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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7.수요일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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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문화사 잉글랜드편 1


 


축구문화사 잉글랜드편 2 - 오만한 신사들


 


축구문화사 잉글랜드편 3 - 경기 끝났습니다!


 


축구문화사 잉글랜드편 4 - 종주국 흥망사


 


 


 



 



 



독일전 패배로 베나블스 감독의 목이 날아간 후 잉글랜드 대표팀의 사령탑이 된 글랜 호들은 한마디로 진상 이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최연소(38세) 감독이 된 그는 선수시절 공격형 미드필더로 명성이 높았다.


 


 




글렌호들


 


 


호들은 선수시절의 화려한 경력때문에 감독으로서 못해도 중간은 갈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런데 그는 월드컵 스타팅멤버를 점쟁이에게 의뢰해 결정했다! 숟가락 구부리기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던 유리 겔러는 "글렌 호들에게 초능력을 부여하는 의식을 거행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발언 때문에 그는 호들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잉글랜드는 프랑스 월드컵에서 8강에 안착했다. 16강전 상대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 축구판에서 잉글랜드에겐 강력한 원수가 둘이 있으니, 하나는 독일이고 하나는 아르헨티나다. 또한 호들 감독은 아르헨티나와 특별한 추억이 있다. 대표팀에서도 활약한 그는 마라도나가 역사상 최고의 골을 기록할 때 제친 6명의 잉글랜드 선수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당 대회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 이 경기의 키 플레이어는 셋. 일단 어린 오웬이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시메오네, 다른 하나는 잉글랜드의 베컴이었다.


 


시메오네는 경기 시작 6분 만에 페널티킥을 얻었고, 이를 바티스투타가 성공시키면서 선제골을 빼앗았다. 10분, 빠른 돌파로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진입한 오웬을 아르헨티나 수비수 아얄라가 넘어뜨리면서 잉글랜드도 찬스를 얻었다. 잉글랜드의 에이스 앨런 시어러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승부는 다시 원점.



1:1의 긴장감을 환희로 승화시킨 것은 오웬이었다. 오웬은 16분 고속 드리블로 필드를 가로지른 후, 아얄라를 페인트로 가볍게 제치고 일격을 날렸다.


 



 


이 골은 아직도 잉글랜드에서는 전설로 남아있다. 덧붙여 아얄라는 어린 소년에게 한 경기에서 두 번이나 관광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아르헨티나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45분 얻은 프리킥 찬스를 하비에르 자네티가 득점으로 연결, 동점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잉글랜드vs아르헨티나 구도에서 감정적으로 아르헨티나 편이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우위에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필자에게는 기쁘게도 아르헨티나의 편이었다.


 


절망은 베컴의 실수와 함께 찾아왔다. 베컴은 시메오네에게 거친 파울을 시도, 퇴장당하고 말았다. 사실 이 퇴장 사건의 진정한 피해자는 시메오네가 아니라 베컴이었다. 베컴은 남미의 노련한 수비수 시메오네를 상대하기엔 경륜이 부족했다. 경기 시작부터 베컴을 점찍은 시메오네는 먼저 그에게 강한 태클을 걸어 자극했다. 이후에도 적당히 더티한 플레이로 베컴의 화를 돋웠다. 후반전, 복수할 기회가 찾아오자 베컴은 망설임 없이 시메오네에게 태클을 걸었다. 시메오네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장렬히 넘어졌다. 물론 주심의 눈에 아주 잘 띄는 각도에서.


 



베컴의 태클 직후의 두 사람


 


베컴의 퇴장으로 잉글랜드는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수적 우위를 얻은 아르헨티나는 파상공세를 펼쳤고 잉글랜드는 수비에 급급했다. 그래도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잘 막아서 무승부로 시합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승부차기에서 아르헨티나에 지고 말았다. 16강전의 잉글랜드는 98년 월드컵 최고의 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승부는 이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잉글랜드인들에게 패배는, 8할이 베컴의 탓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베컴은 잉글랜드에서 전범 취급을 받았다. 한때 국외로 이적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으니 베컴이 얼마나 공격당했는지 알 만하다. 잉글랜드인들이 베컴에게 그토록 분노를 쏟아 부었던 것은 패배의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최고의 경기를 말아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상대가 아르헨티나였다.



