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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1. 할리우드 출연 썰 함 풀어본다 : 

엑스트라, 출연료와 식사는 어떻게 나올까

 

2. 할리우드는 지옥의 직장이었다 :

뺨 맞는 주디 갈란드와 파업최종병기 로널드 레이건

 

3. 신자유주의 끝판왕 할리우드는 어떻게 각성했나 :

알렉 볼드윈의 과실치사와 열차에 깔려 죽은 스텝

 

4. 마블 영화 출연한 썰 함 풀어본다 :

엑스트라, 천조국은 어디까지 대접해 주나

 

5. 할리우드가 멈추려 한다 :

넷플릭스와 ChatGPT는 업계에 어떤 파도를 일으켰나

 

6. 할리우드가 멈췄다 :

넷플릭스는 어떻게 작가를 없애는가

 

7. 할리우드가 멈춘 이유 :

인간과 AI의 첫 번째 전쟁터가 되다

 

8. 할리우드 탑배우들이 파업하려는 이유 :

이연걸의 매트릭스 거절, 이젠 이해가 간다

 

9. 한국이 미국 파업사를 바꿨다? :

지금, 할리우드가 스트리퍼와 함께하는 이유

 

 

 

“배우 작가 크로스” 파업이 시작되었다.

 

지난 7월 14일 미국 배우조합(SAG-AFTRA)이 파업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배우조합 소속 배우 16만 명이 촬영장을 떠나,  90% 이상의 할리우드 영화 촬영이 ‘올 스탑’됐다.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의 대본을 쓰는 미국작가조합(WGA)은 배우조합보다 빨리 파업하고 있었는데, 지난 5월 1일부터 3달째 파업 중이다. 때문에 배우조합이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도 이미 대본이 집필된 일부 영화, 드라마를 제외한, 대다수 작품이 촬영 중단 상태였다. 이젠 배우들도 파업에 들어가며 대본이 이미 집필된 일부 영화, 드라마도 촬영할 수 없게 되었다. 

 

'배우+작가'의 더블 파업이 현실화함에 따라, 올해 겨울부터 할리우드 영화들은 개봉이 중단될 것이다. (배우와 작가들이 파업하는 이유는 위 네모칸의 8번 기사(링크)를 참조하시라. 기왕이면 5번 기사부터 다 읽는 걸 추천! 재미 보장!)

 

할리우드 배우조합 회원 16만 명이 모든 업무를 중단했고, 이들 상당수는 피켓을 들고 영화사 스튜디오, 본사 앞에서 시위에 돌입했다. 불법 시위로 경제를 파탄시키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윤석열 대통령이 보면 불같이 화를 낼) 파업 주동자들의 얼굴을 한번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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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차스테인 (왼쪽에서 두 번째)

출처-<SAG-AF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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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 My Name”이라고 외치는 월터 화이트 선생

…이 아니고 브라이언 크랜스턴

(브레이킹 배드를 너무 빠져 본 터라)

출처-<Hollywood reporter twitter>

 

“로보트가 우리 일자리를 빼앗도록 놓아둘 수 없다. (디즈니 CEO에게) 우리 배우들은 적절한 임금과 노동권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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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스티브 부세미,

BD 왕(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최종 보스),

크리스찬 슬레이터,

브랜든 프레이저(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브라이언 크랜스턴

출처-<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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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모레츠

출처-<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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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도 결국 노동자다.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갓난 아들을 안고

파업에 참여했다.

출처-<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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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수잔 서랜든

출처-<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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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베이컨

출처-<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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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파렐

출처-<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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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로스트’의 ‘꽈지쭈’로 유명한

한국계 배우 '다니엘 대 김'

출처-<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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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아네트 베닝

출처-<게티 이미지>

 

 

할리우드 더블 파업의 전말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의 ‘더블 파업’은 1960년 로널드 레이건이 이끌던 파업 이래 63년 만이다(관련 기사 링크). 그리고 이 파업은 수백, 수천만 명의 일자리와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이런 파업인 만큼 할리우드의 작가, 배우들도 쉽게 파업을 시작한 건 아니다. 다 각자 쌓여왔던 분노가 터진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이 정도의 ‘더블 파업’까지 일어나게 된 것일까?

