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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18.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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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5. 과학은 무엇을...있을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6. 무신론자를 위한 레퀴엠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7. 위기의 시대, 과학의 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8. 단편 소설 <30초>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9. 단편 소설 <30초>, 썰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0. 영구기관/무한동력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1. 인류의 과학...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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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하늘 끝 별 하나, 바람 한 점을 허투루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로 한 인간의 전 우주적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저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같은 것을 경험하고 감동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글을 쓴 분은 대체 무슨 감동적인 일이 있었길래 이런 절절한 말을 전하고 있는 걸까. 위대한 종교인의 영혼을 뒤흔드는 설교를 들은 거냐, 아니면 사회를 번영과 충만으로 이끌 리더의 원대한 비전을 접한 거냐. 마, 그런 분들이 계시면 좋겠지만 걍 우원이 하는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의 애청자분이 홈페이지에 남기신 글이다. 


자랑하는 거냐고? 


그런 맘도 전혀 없는 건 아니겠다만, 그보다는 오늘의 주제를 실감 나게 전달하기 위해서 함 인용해 봤다. 과학에 대한 약간의 이해만으로도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바뀐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라는 사람 자체가 바뀌기도 한다는 점을. 


단지 합리적인 면들뿐 아니라 감성적인 면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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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과학이 사물과 인간, 우주를 분석해 갈가리 쪼개서 그 신비감을 다 없애 버리고 시시한 부품들과 건조한 수식으로 바꿔 놨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인간이 도달하기 전까지 달은 토끼가 방아를 찧는 신비한 무엇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삭막하기 그지없는 돌덩어리였을 뿐이라는 식이다. 


근데 따지고 보면 이런 관념만큼 잘못된 것도 없다. 이건 과학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하려 들지도 않다 보니 주변에서 들은 말들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태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고, 그런 만큼 철저하게 측정하고 실험하며 분석하고 검증하려 드는 건 사실이다. 그 결과 달에 살던 토끼가 없어지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렇기 땜에 사라지는 건 신비감이 아니라, 환상과 미신이다. 


일단 신비감과 환상은 혼동되기 쉽지만 같은 게 아니다. 왜냐, 환상은 일반적으로 무지를 전제로 하지만 신비감에는 그런 요소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아니 실은 지식과 그에 대한 이해가 오히려 신비감을 만들어 내는 동력이 된다. 


달에 토끼가 산다는 생각은 재미있고 귀엽지만, 달 표면에 얼핏 보이는 거무죽죽한 형태 외에는 아무 근거도 없는 동화적인 상상이다. 사람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그 거무죽죽한 자국을 보고 정말로 달에 토끼가 산다고 믿은 것도 아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나 다이애나 같은 존재들도 달이 뭔지 전혀 모르는 전면적인 무지에서 비롯된 비유였을 뿐,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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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권에 따라 달에서 찾은 수많은 토끼의 형태

일부는 개 혹은 곤충 같다만 여튼 인간의 패턴인식 습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런 객관적 무지의 상태에서는 동화나 신화적인 비유들 외에 달과 관련된 새로운 신비함이 생길 여지가 아예 없다. 물론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는 것에 서 진행될 수 있는 앞뒤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 말을 진짜 믿고 있는 게 아니므로 그저 가상 스토리의 연장일 뿐, 진지한 신비함이나 경이감의 대상이 아닌 거다.


하지만 막상 달의 실체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직접 가 본 후에는 어떠냐. 알아내면 알아낼수록 놀라운 천체가 바로 달이다. 다른 행성의 위성들에 비해 모성(지구) 대비 엄청 크기도 하거니와 – 얼마 전 행성 지위를 잃은 명왕성보다 훨씬 크다 - 태양보다 400배 작지만 400배 가깝게 있는 관계로 지구에서의 겉보기 크기는 거의 같다. 우리가 달의 진짜 크기와 거리를 알지 못했다면, 즉 과학적 지식이 없었다면 이런 사실도 알 수 없었다.


