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4.19.월
이 분의 요청에 따라 자세한 신상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하였지만 항상 본 기자 맘대로 약간의 프로필을 알려드림다. 수년간 한국에서 에니메이션 배경부(back ground)에서 일을 하셨으며 본 기자가 과거 기사에서 언급했던 만화영화 XXX 배경을 그리신 분임다. 이 기사를 쓰고 테러의 위협을 느껴 현재 뉴욕에 피신 중임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감다.
이건 한 마디로 한국 영화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와 동일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점을 꼽는다면 제작, 연출, 시나리오 이 세 가지의 졸속함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마는 만화 영화는 콘티와 음향이 7대 3 정도로 그 완성도를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만화 영화 제작이 가진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영화에 비해 ( 물론 영화도 헐리우드에선 컴퓨터 그래픽으로 상당 부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우린 돈이 없음. ) 자기가 맘대로 콘티를 짤 수 있다는 건데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콘티가 졸속이면 암만 캐릭터가 쉑시하고 젖통이 탱탱해도 관객들의 똥꼬가 벌렁거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만화감독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이 능력이 부족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 감독들 연출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랑 비슷하죠. 복선도 없고 카메라 워킹이 졸음을 불러일으키는 건 콘티의 부재 때문입니다. 음향에 관해 말하자면 아무리 에바 아닌 에바 할배가 와도 시토가 우리 나라 만화 영화의 진짜 엽기적인 비행기 음향(기억합니까? 삐...이...유...웅 하는 뱅기 날라가는 소리를) 소리를 낸다면 곧바로 망해 넘어질 겁니다. 만화영화는 영화와는 달리 모든 음향이 만들어 넣는 것이기 때문에 음향효과가 일반 영화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일본이 세계 만화계를 제패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국 만화는 근본적으로 디즈니라는 천재가 이루어 놓은 업적과 만화 형식과 정신(지금은 매너리즘과 보수주의에 빠져있지만)에서 한 발자국도 나간 것이 없습니다. 미국은 디즈니 이후 50년을 계속 그걸 파먹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재패니메이션의 선구자는 아톰이며, 확실한 나아갈 바를 보인 것이 은하철도 999와 건담입니다. 은하철도는 내용과 콘티, 캐릭터, 음향에 있어 진일보한 작품입니다. 즉 일본의 세계를 찾은 거죠. 그리고 졸라 짱인 전투씬이 있습니다. 미국애들이 지랄엽차기를 해도 그건 절대 못 따라 갑니다. 아마 우리도 못 할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일본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맨날 싸움박질만 하고 살아서 칼과 전투, 호전성으로 가득한 그 사람들의 과거가 안 됐죠. 역사를 배우다 보면 정말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게 됩니다. 한국인은 비폭력적인 민족은 아니나 지극히 비호전적인 민족입니다. 마지막으로 배경과 미술을 말하겠습니다. 그건 사실 보면 아는 건데 일본 만화와 미국 만화는 척 보면 구분이 확 갑니다. 왜냐? 쓰는 색(color)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자신들의 색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원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기계에 민감한 사람들입니다. 일본 만화 포스터를 그냥 볼 때 보다 사진으로 찍어서 보면 더 예쁩니다. 반면에 미국 사람들은 원색을 많이 쓰지 않습니다. 이건 서로 다른 회화 전통을 가졌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너무 길어지니까 이쯤 하죠. 이와 같이 일본의 성공은 철저히 자신의 강점들을 만화에 이입시킨 점에 있습니다. 기계, 폭력, 군사 문화, 선정성, 원색적인 색감, 예쁜 등장 인물, 고운 선(만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남. 우리 나라 만화가들은 처음에 곱게 그리던 사람들도 점점 거칠게 되는데 일본은 그 반대임. 사실 우리 나라는 이름을 좀 얻으면 지가 안 그리고 문하생 시켜먹는데 그 원인도 있지만 일본의 경우는 작가 자신보다도 잡지 편집자의 의도가 들어가기 때문인데 그 말은 구매자들이 고운 걸 선호한다는 얘기임), 게다가 여기에 좋은 인력들의 투입이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7,80년대 서울대, 연,고대 출신들이 대거 만화계로 진출했었습니다만 지금은 TV 쪽으로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전 학벌 지상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런 현상은 바로 그 사회가 만화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알다시피 일본인들은 만화 하면 애들이나 보는 걸로 생각 안 합니다.