 

지난 기사에서 대략적인 상황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지난 기사에선 스트리밍 서비스와 생성형 AI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이번 기사에선 그 이야기를 포함하여 이번 파업을 시작하기까지 각 이해집단 사이에 어떤 사연들이 쌓여왔고, 그들의 속사정은 무엇인지를 전체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그래야 현재 상황이 더 잘 보일 테니까.

 

이전 기사(‘신자유주의 끝판왕 할리우드는 어떻게 각성했나: 알렉 볼드윈의 과실치사와 열차에 깔려 죽은 스텝’ - 링크)에서도 말했듯 미국 영화/드라마 업계는 배우, 작가, 감독, 스태프 노조가 따로 결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노조는 각각 사용자인 AMPTP(영화사들의 연합체)와 3년마다 노동 계약을 갱신한다. 

 

 

2020년 3월, 3년 전 협상 때 있었던 일

 

영화업계 노조는 원래 2020년 노사 협상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려 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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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Wikimedia commons>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터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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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씨네21>

 

코로나19로 1년여간 모든 영화 촬영이 올스톱되면서, 영화사와 극장가는 “우리 다 망했다. 다 죽겠다”를 외쳐댔다. 실제로 극장가가 파리를 날렸다. 

 

배우, 작가조합도 ‘고통 분담’ 차원에서 별다른 임금인상 없이 계약을 갱신해 줬다. 사실 배우와 스태프들도 영화 촬영이 몽땅 중단되면서 ‘실업자’나 다름없게 되었고, 미국 정부에서 보내주는 경기부양 자금과 실업수당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다들 허리띠 졸라매는 와중에서도 잘나가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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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BC코리아>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극장에 안 가고 집에 머무르면서,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홀로 ‘대박’난 것이다. 작가와 배우들이 넷플릭스에 이를 ‘바드득’ 가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2023년 3월, 다시 돌아온 계약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다음 계약 갱신 기간인 2023년이 다가왔다. 할리우드 업계 각자 서로의 셈법이 달라졌다. 

 

영화사와 극장가는 잇달아 블럭버스터 영화를 내놓으면서 그동안 손해 본 것을 벌충하려 들었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은 ‘HBO Max’ ‘디즈니 플러스’ ‘훌루’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잇달아 출시했으나, 넷플릭스의 아성을 뚫기는 어려웠다. 결국 영화사와 극장가는 ‘미워도 블럭버스터’를 외치며 그동안 못 찍은 영화 극장 개봉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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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맞서 등장한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현재 미국에서 ‘폭망’하는 분위기다.

 

작가와 배우조합도 3년 동안 ‘고통 분담’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겠다고 칼을 갈았다. 특히 작가, 배우들은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로부터 제대로 된 재방료를 받아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작가조합(WGA)과 감독조합(DGA)은 2023년 5월, 배우조합(SAG)는 2023년 6월 말이 계약기간 만료였다. 따라서 각자 업계는 노사 협약 갱신을 위해 부지런히 협상 전략을 짜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게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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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4일, OpenAI의 최신 언어모델인 GPT-4가 출시된 것이다. ChatGPT의 엄청난 성능에 힘입어 구글 Bard, MS bing 등 생성형 AI가 잇달아 등장하며, 무서운 속도로 일상생활에 유입됐다. 당장 ‘글쓰기’로 먹고사는 작가들에게 비상이 걸렸고, 작가조합은 최저임금 인상과 스트리밍 재방료 조건 이외에도, ‘생성형 AI 사용 기준 마련’을 노사 협상 조건으로 제시했다(관련 기사 링크).

 

 

2023년 5월 1일, 작가조합 파업 시작

 

그러나 영화사 측은 “AI, 그런 거 잘 모르겠고 앞으로 계속 협상하자.”며 미적거렸고, 결국 4월 30일 협상은 결렬됐다. 협상이 끝내 결렬된 다음 날인 2023년 5월 1일부터 작가조합은 펜을 놓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2008년 이래 15년 만에 할리우드 작가들이 전면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관련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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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Wikimedia commons> 

 

작가 파업의 결과 5월부터 할리우드 영화 상당수가 제작을 중단했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와 CG가 있어도 대본이 없으면 영화를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든 영화가 ‘올스탑’ 된 것은 아니었다. 이전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사 측은 인기 없는 드라마는 빨리 종영시키고, 제작 중인 영화는 이미 시나리오 집필이 끝난 작품을 중심으로 일정을 앞당기며 파업의 영향을 최소화하려 했다. 시나리오 집필이 끝난 작품은 감독과 배우들을 동원하여 계속 촬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감독과 배우조합은 파업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2023년 6월, 감독조합의 배신과 배우조합

