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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탄] 갸들이 헌법을 죽였다카던데...


2001. 11. 03
딴지 법무국


일단 들어가기 전에, 가문을 일으켜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마음 약한 고시 준비생들은 얼른 빠꾸 버튼 눌러주길 바란다. 읽는 순간 고시공부에 대한 회의가 몰아칠지도 모르는데, 내가 니네 인생 조지는게 되면 나도 씁쓸하거덩. 갈 사람 다 갔으면 이제 시작하자.









바로 나...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려워라... 하는 시를 쓰고 자살한 매천 황현 다들 알지? 나라가 일제한테 홀랑 넘어가 버리니까 기냥 아편탕을 원샷하고 골로 가버렸다는 거시야. 여기서 시비걸기 좋아하는 니들은 ‘씨바 독립운동하지 왜 뒈지고 지랄이냐?’ 라고 할거 나 뻔히 다 안다. 바뜨 그러나, 민영규 교수님이 쓰신 ‘강화학 최후의 광경’ 이라는 책을 보면 알겠지만, 이 양반의 친척과 제자들은 죄다 만주로 기어올라가서 처절한 인생을 살다가 절개있게 죽어간다구.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운 이상설이 바로 이 사람과 비슷한 학풍을 이어간 강화학자라 이거다.


난데없이 이딴 소리는 왜 하고 앉았느냐, 그것은 바로 이번에 쓸 내용이 학자의 지조 내지는 양심과 졸라 연관성 짙기 때문이지. 학자 중에서도 우리 현대사에 질곡이 많았던 헌법학 학자에 대해 좀 진지하게 딴지를 걸어보자구. 고고고~


 





 


일단 헌법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를 꺼낸다면, 최근 출판된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라는 책에 대한 언급을 빼 놓을 수가 없어. 영남대 박홍규 교수가 쓴 건데 거기서 보면 흔히들 ‘교과서’로 통칭되는 4권의 법학 이론서에 대한 비판이 실려있지. 실은 연세대 허영 교수에게 화살이 집중되지만 말야. 이 책은 딴지에 올라오는 기사같이 그렇게 쉽게 까댄게 아니라 그야말로 학술 서적이니까 관심 많으면 사서 보고, 관심 별로 없으면 사서 읽지 마. 실은 나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긴 했지만... 하여튼 박홍규 교수는 허영 교수의 헌법학을 순수하게 학문적 차원에서 비판한거시지. 허영 교수측에서 어떤 경로로든 반박을 좀 했으면 좋겠어. 이번에도 비판 세력을 걍 쌩까지 말고 말야. 강준만 교수가 말한 침묵의 카르텔 좀 깨자 이거지.


허나 니들도 뻔히 알다시피 본 기자에겐 그럴 능력이 없잖아? 그런 식의 비판은 공부 십년 넘게 해야 가능한거니까. 그래서 나는, 헌법학 ‘교과서’의 저자들을 ‘최소한의 학자적 도리’라는 측면에서 비판하려고 해. 것도 책 내용을 세세하게 뒤집어서 발견하는 게 아니라 단지 서문만 훑어서 해보겠다는거지. 이 짓이 가능한 이유는, 당연히, 그들이 너무도 태연하게 권력과 야합했기 때문이고...


하여튼 여기서 우리는 , 김철수 교수의 헌법학개론, 육종수 교수의 한국헌법원론, 그리고 권영성 교수의 헌법학원론의 서문을 디벼보자. 육종수 교수는 교과서로서의 지명도가 상당히 부족한 사람인 것 같지만, 그 내용이 하도 엽기발랄해서 차마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마.


 


김철수(金哲洙) 교수의 헌법학개론


우선 이걸 봐라. 5공 헌법을 4공 헌법에 대한 전면개정이라고 하네?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떻게 새로 만든 헌법이 유신헌법에 대한 전면개정이 아닐 수가 있겠어. 근데 문제는 그 뒤에 나오는 말이지.