제 생각은 우리도 일본과 같은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도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만화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우리도 우리가 잘 하는 분야를 찾고 우리 색을 찾아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잘 할 주제, 우리가 잘 할 쟝르, 우리가 잘 하는 표현 양식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 보아 한국의 만화 영화계 자체에서는 발전이 힘듭니다. 다른 곳에서의 인력 유입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하청 제작이 주류인 거의 모든 제작사가 중소기업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철(여름이 성수기) 벌어 한철 사는 식인데 이 것 때문에 미국 등의 하청 의뢰자들을 두고 우리끼리 덤핑을 합니다. 값을 알아서 깎는 거죠. 돈만 생각하지 만화의 질 같은 건 생각 안 합니다. 그래서 배경 매수가 많다던가 동화 수가 많다던가 칼라링의 경우 색칠해 넣을 면이 많아진다던가(3중 화면 같은 것)하면 아주 싫어합니다. 한국 자체 제작 만화에 3중 화면이 왜 없는지 짐작이 가십니까? 외국 제품(특히 미국)은 그린 게 주문사 마음에 안 들면 돌려보내져서 다시 그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위대한 대충대충의식으로 개기는 것이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껀 괜찮죠. 끼리끼리 모여서 하니까 방송사 주문 받으면 쉽게 편하게 돈을 벌 궁리부터 하는 겁니다. 짐작하시겠지만 한국 내에서는 방송사라고 해서 refund 시킬 수 없을 뿐더러 (로비가 괜히 있는 게 아니죠) 담당 PD도 대부분 광고 따고 시청률 어느 정도 올리면 되기 그냥 봐 줄만 하면 넘어 갑니다. 다시 말해 애들이 보는 거니까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지금 만화 영화 종사자들을 보면 놀랍도록 만화 영화를 좋아하거나 잘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냥 고등학교나 전문대 나온 여자 애들이 밥벌이로 우연찮게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현재 위에서 일을 시키는 감독급들도 마찬가지구요. 울나라 애니메이션계에서 여성의 존재를 무시하고서는 진실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만화영화 발전은 하청에서 시작했고 하청의 이유는 싼 노동력입니다. 제가 처음 시작할 때 받는 월급이 20만원이었습니다. 3년 후 받는 월급이 6,70만원이고요. 지금은 초봉이 30만원 선입니다. 하지만 여름 성수기 땐(한 시즌에 두세 작품씩 할 때) 철야(밤새기)까지 합니다. 그래 봐야 한 10에서 15만원 정도 더 받습니다. 동화부 경우는 사정이 더 낫습니다. 초봉은 비슷하지만 그들은 그린 매수로 돈을 받기 때문에 3,4년 지나면 꽤 번다(고교 졸업자들의 임금 수준에서)고 들었습니다. 그러다 원화부에 들어가면 확실히 나아집니다. 배경부는 배경 감독이 되야 그게 가능합니다. 그러니 남자들 수는 적어지고 여자가 많아졌습니다. 여자들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나와 한 6~8년 정도 일하면 시집 갈 자금 준비가 가능하고 결혼하고 나서도 프리랜서의 형태로 집에서도 일이 가능하기 땜에 고졸 여성에겐 짬짬한 직종입니다. 따라서 대졸 출신들은 사정을 알면 아무리 만화를 좋아해도 회사엔 안 옵니다. 제가 직장 다니는 동안 4년제 대학 졸업자는 제가 있었던 전체 한 400명 정도의 배경부는 한 명도 못 봤고 동화부엔 몇 명 있다는 소리를 들었었고 기획부에는 좀 있는 모양인데 그들은 실제 만화 제작에 참여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만화 영화의 본질을 정확히 모릅니다. 즉 대가리로 소프트웨어(정확히 아이디어 단계)정도는 하지만 하드웨어가 안 된다는 거죠. 만화는 손으로 만드는 것이고 거기에서 오는 노하우는 시간을 투자해서 배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머리 좋고 약은 애들이 그 박봉 받고 그 짓하고 있겠습니까? 저처럼 머리 나쁜 무식한 인간이라면 또 몰라도. 우리 만화 영화 제작엔 몸통은 있는데(우리 나라 인력은 엄청 고급임. 그림 그리는 실력은 100% 믿어도 됨) 대가리가 없습니다. 즉 모든 걸 총괄할 재량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거죠. 