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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누가 오랬어?
- 이태리에서 체류를 위해 얻어야 하야는 종이쪽다리에 얽힌 설움 -


2001.12.17.월요일
딴지 외교부 이태리 지부

이태리.


말만 들어도 겁나게 멋있다. 왠지 로만틱하고 남자들이 괜히 잘생길 것 같고 한국 사람들 치고 (이태리에서 살아본 사람 빼고) 환상 조금씩은 갖고있을 텐데.. 하지만 한번쯤 체류 허가증을 위해 그 악명높은 QUESTURA에 가본 사람은 이 환상은 낱낱이 박살이 나고 만다.


이른바 체류 허가증을 받기 위한 고난이 시작되는데…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나라는 개가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력은 돈이다!)  


딴지 주민들은 남의 나라에 가면 체류 허가증을 신청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너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비자를 신청하면서 알게 된다. 체류 허가증이란 외국인이 국내에 체류할 경우 체류 허가를 인정하는 서류이다. 이태리와는 60일 무비자 협정이 있기때문에 관광을 목적으로 60일 간은 비자 없이 당연히 체류 허가증도 없이 체류가 가능하다.  반면에 유학이나 일을 목적으로 60일 이상 체류하는 경우 도착한 지 8일 이내에 QUESTURA (경찰본서)에서 체류 허가증을 신청해야 한다.


이태리 내에서도 각국마다 약간씩의 차이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의 경우 장기 체류의 기준이 되는 6개월을 기준으로 장기와 단기로 비자가 분류가 되는데 비자가 6개월 후 만기가 되더라도 체류 목적(STUDY, WORK)이 변경되지 않으면 체류 허가증 연장이 가능하다.  일본의 경우는 1년을 주지만 비자 기간이 만기가 되면 반드시 새 비자를 받아야 한다.  각국마다 조금씩 조건이 다르다.


그럼 왜 체류 허가증을 받으러 가서 개가 되는가.







준비해 오라는 서류들을 서류에 껌뻑 죽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착하게도 모두 준비를 한다. 그래서 금방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한 채 QUESTURA를 향해 씩씩하게 간다. 그다음에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정말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서 있다. 무표정한 얼굴과 짜증에 찌든 경찰 아저씨들이 있다. 한 번 창구로 들어가는 데만 새벽부터 4~5시간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들어가지 못하면 하루를 왕창 버리게 된다.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로서는 많은 손해다. 아침 9시부터 업무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나마 접수라도 시도해보려면 새벽 5시부터 기다려야 한다.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고 순서가 짤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을 한 명 한 명 처리해야 하고 또 처음 체류 허가증을 하는 경우 당연히 언어적인 문제(이태리말을 못하는 외국 노동자들 많다)가 많이 발생한다. 특히나 무조건 몰려오는 외국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는 이태리로서는 큰 골치거리 중의 하나이다. 더불어 체류 허가증을 신청해야 하는 다른 부자나라(?)들도 가끔씩은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이런 시스템은 모든 도시가 같은 것은 아니다.  작은 도시들에서는 그래도 외국 노동자들이 적은 이유로 조금은 수월하지만 밀라노나 로마같은 대도시에서는 얄짤 없다. 죽어라고 기다려서는 언어 소통이 안되서 5분만에 쫓겨나거나 더 기가막힌 것은 무엇이 잘못된 지를 모르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럼 다음 번에 다시 와서 반복을 해야 한다. 제대로 설명을 해주는 경우가 많지 않고 모든 것이 생소한 외국인들에게는 당연히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하루에도 몇 백 명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은 이해를 하지만 문제는 나라별로 차별이 된다는 것이다. 힘이 없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MI DISPIACE 즉, 유감입니다" 라는 말인데 하나도 유감인 표정이 아니다. 하지만 하얗고 영어하는 사람과 돈많은 일본인에 대해서는 조금은 다르다.


유일하게 체류 허가증을 받아야 하는 양키는 미국인데 (EU국가 즉, 유럽 공동체는 체류 허가증이 필요없다) 사실 말이 체류 허가증이지 현실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미국은 체류 허가증 우선 발급 대상이며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없이 알아서 경찰측에서 알아서 접수해주고 언제 와서 받아가라는 날짜까지 접수증에 적어준다. 그리고 일괄적으로 접수증을 수거해 가서는 체류 허가증 원본을 일일이 나누어주는 수고까지 해준다. 고작해야 2주~4주 안짝이다. 우리는 꿈도 못 꾸며 접수증만 줘도 감지덕지다.  9달 정도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며 오히려 주기만 하면 감사하다. 


일본의 경우 조금 다른데 인종적 차별 관점에서 조금은 터부시하고 있지만 그래도 돈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은 수월하게 받는다. 체류 허가증을 대신 해주는 대외 기관도 있으며 그 밖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구제해주는 제도도 잘 되었다. 그렇게 되도록 하지도 않지만.









  "나, 흑인이지만 돈 많은
   미국인이란 말이지!"