김철수 교수의 헌법학개론 제 3판 서문 1


민주화 복지화로의 일대개혁이라는 소리. 사실 5공 헌법은 표면상으로는 민주화 복지화를 추구하고 있지. 그렇다고 해서 실제 그렇게 했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닌데 이런 소리 해도 되는건가 하는 의혹이 샘솟지? 백보 양보해서, 유신헌법보다는 나아졌다고 치더라도 이런 소리는 해서는 안되는 거다. 바로 이런 소리.









김철수 교수의 헌법학개론 제 3판 서문 2


우리들의 자연권존중에 입각하여 기초한 헌법안이 상당히 반영된 것이었고,여기서 멈추면 좋았으련만 제 4공화국헌법의 모습을 대부분 시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 앞에서 무슨 생각이 드냐. 화끈한 저항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거슬리지 않을 선을 스스로 통제해가며 은근히 신군부의 집권을 환영하는 모습은 대체 뭐란 말이냐. 차라리 이런 언급 하지 않는게 더 좋을 뻔 했다는 생각 니들도 팍팍 들지? 허나 앞으로 나올 것에 비하면 이 사람은 양반이다.


 


육종수(陸鐘洙) 교수의 한국헌법원론


유주얼 서스팩트 수준의 반전을 맛보게 해주께. 일단 이거 봐봐봐.









육종수 교수의 한국헌법원론 초판 서문 1


쩝... 할 말이 없다... ‘헌정질서가 정상적 궤도에 들어간 느낌이다.’ 라는 말 특히 기억해두면 다음 그림 보고 할 말 많이 생길거다.









육종수 교수의 한국헌법원론 제2판 서문


헌정질서가 정상적 궤도에 들어갔다고 느낀 사람이, 지난 40년간의 헌정사를 통하여 우리는 헌정질서를 수호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체험하기도 하는구나... 체험은 몸으로 하는 거고 느끼는 건 맘으로 하는 거니까 몸 따로 마음 따로 뭐 이렇게 스토리가 전개되는 걸까? 어머, 어머 안돼... 안돼... 안... 돼... 돼... 돼... 뭐 이런 소리 나오는 스토리도 아니고, 똑같은 책에서 책장 한 장 사이에 두고 이렇게 내용이 왔다리갔다리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울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책은 그다지 사회적 영향을 많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뭔지 나한테 물어보면 안 되는 것은 당근이지. 공부한 것 별로 없는데, 책 까보니까 그냥 보이는걸 어떡하라구.


 


권영성(權寧星) 교수의 헌법학원론


사법고시 뿐 아니라 모든 국가고시 헌법 과목에서 거의 독보적인 교과서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권영성 교수의 헌법학원론. 이 책은 상 하 2권으로 79년도에 처음 나왔는데, 81년도에 한 권으로 합치고 내용도 고치고 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형성한거야. 일단 81년도 서문을 보고 말할까?




권영성 헌법학원론 81년판 서문


내용이 너무 주옥같아서 이렇게 뭉텅 퍼놓을 수밖에 없었으니 이해해줬음 좋겠다. 첫째 문단 중반부까지 이어진 세태 찬가는 이제 더 놀라울 것도 없다. 다만 본인으로 하여금 문단을 자르지 못하게 한 주옥같은 문장력이 총총히 빛날 뿐...  


 정말 중요한 건 바로 두 번째 문단인데, 좃선에서 흔히 쓰는 수법을 쓰고있음이 첫째 줄에서 팍 보인다. ‘절대적인 건 없지...’ 하면서 상대적인 차선을 구하려 하는게 아니라 그저 지금 상황만을 유지하려고 하는 모습. 서울의 봄 이후를 혼란과 무질서의 지난 1년이라고 평가하면서 질서와 안정의 군바리 정권을 은근히 추켜세우고 있는거 보이지? 그러면서 나오는 오늘의 주옥대사를 보시라. ‘비단옷이 아니라고 하여 비웃기만 할 것이 아니라 무명옷이라도 기워 입으려고 하는 예지가 아쉽다고나 할까.’