화살이 베컴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에 감독 글렌 호들은 아르헨티나전 패배의 책임을 다소 모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회 직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고를 친다.


 


"장애인들이 불행하게 태어난 것은 그들이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국에도 장애인이 있고 그들의 가족이 있다. 이 상상을 초월하는 발언으로 글렌 호들은 잉글랜드에서 베컴과 샌드백 콤비를 이뤄 신나게 두들겨 맞는다. 


 



잉글랜드 네티즌이 합성한 글렌 호들의 이미지.
이 이미지는 다음 생에서의 호들 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녔다.


 


FA는 호들은 경질해 버렸고, 후임으로 전 대표팀 주장이었던 케빈 키건을 앉혔다. 그러나 98년 이후 잉글랜드는 부진을 거듭했다. 키건의 감독으로서의 생명력은 2000년 9월 웸블리에서 고갈되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독일과의 경기에서 패배한 것이다. 이 패배로 그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 시합은 잉글랜드 축구팬들에게 무척 서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첫째 독일에 또 졌다. 그것도 홈에서였다. 둘째 스트라이커의 모범적 표본이라 불리던 잉글랜드의 에이스 앨런 시어러가 이 시합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그의 나이 불과 29세였다. 사실 취지는 좋았다. 후배들에게 양보한다가 그 이유였으니. 하지만 이 너무나 아름다운 퇴장은 대표팀에 심각한 전력공백을 선사했다.


 


뉴캐슬 팬에게 앨런 시어러는 특별한 존재다. 그는 뉴캐슬의 남자 다. 시어러는 뉴캐슬에서 태어나 뉴캐슬에서 축구를 배웠고 뉴캐슬에서 뛰는 것이 꿈이었다. 뉴캐슬에서 선수시절의 황금기를 보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뉴캐슬을 위해 뛰는 것은 나의 꿈이었고 나의 전부다."
"나는 뉴캐슬을 위해 110% 노력한다."



그가 현역에서 은퇴할 때 한 언사는 감동적인 구석이 있다.



"... 이제 다시 한 명의 팬으로 돌아온다. 누가 뉴캐슬 응원가를 부르고 있는 날 보게 되면 아는 척 좀 해주라."


 


앨런 시어러에겐 특이사항이 하나 있으니 바로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골 세러모니다.


 



 바로 이것


 


인사하듯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고 뛰는 이 별것 아닌 동작은 뉴캐슬과 잉글랜드 축구팬들에게 무척이나 사랑받았다. 이 자세는 현재 잉글랜드에서 상표로 등록되어 있다. 또한 시어러의 골 퍼포먼스가 프린트된 티셔츠가 판매되고 있으며 매상의 10%는 자선기금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98년 이후 부진을 거듭했다. 사실 잉글랜드는 1966년의 월드컵 우승을 제외하고는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마침내 FA는 잉글랜드 축구인 중에서만 대표팀 감독을 뽑아오던 전통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잉글랜드 선수들의 질은 꾸준히 향상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감독의 지도와 전술이 보수적이고 고루한 이상, 선수들의 개인적 역량만으로 세계무대에서 살아남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보수적인 FA는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초유의 결정을 내린다. 잉글랜드인들은 축구대표팀 감독을 가리켜 잉글랜드 보스 England Boss 라고 한다. 번역하면 영국 두목 쯤 되는 속어다. 외국인에게 두목자리를 내준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대단한 손해다. 그러므로 기왕 외국인에게-그것도 최초로- 감독을 시키려면 경력이 화려한 사람이어야 했다.


 


스웨덴 출신의 명감독 스벤 고란 에릭손이 FA의 시야에 들어왔다. 에릭손은 선수로서는 삼류였다. 스웨덴의 하부리그에서 뛰었고 가장 화려했던 때는 고작 2부 리그 시절이었다. 그나마도 무릎부상으로 겨우 27세에 현역에서 은퇴해야 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대단한 재능을 발휘했다. 그는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이탈리아컵 우승(1998년), 이탈리아 슈퍼컵 우승(1998년), 유파컵/위너스컵 우승(1999년), 유파 슈퍼컵 우승(1999년), 2000 이탈리아 정규리그 우승(스쿠데토) 등 쟁쟁한 타이틀을 쓸어 담았다.


