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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얀 성』

 

책표지.PNG

출처-<민음사>

 

 

아시아와 유럽이 마주 보고 있는 곳, 이스탄불

 

“눈먼 자들의 땅 반대편에 도시를 세우라.”

 

델포이 신탁에 따라 ‘비잔티움’이 건설됐다. 이곳은 가히 지구의 작품이란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천혜의 지형이었다. 

 

바다 지형 지도.PNG

 

보르푸르스 해협.PNG

 

이 도시를 중심으로 세 개의 바다와 두 개의 거대한 인류 문명이 만난다. 흑해의 바닷물은 이곳을 통해 호수가 아닌 바다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한 흑해의 바닷물은 마르마라해와 합수하여 다르다넬스 해협을 지나 지중해가 된다. 

 

그리고 가장 폭이 좁은 곳은 700m로,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이 마주 보고 있다. 여명의 시간에 아시아에서 떠오른 빛나는 태양이 도시를 둘러싼 만을 비추면 바다는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빛나는 ‘골든혼’이 우아하게 감싸고 있는 도시 비잔티움, 이곳에서 인류 세계사의 교집합이 만들어졌다.

 

골든혼.PNG

빨간색 점선으로 표시된 바다 지역이 ‘골든혼’이다.

 

타락과 혼란 속에 흔들리는 로마 제국의 새 출발을 위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새로운 로마의 수도로 이곳을 지목했다. 황제는 이곳을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폴리스’라 이름 붙였고, 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는 ‘아야 소피아’를 세워 인간들이 이 성당에서 신과 교감하도록 했다. 

 

아야 소피아.jpg

 

동서양의 모든 교역이 이 도시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은 곧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세계 최고의 부자 도시임을 뜻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돈과 축복을 받은 지형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동로마제국이 1000년 역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줬다.

 

로마제국.PNG

서기 395년,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할되었을 때의 영토

빨간색이 서로마, 보라색이 동로마 제국

 

멸망직전 비잔티움 제국.jpg

멸망 직전인 1450년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영토 

 

비잔티움 제국이라고도 하는 동로마 제국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에 의해 멸망했다. 1453년 정복왕 메흐메트 2세에 의해 함락된 것이다. 함락된 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이름은 바뀌었다. 그 이름 ‘이스탄불’. 도시는 또다시 제국의 심장이 되었다. 

 

지중해를 지배하지 못하면 진정한 세계 제국이 될 수 없는 시대였다.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하던 투르크 기병들은 말에서 내려 배를 타고 지중해로 진출했다. 그리고 ‘베네치아’, ‘스페인’, ‘교황’ 등의 유럽 세력과 치열한 지중해 공방전을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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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의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

 

‘나’는 배를 타고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오스만 함대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배의 선장은 말뚝에 박혀 죽었고, 노 젓는 노예들을 채찍질하던 뱃사람들은 코와 귀를 잘린 후 뗏목에 실려 바다에 버려졌다. 죽지 않은 다른 모든 이들은 포로가 되었다.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순간이었다.

 

 

오스만 제국으로 끌려오다 

 

포로가 된 나의 첫 번째 목표는 노 젓는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노 젓는 노예가 된다는 것은 채찍에 맞다가 축축한 갤리선 속에서 시체가 된다는 것을 뜻했다. 나는 감옥에서 의사가 되어 보초 등을 치료해 주었다. 내가 베네치아에서 공부한 천문학 등의 과학 지식이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노 젓는 노예의 신세를 면했고, 이스탄불에 있는 ‘사득’ 파샤(오스만의 장군, 고관)의 감옥에 수용되었다. 이것이 파샤와 나의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파샤의 기침병을 낫게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파샤가 나를 불렀다. 나는 하인이 안내해 준 방에서 파샤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 방의 또 다른 문이 열렸고, 그가 들어왔다. 순간 나는 이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대여섯 살 많아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으며, 갑자기 두려워졌다.

