한 것뿐이다. 절대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장애인도 우리와 똑같이 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무슨 일이든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에 가능하다. 단지, 아주 조금의 도움만 주면 된다.


자랑스런 우리 대한민국의 장애인 인구는 1995년도 통계상으로는 약 백만명을 상회하고 있다. 당시 총 인구 통계가 약 사천 사백만 이니까, 전체 인구의 약 2.5%정도? 2.7% 정도 되겠다.


물론, 95년도 통계이니까, 아마도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은 된다.(2001년 추산으로는 약 450만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 진자로 많지?)


뭐, 중요한 건 이런 숫자가 아니다. 그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희생당한 채 살아왔다. 하지만, 새천년에 접어들면서, 자랑스런 우리 대한민국에도, 복지정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그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아직 약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네 사회 구조는, 보수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분덜이 워낙 많아서 말이다. 실례로, 지난번 기사가 나간 후, 한 독자 분으로부터 멜을 받았다. 그분께서는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근무하고 계신다고 소속을 밝히셨는데, 지니가 위에 써놓은 그 통계적 개념의 숫자를 언급하시면서, 대를 위해서는 소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 주셨다.


또, 청소년장애인연극축제를 관람하려고 행사장으로 가던 도중, 지하철역에서 홍보를 하고 있는 앳된 고등학생 자봉들이 무료라고 외치는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대화 내용은 이러했다.


공짜라구? ... 공짜래...


무슨 연극인데? ...장애인...


병신들이 연극하나봐? ... 에이. 야! 그냥 가자...


물론 지니는? 주체할 수 없는 노여움에 사로잡혀, 한동안 뜨거운 덩가를 토해내는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다. 그렇다. 새천년의 시대를 맞아 밀레니엄 어쩌구 하던 2000년대를 살고있는 최첨단 시대에도, 이런 썩어빠진 생각들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일들이 오죽이나 잘 되겠는가! 한심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깨어있는 우리 딴지 선각자들이 앞장 서서 전진해야만 한다.


몰리 홀트 여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도 인간입니다!


아주 짧은 이 메시지에는 많은 뜻과 의미가 담겨있다. 장애인은 결코 그들이 아니다. 우리다.


행사가 끝나갈 즈음,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들이 여기저기 서 튀어 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것들을 논하고 싶지 않다. 이제 시작하는 행사이기에 기대하는 것이 더욱 크다.


독자제위 여러분덜도, 내년 행사때는 많이덜 참가해 주시기 바란다. 단지 공짜로 영화를 볼수 있으니까 라는 이유만으로 참가하셔도 좋다. 머 진짜루 공짜에다가, 최근 히트작을 상영하니까 말이다. 혹은, 장애인들과의 교류에 관심을 가져 주셔도 좋다. 사실은 이게 더 좋다. 자꾸 접하고, 경험해 보아야만 더 쉽게 풀리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년에는 딴지 독자제위분덜게서 장애인영화제의 행사장을 연일 만원사례로 채워 주실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지니는 여러분들께 세 번째 외치고 있다.


"변화는 결코 큰 것에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된다. 아주아주 작은 관심에서부터 복지 선진국의 역사는 시작된다."


딴지 독자제위 열분 덜의 작은 의식개혁운동이 기름불처럼 번져 활활 타오르는 그때! 명랑 복지 선진조국은 건설될 것이다! 아! 감격스럽지 아니한가!


하루빨리 그날이 오기를 똥꼬에 힘주어 기원한다. 졸라~!


 





 


별첨


원래 안 쓰려고 했는데, 기사를 궁금해하실 홍보팀 관계자 분덜을 위해서 한 말씀 드린다믄...


제2회 장애인영화제 문제점


홍보부족 : 진짜루 부족하다. 쉬파... 욕 나온다. 행사 당일날 행사장 벽에만 졸라게 붙여놓은 홍보용 포스터를 비롯한 찌라시들. 진작에 좀 풀어서 길거리에 붙어있는 영화포스터 옆에다 살포시 붙여 놓아도 관심집중 천배는 달성했을 것이다. 후에 확인한 바로는 역쉬 예산 부족. 글쎄...


자봉운영 미숙 : 순수 자봉이 기록상으로는 서른 일곱 분이나 되셨다. 하지만, 효율적으로 운용되지 못했다. 특히, 대부분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화장실에 배치된 자봉 요원은 없었다. 아무리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자원 봉사자의 도움 없이는 힘들다. 대부분의 자봉들이 관계 기관에서 근무하는 분덜 이라고 하시던데, 지니가 보기에는 수화 통역에만 능숙할 뿐, 시각 장애인이나, 지체 장애인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이 한국 농아인협회 소속이셨나보다.


홍보대사는 왜? : 신하균,박예진 두 스타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은 좋은데 말이쥐...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두 홍보대사(?)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없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지니는 두 스타가 장애인영화제 홍보하는 거 한번도 못봤다. 쉬파! 왜 뽑은건데? 포스터 찍을라고? 기자회견 할라꼬?


조율문제 : 명색이 장애인영화제인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별로 없었다. 점자로 된 안내책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에나... 소책자 하나도 준비 않다니. 후에 확인한 바로는, 장애인 단체 6개 협회가 연합을 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각 기관들의 자발적인 도움이나 지원, 교류 등이 거의 없었단다.


2001 서울시 장애청소년연극축제 문제점


홍보부족 : 역쉬 부족하다. 앞으로는 서울시가 후원하는 만큼, 시청을 등에 업고라도, 각 지하철이나 버스 등과 연계도 하고 해서, 아니면 청소년 대상 행사니깐 패스트푸드점 등등을 공략해서, 좀더 전면적인 홍보를 할 수 있는. 그리고, 청소년 연극제니깐, 교육단체에도 좀 압력을 넣어보자!


조율문제 : 연극의 특성상, 정해진 시간에 공연을 마친다는 건 배우들에게 너무 잔인한 처사인 거 같다.


좀더 신축성 있는 시간조정이 고민거리가 되어야 되지 않겠나? 필요도 없는 연설같은 거 하지 말구 말이다...















그냥 내빈석에있음 안되냐? 왜 꼭 나와서 연설을 해야돼? 니들 휠체어 함 타봤어?


 








선영의 편지를 감독하신 문홍식 감독


이 영화 제작으로 겨우 장만한 집 한채 날리고 처가살이 하신단다. 왜 이런 양반이 개막식에서 연설을 못하는 것일까?


공통 : 그나마 연극제는 좀 좋은 공연이 있었지만, 영화제의 경우, 왜 내빈들을 자꾸 불러내는지 이해할 수 가 없다. 행사의 대상들을 제발 좀 고려해 주기 바란다. 이번에도 불거져 나온 문제지만, 광화문 사거리에 흥례문을 세우느라 밤을 낮 삼아 불철주야 조빠지게 고생한 장인들은, 정작 낙성식 현판 제막식에는 단 한사람도 단상에 오르지 못한 것을 우리는 보았다. 6년이나 고생한 장인들은 제쳐두고, 관심도 없던 거뜰이 어슬렁거리며 나와서는 어! 벌써 다 지었어? 수고했어. 인제 니들 가봐... 이런 식의 행사는 제발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내빈들은 내빈으로서 동참하면 되는 거다.


영화제를 위해서 연극축제를 위해서 수고하고 준비한 사람들, 또 그들의 결과를 함께 보아주고, 격려해주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행사로만 채워지는, 그런 잔치가 되었으면 좋겠단 말이다. 졸라~



 딴지 보건복지부
방배동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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