 



이분이 에릭손. 소싯적 다친 무릎은 안녕하신지?


 


개혁은 외부인이 하는 편이 더 쉬운 법. 에릭손은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잉글랜드 대표팀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갈 무렵, 에릭손과 대표팀은 홈 웸블리에서 1:0 패배를 안겨주었던 독일과의 원정경기에 임한다.



독일을 그것도 독일에서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역시나 경기는 0:1로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잉글랜드는 내리 5골을 터뜨려 독일을 5:1로 이겼다! 이 시합 결과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잉글랜드인들은 기뻐하기 전에 일단 어리둥절해했다. 경기가 끝나고 베컴은 이렇게 말했다.


 


"독일에 5대1이라고? 여기는 독일인데? 믿기지 않는다."


 


잉글랜드의 유명 축구 칼럼니스트인 랍 휴즈도 어안이 벙벙했다.


 


"독일의 홈에서 5:1로 이기는 장면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아버지, 아니 내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런 결과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합은 잉글랜드에서 역사상 최고의 경기 로 평가되고 있으며, TV에서 수없이 녹화방송 되었다. 큰 대회의 결승전도 아니고 월드컵 지역예선전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물론 강호들이 즐비한 유럽에선 이것도 큰일이지만), 66년 이후 독일에게 눌려온 심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여하튼 이 경기 덕분에 에릭손은 잉글랜드에서 엄청난 지지를 받게 된다. 가까스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잉글랜드는 아르헨티나와 스웨덴이 속한 ‘죽음의 조’에 편성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실질적인 16강전이라 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전이 가장 중요했다. 4년 전 아르헨티나전에서의 퇴장으로 잉글랜드에서 공공의 적으로 전락한 베컴에게도 중요한 경기였다.


 


43분, 오웬이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페널티킥을 얻었다. 페널티 키커는 베컴. 베컴이 페널티킥을 준비하자 4년 전 그의 퇴장사건을 유도했던 시메오네가 베컴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시메오네는 베컴에게 고도의 심리전을 구사했다.



"저쪽으로 차는 게 좋을 거야. 저쪽으로."


 


4년 전의 베컴이었다면 당할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베컴은 페널티킥 치고는 좀 우스울 정도로 기백을 잔뜩 담아 슛을 했고 공은 네트에 힘차게 꽂혔다. 이 킥이 실패했다면 베컴은 영원이 시메오네의 밥으로 등록되었을 것이고, 고국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베컴은 성공했다. 잉글랜드는 이 골을 끝까지 지켜 1:0으로 승리했다. 수비진이 총동원되었고 가장 큰 활약을 편진 수비수는 리오 퍼디난드였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베컴은 승자의 여유를 과시했다.



"시메오네는 신사적인 사람이다. 그와 나는 경기 후 서로를 존중하는 뜻에서 악수를 나누었다."


 


조별예선을 통과한 잉글랜드가 16강전에서 덴마크를 꺾을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브라질과의 8강전은 한심했다. 1:2로 역전패한데다가, 브라질의 호나우딩요가 퇴장당하면서 얻은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뒤집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경기는 에릭손이 만능 해결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에릭손은 조직가에 가깝지, 현장에서 정력적인 감독은 아니다. 그는 경기 중에 전략을 한 번도 바꾸지 않고 무기력한 패배를 관망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놓은 히딩크는 에릭손과 잉글랜드에 대해 혹평을 내렸다(히딩크는 사실 혹평 전문가로 통한다.).
"대회 최악이다."


 


 




이후 영국 언론과 팬들은 거품이 꺼진 외국산 잉글랜드 보스 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좋은 결과를 낼 땐 곧바로 태도를 바꾸어 칭찬했다. 한마디로 냄비근성이다. 필자는 한국인의 냄비근성론 에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는데 그건 조국과 자국민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는 아니다. 냄비근성이란게 만약 존재한다면, 그건 어떤 민족의 특성이 아니라 그냥 대중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에릭손이 잉글랜드 대표팀의 수준을 끌어올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인의 시선이고, 잉글랜드인들은 이 바이킹의 후예에게 불만이 많았다. 이 불만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직전 매우 비열한 방식으로 폭발된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이자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종이매체인 <뉴스 오브 더 월드>가 에릭손에게 덫을 놓은 것이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에릭손을 끌어들여 두바이에서 가짜 아랍인 대부호와 대화하게 해 놓고 이를 몰래카메라로 찍었다. 고약하기로 유명한 영국 언론이 벌인 이 작태는 너무 한심하면서도 또 재밌는지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대화 내용을 갈무리한 것이다.