 

방으로 들어온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와 닮아 있었다. 이것이 내 두려움의 이유였다. 그는 나와 얼굴만 닮은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나처럼 천문학과 공학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호자(지식인을 높여 부르는 말)’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호자의 노예가 되다

 

파샤는 앞으로 있을 결혼식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볼거리인 불꽃놀이를 준비한다고 했다. 호자는 예전 파디샤(오스만의 군주)의 탄생일에 몰타 출신의 폭죽 기술자를 도운 적이 있다고 했다. 파샤가 나를 부른 이유는 호자를 도와 최고의 불꽃놀이를 치르라는 것이었다. 호자와 내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화약들이 폭죽놀이의 대성공을 가져왔다. 이스탄불 전체가 흥분에 빠질 정도였다. 내가 베네치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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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펑! 펑펑!!

 

불꽃놀이는 대성공했다. 그 이후, 나는 호자의 노예가 되었다. 사연은 이랬다. 불꽃놀이의 성공으로, 파샤는 기뻐하며 나에게 무슬림으로 개종을 한다면 즉시 자유인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화가 난 파샤는 부하들을 시켜 내 머리를 나무 그루터기에 올려놓도록 했다. 한 명이 도끼를 들고 섰다. 

 

나무 사이로 수염 긴 내가 발을 땅에 대지도 않고 걸어가는 환상을 보았다. 환상에 시달리며 목덜미와 등이 서늘해졌다. 이 낯선 곳에서 이렇게 죽는다는 것은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저 영원한 수면에 드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끝까지 파샤의 요구를 거절했다.

 

파샤는 결국 내 목을 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누군가와 한 약속 때문에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호자였다. 결국 나를 살린 것은 호자와 파샤의 약속이었다. 파샤는 이제부터 나는 호자의 노예이며, 나에 관한 모든 권한은 호자에게 있다고 말하고는 방을 나갔다. 그때 알았다. 내가 좀 전에 본 것은 환상이 아니라 호자의 모습이었음을.

 

이상한 운명이 나를 노예로 만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이곳 이스탄불에서 기독교인이자 베네치아인인 나를 나와 똑같이 생긴 무슬림이자 오스만인인 호자의 노예로 살아가게 했다. 

 

처음부터 결정된 인생은 없다는 것을, 모든 이야기는 실상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우연히 경험했던 것들이 사실은 필연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나와 호자, 서로가 되어가는 우리

 

호자는 이제 ‘가르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연구해야 하며, 함께 찾아야 하며, 함께 걸어가야 했다.

 

우리는 사이 좋은 형제처럼 함께 공부하고, 함께 연구했다. 플랑드르에서 렌즈를 들여와 만든 망원경, 관측기구, 자를 갖고 하늘의 달과 별을 연구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해류 발생 원인을 밝히기 위해,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바람 속에서 해류의 흐름을 같이 바라보기도 했다. 우리는 점점 더 똑같아졌다.

 

나는 더 이상 베네치아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호자의 모습을 보며, 그는 호자가 아니고 나 자신이며, 따라서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이제 이스탄불 거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 투명인간이며, 그들 사이를, 정원에 있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밤나무, 박태기나무 사이를 유령처럼 지나가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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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 거리를 묘사한 그림

 

 

자신을 탐구하며, 서로 더 깊이 알게 되다

 

파샤의 주선으로 호자는 사춘기에 들어선 어린 파디샤(여러 이슬람 국가에서 황제를 의미하는 칭호)를 만났다. 파디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이 키우는 동물들이었다. 파디샤는 자신이 아끼는 사자가 새끼를 몇 마리 낳을 것인가를 호자에게 물었다. 호자는 암수의 숫자가 같을 것이라 대답했다. 실제로 파디샤의 사자는 암수 한 마리씩 새끼를 낳았다. 그리고 파디샤는 호자가 만들어 준 동물에 관한 책을 마음에 들어 했다. 호자는 천체 연구를 위한 파디샤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황제의 환심을 사게 된 것을 기뻐했다. 호자는 파디샤를 손에 쥐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바보들이 별에게 무관심하듯, 별들도 바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호자는 패배했다. 사람들은 지구와 별이 어떻게 도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이해할 필요가 있는 파디샤는 사춘기가 끝나고 있었다. 