 

작가조합(WGA)은 감독조합(DGA)과 배우조합(SAG-AFTRA)이 자기네들과 함께 동반 파업하기를 원했다. 할리우드 역사에 유례없는 더블... 아니 ‘트리플 파업’이 성사되면, 할리우드 전체가 ‘올스탑’되면서 영화사 측에서 협상에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영화사 측은 5월 이후로 작가조합과 만나지도 않고,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않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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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감독조합 로고

 

그러나 영화사 측이 한발 빨랐다. 2023년 6월 3일 영화사 측이 감독조합과 전격적으로 노사 협약에 합의한 것이다. 협상 내용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연간 감독료 인상 및 AI에 대한 지분 인상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조합은 그동안 “업계 관계자 모두가 공정한 계약을 해야 한다”며 감독조합을 지원사격해왔다. 그러나 영화사 측이 발 빠르게 ‘디바이드 앤 룰’(분할하여 통치하라) 전략을 쓴 데다가, 결국 감독조합이 ‘배신’하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작가조합에게는 아직 ‘우리 편’이 있었다. 

 

6월 30일로 노사협약이 만료되는 배우조합. 그들은 스트리밍 서비스 재방료 및 AI 규제 등의 문제에 있어 작가조합과 이해관계가 상당수 일치하고 있었다. 배우조합 노조위원장 프랜 드래셔도 “작가조합과 함께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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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 드래셔

 

60년 만의 ‘더블 파업’을 성사시킨 배우 노조위원장 프랜 드래셔는 19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 ‘더 내니’(The Nanny)로 유명한 배우다. 한국 케이블 TV에서는 ‘못말리는 유모’라는 제목으로 방송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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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찬반투표 찬성 결과를 알리는 배우조합 이미지

출처-<SAG-AFTRA>

 

당시 배우조합은 영화사 측과 협상이 계속 결렬되면서, 노조원 파업찬반투표를 실시했고, 만장일치에 가까운 98% 찬성표가 나와, 파업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 상황이었다. 대다수 배우들은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와 AI 때문에 배우 생활이 불가능한 위기 상황이라는 절실한 처지였던 것이다.

 

 

2023년 6월 말, 배우조합 지도부의 병크에 반발한 큰언니들

 

배우조합과 영화사 측의 노사협약 만료일인 6월 30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배우들은 7월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6월 말에 심상찮은 분위기가 나왔다. 

 

노조위원장인 드레셔가 영화사와의 계약에 대해 “대단히 생산적인 협상(extremely productive negotiations)”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배우와 작가들은 드레셔 위원장이 노사 협상을 타결할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즉시, 할리우드의 큰언니들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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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메릴 스트립, 제니퍼 로렌스, 글렌 클로즈

출처-<Wikimedia commons> 

 

메릴 스트립, 글렌 클로즈, 제니퍼 로렌스 등 배우 3,000명은 다음과 같은 연판장을 돌렸다.

 

“파업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줍니다. 누구도 파업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야 한다면 파업할 것입니다... 인공지능(AI)에 대해 특히 강조합니다. 배우조합은 바로 앞 3년만 내다보고 협상하지 마십시오. 만약 AI를 이용해 영화를 촬영한다면 배우들은 그만큼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메릴 스트립을 비롯한 원로 배우 3,000명의 연판장은 노조위원장 드레셔에 대한 사실상의 불신임으로 받아들여졌다. 오는 2023년 9월 노조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연임 의사를 밝힌 드레셔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양측의 주장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미션 임파서블’ 한 상황, 이때 해결사를 자처하며 날아온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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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 ‘톰 크루즈’

 

두둥!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코로나19로 죽어버린 극장가를 지난해 ‘탑건-매버릭’으로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듣는 톰 크루즈는 이번에도 파업을 막기 위한 ‘미션’에 나섰다. 배우와 제작자 양쪽 편을 모두 든 것이다.

 

LA타임스에 따르면, 톰 크루즈는 6월 말 배우조합와 영화사의 협상 막바지에 온라인 회의 Zoom으로 합류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정확한 발언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톰 크루즈는 먼저 AI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취지로 밝혔다.