 







아랍인 : 프리미어리그의 클럽 중 어디를 매수하는 편이 좋겠습니까?
에릭손 : 아스톤 빌라를 추천합니다.
아랍인 : 왜요?
에릭손 : 회장 덕 앨리스는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으니까요.
... (중략) ...
아랍인 : 제가 만약 아스톤 빌라를 매수하면 에릭손 감독이 팀을 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에릭손 : 후후후(웃음)
... (중략) ...
에릭손 : 아스톤 빌라의 감독으로 취임하게 된다면 연봉은 500만 파운드 선이 좋겠군요. 그리고 20만에서 30만 파운드의 타이틀 획득 보너스도 필요합니다. 또한 만약 FA를 떠난다면 빌라와 3년 계약을 맺었으면 합니다. 제가 취임한다면 빌라의 과거 10년 유니폼의 매상을 단 1주만에 갱신할 자신이 있습니다. 제가 부르면 베컴을 레알 마드리드에서 빌라로 데려올 수 있거든요. 제가 보건데 베컴의 레알 마드리드 생활은 그닥 즐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장 내일 그를 불러 빌라로 함께 가자고 설득할 수도 있습니다! 저와 베컴은 가까운 사이니까요. 베컴을 부르고 싶으면 아스톤 빌라를 사들이고 나서 바로 그와 계약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은퇴할 때까지 빌라를 위해 뛸 겁니다. 다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데려올 때 필요한 이적료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단 베컴을 직접 만나보죠.
아랍인 : 마이클 오웬은 뉴캐슬에서 뛰는 것에 만족하고 있나요?
에릭손 : 설마요. 그가 뉴캐슬에서 뛰는 이유는 오직 돈 때문입니다.
아랍인 : 이적료가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된 선수는 누구인가요?
에릭손 : 션 라이트 필립스입니다. 2500만 파운드는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네요.
아랍인 : 리오 퍼디난드는 어떤가요?
에릭손 : 가끔 게으름을 피웁니다.
아랍인 : 웨인 루니는요?
에릭손 : 루니는 궁핍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권투 선수였기 때문에 그 역시 권투 선수(여기서는 싸움꾼을 의미)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가 베컴과 같은 브랜드가 되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 사건으로 에릭손은 돈에 눈이 먼 속물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사실 에릭손의 대화가 고상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사업이야기는 본래 그다지 우아하지 못하다. 에릭손이 잘했다는 건 아니다. 스웨덴인이 잉글랜드 선수들을 자기가 보유한 자원인 마냥 떠든 게 잉글랜드인들에게 기분 나쁜 일인 건 당연하다. 하지만 에릭손의 천박함보다는 개인의 천박함을 노출시키고 일반에 공개한 언론의 천박함이 더 심각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참고로 가짜 아랍인 역을 맡았던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리포터인 마제르 마흐무드는 영국에서 <올해의 리포터>상을 수상하기도 한 실력파 리포터다.


 



이 양반이 바로 마흐무드


 