만화 영화는 종합 예술이고 시나리오, 콘티, 원화, 동화, 배경 모두를 잘 화합시켜야 합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만화 중 일부 인기 만화가가 제작을 맡은 경우가 있었는데 사실 무리입니다. 연극 감독이 영화 감독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특히 한국 만화는 만화가 자신과 문하생들로 이루어지는 상하적 관계인데 반해 만화 영화는 서로 다른 분야를 각각의 감독들을 통해 조율해야 하므로 성격이 연극 만들다가 영화 찍는 것보다 어려웠으면 어려웠지 쉽지 않습니다. 진실로 만화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건담처럼 오리지날도 있지만 사실 많은 만화 영화가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좋은 만화가 필요합니다. 우리 나라 만화가들 각성해야 합니다. 전 일본 문화의 개방 찬성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우린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을 보호해야 합니다. 이미 영화, 만화, 모든 종류의 대중 음악, 방송 (사실 건축, 교육 등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등이 모방 아닌 표절을 합니다. 그들은 자진해서 정신을 판 매춘부들과 그 포주들입니다. 그들은 강간당할 것처럼 얘기 하지만 돈 받고 강간당하는 것 봤습니까? 물론 타격이 심하겠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 엄청 보수적인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이겨냅니다. 우리가 당할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몽고가 세계를 제패했을 때 쿠빌라이 칸의 공격(초토화 작전으로 유럽 역사책을 조금만 뒤져보면 그들에 대한 공포감의 정도를 쉽게 찾을 수 있음)을 40년이 넘게 막아낸 나라, 세계에서 우리 밖에 없으며 300여 년 간 싸움박질하다가 군사 문화의 꽃을 피우며 총까지 들고 온 애들을 그 300여 년 간 이렇다 할 전쟁 없이 책만 죽도록 보다가 무기도 없어서 농기구 들고, 돌로 쳐서 이긴 사람들이 우리였다는 겁니다. 그거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좋은 만화(전문적인 지식과 정성들인 화면 편집. 가능하다면 철학까지)가 필요합니다.
검열제가 남긴 악폐 중 하나가 아무나 자기 맘대로 짤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전 우리 나라 어린이 시간에 공포영화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은 느낍니다. 전율을 느껴요.
미국 애들이 왜 돈 왕창 들여 컴퓨터 애니메이션 하는 줄 아십니까? 셀 애니메이션에선 더 이상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땜에 나름대로 다른 분야를 판 겁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도 나름대로 발전하겠지만 만화가 예술로서 의미있는 쟝르라면 손으로 그리는 것은 영원합니다. 오히려 지금의 실사 위주(얼마나 실제같이 그리는가의 경쟁. 디즈니사 만화 영화와 미야자키의 작품이 대표적으로 더 실제 같은 것이 잘 그린 그림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표현 기법이 나타날 것입니다. 지난 겨울에 1년 만에 한국에 들어가 <아름다운 시절>을 봤습니다. 적어도 그 영화에는 종래 방화의 빈 구석은 없더군요. 복선도 있고 의도적인 카메라 워킹과 무대 장치가 있었고. 한 편의 수채화 같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의 classic을 만들려면 우리가 지향할 바는 <라쇼몽>이 아닌가 합니다. 수채화보다 문인화가 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 그 영화는 아름답고 곱긴 했지만 철학은 없더군요.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군요. 어여쁜 신랑이 곧 들어오는 관계로 이만 줄일까함다. 아차..전 아줌마임다..이 밖에도 한국애니에 대해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더 알고 계신 분 적극 투고 바람다. 꾸벅.
- 얼떨결에 된 뉴욕 수습특파원 이뿌니 (kacademy@neti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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