이거야 정말 우연적인 일인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태어나 사는 행성과 위성, 태양이 서로 이런 특성을 가진 관계로 달은 해와 함께 밤과 낮을 분할하는 비교적 동등한 존재로 자리매김했고, 문화적으로도 인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직경이 몇십 킬로미터에 불과한 돌덩이인 화성의 위성들이라면 절대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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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식이 가능한 이유는 달과 태양의 겉보기 크기가

거의 같기 때문이다. 모 항성과 위성 간의 이런 관계는 아마 

은하계 전체를 뒤져 봐도 그리 흔하진 않을걸.


그렇게 달에 대해 이해하고, 가서 암석도 캐오고, 이런저런 다양한 연구를 하면서 우리는 ‘어쩌면 토끼가 살지도 몰라’라는 동화 속에서 살 때보다 훨씬 많은 신비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토끼를 떠올릴 때보다 한층 사실에 기반을 둔 상상들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객관적 경이감을 맛볼 수 있다.


예컨대 달이 수십억 년 전 지구에 다른 천체가 부딪히면서 갈라져 나왔을 거라는 사실을 보자. 이는 현재 과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지에 바탕을 둔 아니라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서 그 엄청난 광경을 그려 볼 수 있다. 가공할 속도로 다가오는 소행성과 지구의 갑작스러운 충돌, 거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대폭발과 녹아내리는 지구의 일부, 우주 공간으로 튕겨 나가는 지각 덩어리와 잔해들, 그것들이 결국 지구의 중력권에 묶여 궤도 운동을 하며 수천 년에 걸쳐 조금씩 뭉쳐 동그래지는 모습. 


이렇게 스펙타클한 장면을 떠올리면 우리는 우주 속에서의 장엄한 드라마에 닭살 돋는 경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구 역사상 최대의 재앙이었다고도 할 – 그 당시 지구에 생명체는 없었겠지만 – 이 엄청난 사건 이후 어느덧 수십억 년이라는 가늠하기 힘든 세월이 지났다는 점, 그래서 그 불지옥도 다 옛날이야기일 뿐이고 이제 우리는 저기 예쁘고 딥따 큰 멋진 위성 하나를 갖고 있다는 사실. 이런 것이 주는 로맨틱함과 처연함도 있다.


이 강력하고 농도 짙은 느낌이 토끼가 살지도 모른다고 어슴푸레 상상하는 것과 같으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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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물리학자 로빈 캐넙이 2004년에 행한 시뮬레이션. 

지구 질량의 10~15% 정도에 해당하는 거대한 소행성이 충돌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고, 부딪힌 소행성의 물질들과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물질들이

궤도상에서 뭉쳐 우리의 달과 비슷한 위성이 만들어진다.

사진은 충돌 50분 후의 예상 상태. 색깔은 온도를 의미. 


과학의 ‘비인간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듯한 유물론적 관점도 마찬가지다. 우원은 강한 유물론자는 아니지만, 과학적 관점에서는 우리 인간에게 영혼이 없거나, 적어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영혼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뭔가가 없어도 인간의 생명 활동이나 정신 활동의 대부분이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뇌과학이나 분자생물학, 진화심리학 등의 학문이 이 부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과학은 우리를 삭막한 탄소와 수소, 산소의 혼합체로 격하시키는 걸까? 영혼이 없으면 니나 내는 다 무의미한 고기덩어리일 뿐인 거고, 따라서 그런 관점은 인간 존재에 대한 모욕이자 영성을 상실하고만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인 거냐.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그걸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면 모든 게 허망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과학을 너무 몰라서 갖는 생각이다. 사실 저런 유물론적 관점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반대로 영혼의 영원불멸성을 열심히 믿는 것도 아니다. 달의 토끼처럼 그저 막연한 중간적 무지 상태에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신이 흙으로 빚어내어 영혼을 주입해서 만들어진 인간 이상으로, 지구와 태양이 흙에서 빚어낸 단세포 생물에서 진화한 우리도 신비하긴 마찬가지다. 박테리아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수조 개의 세포가 합심해서 역할 분담을 하는 초 정교한 시스템으로 변해 있고, 이 시스템이 통합된 생존 목표를 가진 생명체로서 물고기를, 악어를, 고양이를 이뤄 살고 있다.