그는 아랍인 대부호 전문 위장술사로, 같은 수법으로 각계의 유명인사를 바보로 만든 경력이 있다(최근에는 중동 테러단의 일원으로 의심받기도 했다.). 서양의 영화나 소설을 보면 짐작되는 것처럼, 유럽인들은 정말로 아랍인 부자와 오일머니에 대한 환상이 있는 듯하다(부유한 아랍인이 아름다운 백인 여자를 성노예로 구입하는 설정은 흔하디흔한 포르노그래피다.). 어쩌면 중세 때부터 내려오는 심리적 전통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대중의 제물로 낙점된 에릭손은 우리나라에서 사고를 친 연예인이 웹에서 마녀사냥을 당하는 상황을 오프라인에서 경험하게 된다. 그래도 그는 2006 독일월드컵에서 훌륭하게 잉글랜드를 이끌었다. 8강전에서 포르투갈에 승부차기로 패할 때까지 잉글랜드는 잘 싸웠다.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한 에릭손이 잉글랜드를 떠나는 것은 거의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가 잉글랜드를 떠나는 순간이 오자 잉글랜드라는 냄비의 온도는 급격히 변했고, 대부분 에릭손의 퇴임에 격려와 위로를 바쳤다. 사실 에릭손은 정말 잘했던 것이다. 그는 독일과 아르헨티나를 이겼고, 특히 아르헨티나는 친선(!)경기까지 포함해 두 번이나 이겼다. 그의 잉글랜드 대표팀 성적은 67전 40승 17무 10패. 세계축구를 상대로, 그것도 대부분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을 상대로 승리가 패배보다 네 배나 많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이런 업적은 알프 람지 이후 유일하다.


 


어쨌든 이미 떠난 스웨덴산 버스에 손 흔들어봐야 소용없었다.


 


 




에릭손의 후임자리는 잉글랜드인인 스티프 맥클라렌에게 돌아갔다. FA는 1년 반 만에 그를 감독직에서 내려보내고 다시 외국인 감독을 찾았다. 에릭손이 남긴 여운이 무척 좋았던 게다. 이탈리아의 파비오 카펠로가 사상 두 번째 외국인 감독이 되었다.


 



실력뿐 아니라 성깔로도 상당한 명성을 자랑하는 카펠로


 


카펠로의 카리스마는 게르만 핏줄의 근엄함이 아니라 남유럽의 격정에서 나온다. 그는 잘 웃고 잘 욕하는 다혈질이다. 그런 그와 무뚝뚝한 잉글랜드인들의 궁합이 어떤지는 아직까지는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현재까지는 놀랄 만큼 순항중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카펠로의 지휘아래 현재까지 18전 14승 2무 2패의 성적을 자랑하고 있다. 이미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은 잉글랜드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잉글랜드는 축구의 종주국이다. 잘하다가도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못하다가도 문득 잘하는 신기한 대표팀을 가진 나라다. 무척 폭력적이고 꽤나 찌질한 팬 문화, B급 폭력배 감성을 끝가지 간직하는 훌리건들, 지나칠 정도로 충성스런 골수팬들, 논란이 있을 때면 대표팀이나 지역팀이나 자기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우기는 직심스런 비논리, 치열한 냄비근성, 그라운드 주변을 지배하는 싸구려 마초문화... 잉글랜드 축구가 훌륭하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역시 거칠고 소박한 축구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나라이다.


 


잉글랜드 축구가 고유의 색을 버린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말이다. 축구라는 것 자체가 이미 안개처럼, 너무나 잉글랜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는 원래 싸움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영웅들의 비장한 전투가 아니라, 몹 풋볼 시절의 그 패싸움 말이다. 그래서 너무 과한 찬사이긴 하겠지만, 축구는 영원히 잉글랜드적이라고 한 번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P.S



잉글랜드편이 끝났군요. 대략 시리즈의 8분의 1이 소화된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무궁무진하지만, 시리즈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이쯤에서 절제하는 게 현명한 것 같습니다. 다음 시리즈를 어떤 국가로 할 지 고민하다가, 독자여러분들의 결정에 따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7개국 중에서 골라주세요. 물론 게시판에 가장 많이 언급된 국가를 선택해 하겠습니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페인/ 프랑스


 


덧붙여 연재가 늦어진 점 죄송합니다. 암벽등반과 행군을 방불케 하는 강도 높은 성묘로 인해 심신이 와해된 상태였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고백합니다. 차례상에 북어포를 제자리에 놓지 않았다고 필자를 혼내던 어르신들이 바나나와 멜론을 올려놓는 모습을 보고 받은 정신적 충격이 상당했다는 점도 아울러 밝힙니다. 어쨌거나 블랙홀 연휴의 충격과 공포 속에서도 청소년 대표팀 홍명보호가 미국에 이어 파라과이도 뼈와 살을 분리해 주었군요. 남은 추석 음식은 잘 재활용하고 계신지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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