그 외를 제외하고는 정말 눈물겹다. 새벽 5시부터 경찰서 밖에 줄을 서서 경찰 아저씨들의 구박을 감내해야 한다. 더욱 슬픈 것은 그런 것들에 대해 익숙해져 버린 그들의 모습이다. 체류 허가증을 받기 위해 줄을 서다보면 정말 그 나라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알 수가 있다. 특히 흑인들에 대한 터부가 가장 심한테 흑인이라는 이유로 밀어냈다가 미국인이라는 걸 알고 다시 우선적으로 경찰서 안으로 들여보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오래 기다려서 접수 창구에 도달해서는 뭐가 잘못되었는 지도 제대로 이해도 못한 채 5분만에 쫓겨나는 일도 허다하다.


이곳에 오래 산 한 주민의 말을 빌면 그래도 지금은 양반이란다. 그 전에는 정말 경찰 아저씨들이 몽둥이 들고 줄 서라고 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도 학생들의 경우는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조금 수월하지만 1년마다 갱신을 해야하고 그때마다 줄을 서야하고 줄 서라고 막 대하는 경찰 아저씨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며 실제로 체류 허가증 스트레스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인원도 만만치가 않다.


밀라노의 경우 우리나라 각 동처럼 구역으로 나뉘어서 각 구역별로 체류 허가증 접수와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데 발급은 QUESTURA 에서 일괄적으로 이루어져서 각 구역으로 재배급이 된다. 어느 동네에 사는냐는 즉각 체류 허가증을 받느냐 마느냐와 직결되므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좋은 동네 즉 잘 내주는 동네의 주소를 훔치는 것은 필수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다른 소도시에서는 그다지 체류 허가증에 대해 규제가 심한 편은 아니나 밀라노는 최근 2년 동안 많은 외국인들을 돌려 보내고 있다. 이른바 물갈이 정책. 특히 학생들에 대해 도시를 바꾸거나 전공을 바꾸는 경우에 대해 체류 허가증 발급을 제한하고 있는데 사실 많은 학생들이 전공학교를 진학하기 전에 페류지아나 시에나에 있는 대학에서 언어를 전공하고 밀라노에 있는 전공학교(성악, 패션등)를 진학하고자 할 때 도시를 바꾸거나 전공을 바꾸었다는 이유로 체류허가증 발급을 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모르고 온 학생들이 아연실색하는 것은 당연. 그들은 체류 허가증을 내주기 위해 새로운 비자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 도시를 바꾸거나 전공을 바꾸었다고 해서 새로운 비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주한 이태리 영사관에서 발급을 하고있는 비자에 유학 목적이 STUDY로 되어 있으므로 이태리에서 공부만 해 주면 된다. 비자가 이태리 대사관에서 발급된 비자에 대해서 도시나 전공을 바꾸었다고 해서 새 비자를 요구하는 것은 그래도 너 올래? 인데 주한 이태리 영사관 측에서도 불필요한 새 비자를 발급하느라 골치가 아프다. 어차피 다시 받더라도 비자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단순히 물갈이와 불편을 주기 위한 정책이다.









"누가 오랬냐고..."   


주이 한국 영사관에서는 1년에 두 번 이태리 북부 순회 영사 업무를 하고 있다. 주이 한인들의 편의를 위한 것인데 이번 하반기 순회 영사에 QUESTURA 외국인 PART의 책임자와 우리나라 영사측과 회담이 있었다. 주요 요건 중 하나는 체류 허가증 발급에 대한 것이었는데  우리측의 설명은 이태리 한국 거주민들이 어떤 이득을 주고 있으며 따라서 반복되고 있는 체류 허가증 발급의 지연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으나 그들의 대답은 "누가 오랬어?" 였다. 싫으면 가라는 거다.


필자는 5달만에 체류 허가증 신청에 성공했고 9달을 기다려 체류 허가증을 받았다. 당시 거의 모든 학생들이 새 비자를 받기 위해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보면 거의 신화적이다.


이는 단순히 한국에 대한 사항은 아니며 미국과 일본은 제외한 외국에 대해서는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다른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더하다.


자 그럼 체류 허가증을 받기 위한 비밀을 공개한다.  필요한 사람은 적어도 좋다.






 어느 경찰서가 좀 더 잘 내주는지 사전 조사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적은 동네, 부자 동네)


 여자보다는 남자가 있는 창구로 간다.
     (이태리 여자들 무섭다)


 최대한 예쁘게 하고 간다. 혹은 부티를 낸다


 경찰서에 친구의 친구. 조금이라도 똥물이 튀어 있으면 OK


 이도 저도 안되면 운다.


 당연히 요구 서류들은 준비를 해야 한다.


 그날 운에 따른다. 


몰려오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불법 체류자들의 싼 임금으로 인해 정작 이태리인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들로써는 큰 사회적 문제이다.


돈이 국력인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싶어 온 학생들에게 늘 흔히들 하는 민간 외교라는 것을 생각해야 될 필요가 있다. 많은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쇼핑에 열을 올리고 이곳에서 살기 위해 변변히 하는 일도 없이 체류를 하는 경우가 사실 많다. 그런 것들이 모두 부정적으로 작용을 하는 것은 당연하며 일본인보다는 한국인이 당하는 불이익이 더 많은 상황에서 남들보다 배로 잘나지 않으면 보통 취급도 받지 못하게 된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이곳에서 불합리한 경우를 당했을 때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배짱과 적당히 흘릴 수 있는 요령을 가지는 것은 필수적이다.




딴지 외교부 이태리지부 행정서기
뿔치 (pulci_toc@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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