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딴지일보 죽지않는돌고래 부편집장의 페북에 올린 댓글 하나가 불씨였다. 누군가 댓글을 캡쳐해 퍼져나가기 시작하더니 이틀 만에 몇 만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페이스북 외에도 여기저기 캡쳐가 나돌았다. 딴지일보를 통해 공중파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 딴지 부편집장이 이런 힘이 있구나’하면서 당황했다(전혀 그렇게 안 생겼음). 그러다 점점 ‘좋아요’가 늘어나면서 홀로 심취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한국 민주주의가 1987년에 생겼다고는 하지만 그대로 실천된 것은 아니었다. 끈기 있게 싸우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헌법에만 나와있는 글씨나 다름없었다. 단순한 헌법을 넘어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지속적인 활성화가 필요하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전례다. 3주 전에 썼던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댓글이 분노와 좌절에 빠진 한국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었다면 오늘 이 글은 더욱 의미심장할지 모르겠다.
난 미국사람도 아니고 한국사람들에게 미국의 민주주의를 소개하려는 것도 아니다(편집부 주: 필자인 크리스는 벨기에인입니다). 특히 트럼프가 선출되고 나서부터는. 그러나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의 전례를 참고하면 배울 점이 많다고 본다. 닉슨 대통령을 하야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이 전형적이고 희망적인 전례가 될 것이다.
1972년 6월 17일 밤, 민주당 대선 선거운동 지휘 본부가 있던 워터게이트라는 빌딩에서 도청장치를 가진 5명의 남자가 체포됐다. FBI는 대충 수사했고 그 결과 단순 절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헌데 Washington Post 신문의 기자 Bob Woodward와 Carl Bernstein은 세밀한 조사를 시작했다. 수 백번의 전화와 수 십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직접 현장에 나가 조사를 했고, ‘Deep Throat’라는 익명의 제보자의 도움으로 심도 있는 탐사보도를 통해서 진상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 두 기자는 워터게이트 사건은 단순한 절도사건이 아니라 닉슨 대통령의 재선위원회와 백악관이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론은 신경쓰지 않았고 백악관도 다른 신문사들도 엉터리 저널리즘을 그만두라고 충고했다. 한국에서는 처음 최순실에 대해서 조사한 김의겸 기자와 한겨레 팀을 생각나게 한다. 이렇게 외롭고도 위험한 탐사보도를 하는 기자가 없었다면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최순실의 존재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본분을 다한 취재의 시작이 민주주의 활성화의 1단계다.
닉슨으로 돌아가서, 워터게이트 사건은 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에 닉슨은 1972년 11월, 아주 쉽게 재선됐다. 그러나 닉슨을 반대하는 단체나 조직은 적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들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Black Panther’와 같은 단체들처럼 끊임없이 반정부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점점 커지면서 분노를 느끼던 대중들은 거리에서 항의집회의 선봉에 있던 시민단체들과 동조하여 나란히 외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유가족을 보호하는 단체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노조와 농민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운동을 했던 학생들을 생각나게 한다. 이렇듯 선봉에 서있던 단체들이 없었다면 일반 국민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해줄 만한 매개체가 없었을 것이다. 이들 덕분에 더 쉽게 거리로 나설 수도 있고 한 목소리로 더 크게 외칠 수 있다. 이런 지속적인 싸움이 민주주의 활성화의 2단계다.
1973년 초, Sam Ervin이라는 야당 상원의원은 특별위원회를 설립해 백악관 직원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처음 닉슨 대통령은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며칠 후 국가 안전보장과 대통령의 특권을 내세우면서 말을 번복했다. 닉슨이 여자였다면 분명히 ‘여성의 사생활’을 주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원 특별위원회는 조사를 계속했고 피의자들을 강하게 심문한 결과 닉슨에 대한 불리한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닉슨은 모든 사실을 부인했지만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버티면서 하야하지 않았다. 이런 대통령의 끈기만큼 끈질긴 야당의 정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활성화의 3단계다.
1973년 5월부터 특별위원회의 심문과정을 생방송으로 공개하고 모든 미국사람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말을 TV를 통해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위원회를 주도한 Sam Ervin의 카리스마가 인상적이었고 피의자가 증언을 할 수 있도록 교묘히 유도하는 방법으로 존경받으며 대중의 스타가 되었다.
공개적으로 방송한 것은 시민의식을 유지하는 데에 큰 몫을 했다. 또한 특별검사로 지명된 Archibald Cox는 빠짐없이 다시 조사했고 닉슨 대통령은 눈엣가시인 그를 결국 면직시켰다. 그로 인해 시민들의 분노가 절정에 이르고 독재라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야당은 탄핵준비에 착수했다. 특별위원회와 특별검사가 끝까지 노력한 끝에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된 모든 악질의 진상이 규명되었고 닉슨 정부의 모든 월권 행위들이 밝혀졌다. 불법사찰과 도청, 대기업과의 유착과 비자금, 뇌물과 횡령, 위증, 국회 공무집행방해, 사법방해 등등. 워터게이트사건 자체는 시발점이었을 뿐이다.
닉슨은 증거가 없다면서 계속 모든 혐의를 부인했지만 주요 증인들 덕분에 백악관에서 벌어진 모든 대화들이 녹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닉슨은 테이프 공개를 계속 거부했으나 점차 수세에 몰렸다. 사법부를 대표하는 기관이나 공직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공개적으로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민주주의 활성화의 4단계다.
1974년 7월, 특별위원회가 2000페이지 상당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나서야 닉슨의 탄핵을 지지할 의원수가 3분의 2를 넘었다. 도덕적인 자격을 잃었다는 명분이었다. 대법원 9명 중 4명의 판사가 닉슨대통령에게 직접 임명됐는 데도 불구하고 판사 9명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의 특권을 무효화 시키며 탄핵을 진행하게 해주었다. 결국 정세에 몰린 닉슨은 탄핵의 모욕을 당하느니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며 자진 사퇴했다. 대법원과 대통령의 양심이 민주주의 활성화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다.
1972년 6월 워터게이트 사건부터 1974년 8월 닉슨 대통령의 자진 사퇴까지는 2년 넘게 걸렸다.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최순실게이트는 워터게이트와 다르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서 한국사람들이 주의할 수 있는 점은 있다. 일단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끈기 있게 싸우지 않으면 그들이 말한 대로 촛불은 바람에 꺼진다.
요즘 한국은 민주주의가 타오르고 있다. 내가 한국에 온 이래 한국사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정도의 갈망은 처음 본다. 진상을 위해 열심히 취재하는 기자들, 분노를 외치는 시민단체들, 주말마다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수십만 명의 국민들... 이제는 야당과 사법부 공직자들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들한테 계속 알려줍시다.
촛불은 바람불면 더 크게 번질 수 있다고,
끈질기게 외칩시다.
(19일 진주 시위현장에서 지친 울 딸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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