 

“인간이 만든 결과물(human-created work)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 AI 도입 이전에 촬영된 배우들의 연기, 목소리, 외모 등을 이용하거나, 배우들의 “디지털 레플리카(복제품)”를 만들 경우 해당 배우들의 동의 및 대가 지불이 있어야 한다.”

 

‘미션 임파서블’에서 위험한 스턴트를 직접 해 온 톰 크루즈다운 주장이었다. 그는 스턴트맨에 대해서도 처우를 개선해 줄 것을 영화사에 요구했다.

 

“일반 배우들뿐만 아니라 스턴트 배우들도 케이블 및 스트리밍 서비스에 따른 재방료를 받게 해달라. 또한 세트에서 장시간 근무하는 스턴트 코디네이터들에게도 초과근무 수당 및 휴일을 보장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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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미션 임파서블4 고스트 프로토콜>

 

이렇게 목숨 걸고 스턴트를 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만큼 믿음이 간다. 

 

그러나 톰 크루즈는 배우조합에도 다음과 같은 요청을 했다.

 

“설령 파업을 하더라도 배우들의 영화 홍보 활동은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극장가가 이제 살아나려는 추세다. 배우들이 영화를 홍보하고 매출이 늘어나면, 배우들 몫으로 돌아갈 돈이 더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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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크루즈가 이렇게 요구한 이유는 배우들이 파업할 경우, 영화 촬영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온라인 홍보 등 모든 활동이 중단되기 때문이었다. 7월 12일 ‘미션 임파서블-데드 레코닝’의 개봉을 앞둔 톰 크루즈로서는 영화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톰 크루즈의 중재는 이뤄지지 못했다. 영화사 측은 톰 크루즈의 AI 관련 요청을 거절했고, 배우조합은 영화홍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비’ 내한을 살린 톰 크루즈?

 

톰 크루즈의 중재가 이뤄지진 못했어도, 뭔가 영향을 미친 건 있다. 배우노조와 영화사 측은 협상 마지막 날인 6월 30일 한 가지에 합의한 것이다. 협상 시한을 7월 12일까지 12일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불과 12일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할리우드 영화계에 있어서는 큰 의미가 있었다. 

 

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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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나온 할리우드의 야심작 ‘오펜하이머’와 ‘바비’가 7월 21일 개봉하기 때문이다. 

 

만약 배우조합이 7월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가서 배우들의 홍보 활동을 중단할 경우, 이들 영화의 흥행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영화사 측과 배우들 모두 최소한 ‘이 영화가 망하면 코로나19로 한 번 죽은 극장가는 두 번 죽는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결국 양측은 ‘최소한 극장은 살려야 한다’는 취지로 협상 연장에 합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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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배우조합이 7월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면, ‘바비’ 출연진 마고 로비의 7월 2일 내한 홍보 행사도 무산됐을 가능성이 컸다. 톰 크루즈가 결정적으로 성사시킨 건 아닐 수 있어도, 그가 처음으로 이 안건을 공론화하며 협상하려 했던 노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부분은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다. 결국 그의 노력이 한국 영화 팬들에게도 이득이 된 셈이다.

 

 

7월 11일, 영화사의 속셈과 노조 위원장의 두 번째 병크

 

6월 17일을 시작으로 배우조합은 영화사 측과 계속 요구조건을 주고받으며 협상했다. 협상 시한은 7월 12일까지 연장됐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바비’와 ‘오펜하이머’, ‘미션 임파서블’은 엄청나게 홍보해 대는데, 영화사 측은 협상에 여전히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협상이 연장된 후 양측은 7월 1일, 3일, 6일, 9일, 12일 만나 협상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은 없었다. 이 상황에서 배우조합의 분위기는 무척 나빠졌다.

 

“협상을 연장한 이유가, ‘바비’, ‘오펜하이머’ 홍보를 위한 시간을 벌려는 것인가? 영화사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이용하겠다는 건가?”

 

이 상황에서 폭탄이 터진다. 미국언론 Deadline이 영화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한 것이다.

 

“노조원들이 아파트에서 월세를 못 내고 집에서 쫓겨날 때까지 이 상황(파업)을 계속 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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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할리우드 영화사의 최종 목표는

가을에 협상을 재개하기 전에

작가들이 파산하게 하는 것이다.

출처-<Deadline> 링크

 

영화사의 이러한 발언은 작가, 배우 노조와 협상할 뜻이 전혀 없음을 나타낸 것이었다. 배우, 작가들은 분노했다. 