 누가 보면 군사정권을 은근히 무명옷에 비유함으로써 은유적으로 독재에 항거했다고 우길까봐 걱정이 태산같아지는 문장이다. 내가 과잉해석 하는 건지 몰라도, 이렇게 슬그머니 빠져나갈 구석마저도 미리 만들어놓는 명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뜻하는 바는 같은데, 꼬와도 참고 살자는 거시지. 근데 이 사람이 말하는게 어떻게 변하는지 좀 보자구.









권영성 헌법학원론 88년판 서문


5.16 군사 쿠데타를 시발로 반의회주의적 수단으로 정권을 장악한 일부 몰지각한 집단이라면, 당연히 아까 언급한 ‘무명옷 패밀리’가 대표주자로 손꼽혀야 할 게 아닐까? 그런데 그때는 참고 살자는 투로, 고쳐 입자는 투로 말하더니 6월 항쟁 이후 군부의 횡포가 한 풀 꺾이자 한다는 소리가 ‘또 다시 이 땅에서 인권이 유린되고 독재권력이 발호한다면, 결단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함께 다짐하고자 한다.’는 거냐? 여태까진 졸라 용납했잖아... 씨바. 전두환 정권 하에서는 이방원이 되어 있더니, 왜 88년도엔 정몽주가 되어 있냐는 거다. 88년도 판에서 비판하는 ‘그네들의 헌법하’라는 것은 81년도 서문에서 ‘기다려 온 안정’을 가져다준 바로 그 헌법이라는 사실은 깨끗이 잊어버린 것일까. 2000년 서문에서도 독재와 맞서 싸운 민주화 투사의 모습은 계~속 이어진다.









권영성 헌법학원론 2000년판 서문


20년전 출간할 당시 단지 ‘소망’ 이었다고 하니까 권력의 횡포와 인권 유린에 앞장선 정권의 헌법을 칭찬해준 걸 봐줄 수도 있다고 치자. 문제는 2000년 당시에 이 책이 자그만치 104쇄나 팔렸다는 것이다. 한국 출판업계의 신화, 김용의 영웅문이 100쇄 넘긴 거 말고는 이런 경우 처음 본다. 그만치 많이 팔린 것이고, 따라서 인쇄 수입이 졸라 짭짤했으리라는 것, 우리 모두 쉽게 삘이 온다. 내용이 원채 훌륭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똥 안닦고 일어난것처럼 찝찝하지? 딱 짚어낼만한 증거 본 기자에게 없다. 다만 사법고시 출제 내지는 채점과 관련이 있을거라는 심증만이 있을 뿐. 누구 제대로 아는 사람 있으면 멜질이나 해도.


 





 


시대가 조까탔다는거 안다. 두환이가 졸라 폭압정치 했다는거 잘 안다. 그래도 이러시면 안된다. 헌법은 국가의 밑바탕이고, 법 자체는 조또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상 중요한 것은 판례와 학문적 해석이다. 국가보안법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 내린 판례야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상아탑 속 학문마저도 이렇게 곡학아세하고 있었다면 이건 정말 아니다.


난 단지 이들에게 최소한의 양심 에 대해 묻고 싶다. 독재정권에 꿇었던 사실이야 그렇다고 치자. 그 후에 시대 바뀌자마자 마치 민주투사였던 양 말을 꾸며대는 것, 당신 주변 사람들이 보고 뭐라고 하지 않던가? 만약 그렇다면 사람을 잘못 사귀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겠는데, 이 책들, 전국 각지의 도서관에 박혀있고, 수 백년후의 우리 후손들도 그것을 보게 된다.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 졸라 두렵지 않느냐...


박홍규 교수는 야들이 헌법을 죽였다카던데, 난 갸들이 양심을 죽였다카겠다. 학자로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 갑자기 ‘학자의 잉크는 순교자의 피만큼 순결하다’는 이슬람 속담이 가슴속을 훑고 지나갔다. 졸라~



명함값 하려고 오랜만에 기사 쓴
딴지 법무국 지조때로 서기관 무명씨(
bard_of_wi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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