 

그 후 우리는 최악의 삼 년을 보내야 했다. 매일 매일이, 매달 매달이, 매 계절이 지겹고도 견디기 힘든 반복의 연속이었다. 나 역시 이 지겨운 상황 속에서 그를 향한 분노와 혐오감을 잃지 않고 있었다. 지루함과 공허함이 반복되던 어느 날 호자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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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오스만 제국의 꿈> 中

 

“왜 나는 나일까?”

 

서로가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갖고 있기에 호자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무덤덤하게 거울을 보라고 했다. 호자는 화를 냈다. 화를 내는 호자에게 나는 자신이 누구인지는 자신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며, 호자에게는 그 용기가 없는 것이라 말했다. 호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곧 호자는 나에게 나의 용기를 증명하라고 했다. 이제 나도 내가 왜 나인지를,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야 했다.

 

우리 둘은 함께 책상에 앉아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하는 글을 썼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호자와 나의 글은 서로의 거울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어린 시절에 대해 썼고, 기억하기 싫은 것들을 기억해 냈으며, 아픈 가족사를 떠올려야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두 달 만에 지난 십일 년 동안 알지 못했던 그의 인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제 호자와 나는 가슴 아픈 과거까지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사악한 면까지 글로 써 교환했다. 우리는 서로를 혐오하며 서로를 닮아 갔다. 호자는 나에게서 배웠고, 그가 배운 만큼을 나는 호자에게서 배웠다.  

 

 

이스탄불을 덮친 흑사병

 

흑사병은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호자가 말했던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나는 도저히 배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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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탐구이자 서로에 대한 탐구는 흑사병이 이스탄불에 퍼졌다는 소식과 함께 끝나버렸다. 자연히 내가 예상했던 탐구의 결말, 나를 풀어주도록 요구하려는 계획도 같이 끝나버렸다. 흑사병이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 나는 두려웠다. 호자는 나에게 내가 기독교인이라 두려운 것이라며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두려움을 버릴 수 없었다.

 

호자의 용기도 끝났다. 어느 날 호자가 나를 불렀다. 호자는 웃통을 벗은 채 거울 앞에 서 있었다. 호자의 몸에는 부어오른 종기들이 있었다. 흑사병 임파선종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두려웠다. 나에게 두려움을 버리라던 호자가 고백했다. 자신도 두렵다고 했다. 자기 역시 처음부터 흑사병이 두려웠으나 나를 시험하기 위해 그렇지 않은 척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자기는 파샤가 나를 처형하려고 할 때부터 두려웠으며 사람들이 우리 둘을 닮았다고 할 때도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내 영혼을 빼앗았다고 말했다. 

 

“난 너처럼 되었어. 이제 네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아. 나는 네가 되었어!”

 

호자의 종기는 흑사병이 아니었다. 파디샤가 호자를 불렀다. 호자는 궁으로 갔다. 호자를 신뢰하는 파디샤는 그에게 흑사병이 언제 물러날지를 물었다. 그리고 나는 흑사병이 만연한 도시 속으로 갔다. 파디샤가 물은 것을 예측하기 위한 통계자료를 만들기 위해 하루 사망자 수를 조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각 마을을 돌며 하루하루 쏟아져 나오는 관짝 수를 헤아렸다.

 

우리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우리는 이스탄불 지도를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흑사병이 어디에서 돌고 있는지를 표시했다. 흑사병은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더 빠르게 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흑사병은 도시에서 목적 없이 떠도는 부랑자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호자는 대책을 묻는 파디샤에게 무력을 써서라도 시장과 도시의 왕래를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황실 점성술사같이 파디샤 주변의 잘난 사람들은 이 의견을 격하게 반대했다.

 

파디샤는 우리의 의견, 즉 호자의 말을 선택했다. 파디샤는 고양이 오백 마리를 데려올 것과 호자가 도시 통제를 위해 원하는 만큼의 사람을 동원해 주라고 명령했다. 예니체리(오스만 최정예 근위대) 아아(사령관)에게 이스탄불에 통행 금지령을 내릴 것도 명령했다.

 

이 주가 지날 무렵, 도시는 흑사병보다는 도시에 내려진 예방책 때문에 숨막혀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은 버려진 끔찍한 도시처럼 변해갔다.