 

영화 ‘헬보이’의 상남자 론 펄만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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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펄만

출처-<SAG-AFTRA>

 

“잘 들어라. **야. 집을 잃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잃을 수도 있고, 업보(karma) 때문에 잃을 수도 있다. 만약 그따위 XX를 말한 **가 누군지, 어디 사는지 나는 알고 있어. 아무것도 안 하면서 1년에 2,700만 달러를 버는 인간이, 우리 식구들이 굶어 죽으라고 기도하고 다닌다고? 조심해라. **야. 진짜 조심해라.”

 

론 펄만의 흥분한 발언은 도를 넘기는 했지만, 할리우드 배우, 작가들의 심정을 매우 적절히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나중에 자기가 흥분했다고 하면서도 또 걸쭉한 발언을 쏟아냈다.

 

“우리 최소한 인간다움은 유지하자? Ok. 네가 갖고 있는 **한 포르셰와 주식이 전부는 아냐. 인간은 모두 최소한의 존엄성이 있다. 우리 서로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고. 우리 배우들과 작가들은 온갖 경험을 살려 창조를 한다. 그런데 너희들은 이 나라의 모든 아름다운 것이 가격표를 매겨놓아 결국은 망쳐놓고 있어.”

 

그런데, 여기서 노조 지도부의 ‘병크’가 또 벌어지고 만다.

 

협상 시한을 앞둔 7월 10일, 노조위원장 프랜 드레셔가 이탈리아로 여행을 간 것이다. 그것도 ‘돌체 앤 가바나’의 홍보대사가 되어 킴 카다시안과 웃으면서 사진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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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프랜 드래셔’

출처-<킴 카다시안 인스타그램>

 

무명 배우들은 허리띠 졸라맬 각오를 하고 파업을 준비하는데, 노조위원장은 이탈리아 명품 매장에서 호화 파티를 벌인 것이다. 배우 노조원들은 “지금 노조위원장이 뭐 하자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드레셔는 “예정된 일정이었고, Zoom을 통해 원격으로 계속 협상에 참여했다”고 해명했지만, 분위기는 더욱 나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위원장이 영화사와 노사 협약을 타결해봤자 좋은 소리 못 들을 것이 뻔했다.

 

 

7월 12일 밤 11시 45분, 파업전야

 

협상 시한인 7월 12일 저녁, 배우조합과 영화사 측이 회의실에서 자정까지 협상 결과를 도출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그러자 영화사 측은 “협상 시한을 또다시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영화사 측 변호사가 배우조합 대표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조금 더 이성적으로 행동(be civilized)할 수 없어요? 파업이 시작되면, 영화 제작이 전면 중단되고 업계 전체에 파장이 커집니다.”

 

배우조합 대표단은 분노했다.

 

“띠발! 우리가 비이성적이란 말이냐. 우리는 지금 연방법상 정해진 노동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파업이 오로지 돈 때문에 하는 줄 아냐?”

 

의도한 것인지, 말실수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사 측 변호사는 일단 배우조합에 사과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끝내 협상은 결렬됐고, 배우조합 대의원들은 7월 13일 아침에 파업을 마침내 승인했다. 파업을 승인한 배우조합 대의원들 가운데는 이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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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 누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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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풀 메탈 재킷’의 매튜 모딘.

 

파업이 승인된 다음 날인 7월 14일, 배우조합은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배우조합은 모든 노조원에게 영화 촬영 중지, 영화 홍보 중지, 기타 모든 영화 후반작업을 중단하고 작업장에 출근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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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서울신문>

 

배우조합이 7월 14일 파업에 돌입하자, 영국에서 홍보활동 중이던 영화 ‘오펜하이머’의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다. 배우조합 노조원 소속으로서 파업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야말로 63년 만에 유례없는 할리우드 ‘올 스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기사로 인해, 현재 할리우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더블 파업의 스토리와 의미에 대해 독자분들의 이해가 한층 더 깊어졌길 바라며 이번 기사는 여기서 마치겠다.

 

다음 기사에서는 할리우드 배우들은 정말로 얼마나 버는지(그러고 보니 나도 할리우드 배우니까...!! 내가 응?! 마블 영화에도 출연하고 응!? 마블 영화 출연한 썰 함 풀어본다 : 엑스트라, 천조국은 어디까지 대접해 주나-링크), 그리고 파업에 나선 배우들과 작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한 번 들어보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