 

황실 점성술사를 비롯한 반대파들의 공세가 더욱 격렬해졌다. 그러나 나는 사망자 수가 줄어드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가 있었다. 내 지도 위의 통계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아무도 흑사병에 대한 예방책을 해제하라고 말하지 못했다. 파디샤는 호자에게 최고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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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이 물러난 후 호자는 황실 점성술사,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 더 높은 위치가 되었다. 그리고 흑사병은 나와 호자가 기묘한 형제애를 나누게도 해 주었다. 내가 노예가 된 세월도 십오 년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원정에서 인생을 교환하다

 

파디샤의 지시에 따라 나도 호자와 함께 궁에 들어갔다. 파디샤는 신기해했다. 그는 호자가 어느 정도 호자이고 어느 정도가 나인지, 나는 어느 정도가 나이고 어느 정도가 호자인지 호기심을 보였다. 이제 파디샤는 호자를 대하듯 나를 대했고 나를 대하듯 호자를 대했다. 파디샤는 호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소중히 대했다. 

 

우리는 천문대와 과학원 설립을 위해 파디샤가 더욱 우리를 신뢰하게 만들어야 했다. 파디샤의 지원이 없으면 그것들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호자는 파디샤에게 가공할 무기를 제작할 수 있다고 말했고, 파디샤는 거금이 들어갈 무기 제작 사업을 승인했다.

 

“세금을 거두어 가려면 이곳에 와서 칼로 받아 가라.”

 

지난해의 패배와 그에 따른 막중한 세금을 인정할 수 없었던 폴란드인들의 통보였다. 분노한 파디샤는 원정을 결정했다. 그리고 호자에게 그 가공할 무기를 갖고 참가하라고 명령했다. 호자와 나는 우리가 제작한 거대한 강철 솥처럼 생긴 무기를 끌고 파디샤의 원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파샤들은 우리의 무기를 불길하게 쳐다보았고, 우리가 사기를 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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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은 순조로웠으나 폴란드 땅에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지독한 비가 내렸고 길은 진흙탕이 되었다. 우리의 강철 무기는 진흙탕에 빠져 움직이지 못했다. 호자는 아픈 몸으로 안간힘을 썼다. 파디샤에게서 마흔 마리의 말을 받아와 쇠사슬을 걸어 간신히 그 거대한 쇳덩어리를 움직이게 했다. 우리 때문에 원정 행군의 속도가 떨어졌고, 파샤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 무기가 무용지물이 된다면 우리 중 하나는 목을 내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돕피오 성(城)’이 원정 행렬을 막아섰다. 돕피오 성에는 폴란드인 외에도 오스트리아인과 헝가리인 그리고 카자흐인들까지 모여 있었다. 파디샤는 분노했다. 그는 성 공격의 책임자인 ‘사르 휘세인’ 파샤를 처벌하려고까지 했다. 결국 파디샤는 호자에게 무기를 동원하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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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깃발이 걸린 탑에 지는 해의 희미한 붉은빛이 반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성은 하얀색이었다. 새하얗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우리의 무기가 그 비탈길을 오를 수 없음을 깨달았다. 파디샤의 병사들과 포병의 엄호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얀 성은 함락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몇 년 동안 우연히 경험했던 많은 것들이 필연이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공격을 개시했을 때 우리의 무기는 늪에 빠질 것이고, 군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들 앞에 내 잘린 모가지를 던져줄 것이다. 

 

파디샤의 천막을 다녀온 호자는 마치 여행을 떠나기 전에 흥분한 것처럼 서두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밖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다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이제 진짜로 호자가 내가 되는 것이고 내가 호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침착하게, 말없이 서로의 옷을 바꿔 입었다. 그에게 나의 반지와 몇 년 동안 그에게서 감추어 왔던 메달을 건네주었다. 메달 안에는 증조 외할머니의 사진과 저절로 하얗게 변해버린 내 약혼녀의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다.

 

 

뒷이야기

 

나는 이스탄불에서 잘 지내고 있다. 황실 점성술사로 있으며 돈도 꽤 모았고 결혼해서 아이들도 넷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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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감이 재앙을 피하게 했다. (호자가 된) 내가 황실 점성술사를 그만두자 곧 파디샤의 비엔나 원정 패배에 분노한 아첨꾼들이 후임 점성술사의 목을 쳤으며 파디샤를 폐위시켰으니 말이다. 

 

물론 ‘나’가 된 호자도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나를 방문했다. 그는 모든 인생을 여행과 여행기를 쓰는 것에 바친 사람이었다. 노인은 자신의 여행이 끝나면 메카와 메디나에 가서 책을 쓸 것이라 말했다. 

 

그가 호자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호자의 다양한 경험은 고상한 귀부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다고 했다. 당시 동양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그가 쓴 책들이 많이 읽혔고, 그는 아카데미에서도 강의를 하며 많은 돈도 벌었다고 했다. 더욱이 그가 쓴 책들을 읽고 흥분한 나의 옛 약혼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내가 된) 그와 결혼했다고도 했다. 그는 내가 옛날에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을 다시 사들여 그곳에 정착했다고 했다.

 

이제 나는 곧 일흔 살이 된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이것으로 내가 경험한, 서로의 삶은 바꾼 두 사람의 이야기는 끝났다.

 

탁자 뒤에는 골풀로 짠 긴 의자가 있었고, 의자 위에는 초록색 창틀과 같은 색의 새털 쿠션들이 놓여 있었다. 곧 일흔 살이 될 나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남들처럼 사는 것, 나만의 다른 인생을 사는 것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기 어린 시절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자기 자신입니다. 

 

“나는 누구이고, 남들과 무엇이 다를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고민은 인간의 본능이자 성장 발달 과정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절은 미국의 시인 에머슨의 말처럼 ‘그 사람이 하루종일 생각하는 것, 그것은 그 자신’인 시기입니다. 그리고 하루의 많은 시간을 거울 앞에서 보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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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겪는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어두운 옷보다는 밝은 옷 위의 얼룩이 눈에 잘 뜨이는 것처럼 남과 다른 인생이 내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나는 나이고, 타인이 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나인 이유는 곧 내가 남이 아닌 이유와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남들의 인생과 다를 것이고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인생이 남들과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서로가 비슷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남들처럼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시간 일을 하고, 예쁜 여자, 멋진 남자를 사귀려고 노력하고, 좋은 집과 차를 가져보려고 노력하는 것 등 모두가 하는 일을 나도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무에 비유하자면, 내 인생이 남들과 다른 부분은 잎이나 가지에 불과한 것이며 큰 줄기가 뿌리에 해당하는 것들은 결국 같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사는 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유럽인이고 기독교인입니다. 그리고 ‘호자’는 아시아인이고 무슬림입니다. ‘나’는 노예이고 ‘호자’는 주인입니다. 서로가 같아지려고 해야 같을 수 없는 그런 환경입니다. 그런데도 둘의 인생은 놀랍도록 같았습니다. 

 

그러니 같은 문화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이 닮은 꼴인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나이기 위해, 내가 나답기 위해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사는 것이 혹시 불가능한 망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예 남들처럼 사는 게 옳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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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는, 아예 우리가 서로 비슷한 인생으로 사는 것을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은 위험하고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나 낯선 산을 등산할 때 무리를 지어 하는 것이 안전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기 위해 삶의 3/4을 빼앗기고 있다.” 

 

-쇼펜하우어- 

 

남들처럼 사는 것, 남과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사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옳은가를 누가 대신 판단해 줄 수 있겠습니까. 자기 인생에 대한 선택을 남에게 맡길 수는 없을 테니 각자가 판단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내 인생’을 버리고 ‘새로운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각자의 판단과 선택입니다.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정의 기준이 ‘자신의 행복’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삶을 살펴보는 성찰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사실 모든 인생은 서로 닮았다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왠지 그 말이 두려웠다.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의 얼굴을 보며 “저는 저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남과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인생은 무엇이며 어떤 인생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인가. 이러한 자기 성찰의 숙제를 떠안으며 24번째 인생 소개를 마무리합니다.

 

 

 

오스만이 비잔티움 제국을 점령한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본지 기사 <찌라시 세계사 8 – 전설의 그리스의 불 VS 우르반 대포(링크)>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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