그래서 급기야는 그 생명 중 한 종인 인간이, 나고 자란 터전인 지구 행성을 떠나 다른 천체에 발을 내디뎠고, 인간이 만든 물체들이 화성이나 금성은 물론 머나먼 토성의 위성에까지 가서 착륙하질 않나, 한때는 우주 전부인 줄 알았던 태양계마저 벗어나 어딘지 모를 머나먼 곳으로 향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그 옛날의 진흙 덩이에서 시작됐다.


이런 게 신비하고 경이롭지 않으면 대체 뭐가 그렇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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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분들도 너무 잘 아는 그림. 고대나 중세 사람들이 가진 이런 신과

창조의 이미지는 충만한 영성을 자극한다기보다는

인간이 보고 겪는 것들의 일차원적인 투영에 불과하다.

저런 신이 존재한다면 물론 신기하겠지만, 수백억 광년의

공간 속에서 수천억 개의 은하를 거느린 우주가 훨씬 더

신기하다.


그리고 우리가 영혼이 없어서 죽어 천국이나 지옥에 가거나 윤회도 하지 않고 사라진다면, 과연 우리 존재는 삭막하고 무의미해지는 걸까. 


글쎄다. 진정한 존재의 의미는 영원불멸을 전제로 해야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특히 종교인들이 그럴 것 같다. 근데 이 영원불멸이란 건 대체 뭘까. 내가 지금의 나와 같거나 비슷한 몸과 생각으로 변하지 않고 ‘무한한 시간’ 동안 존재하는 것? 그럼 무한한 시간은 또 뭘까. 뭔가 말장난적 허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또 영혼이 그 관념 그대로 물질적 육체가 배제된, 순수히 정신적인 것이라면 대체 천국에서의 지 복이라는 건 어떻게 누릴 수 있는 걸까. 산해진미를 매일 먹고 마시며 아름다운 산과 들을 평화롭게 뛰놀고 금으로 된 집에서 영원히 산다면, 대체 육체 아닌 뭐가 그 짓을 하고 있다는 거냔 말이다. 반대로 지옥에서 팔다리 잘리고 불태워지고 굶어 죽는 건 대체 육체 아닌 뭐가 경험하는 건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인류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영혼이나 내세 관념들이 딱할 정도로 모호하고, 또 오래전 인류의 인식 수준을 반영하는 동화 같은 뭔가라는 점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따라서 이것 역시 달에 사는 토끼 비슷한, 무지에 의한 추측과 환상의 혐의가 짙다.


반면 지금까지의 과학적 발견에 의거해 인간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라는 점을 받아들이면 어떠냐. 물론 이게 좀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우원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조금 더 용기를 내 보면 이 생각이 우주와 나를 바라보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몇 달 전 이 지면을 통해 썼고 과학하고 앉아있네 팟캐스트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모두 아주 직접적이고도 명백한 별의 자식들이다. 우리 몸의 모든 원소는 빅뱅, 그리고 태양 같은 별들의 죽음을 통해 전해져 왔으며 또 언젠가 새로운 별, 생명에 전해져 그들의 씨앗이 된다. 


이렇듯 우리는 살아생전에는 꿈도 꾸기 어려운, 얄팍한 동화적 상상력으로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구조 속 우주적 순환의 일부다. 이렇게 대우주 속에서 유한하지만 순환하는 존재로 살다 가는 게, 천국 가서 맛있는 거 먹고 번쩍거리는 금딱지 저택에서 '영원히' 사는 거보다 정말 못한 걸까? 


물론 저 물질적 순환 속에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사는 의식이나 기억 같은 게 남아날 여지는 없을 거다. 그럼 뭐. 우리가 머 그리 대단한데. 100억 년을 사는 별도 결국은 죽고, 수백만 광년 떨어진 은하끼리도 언젠가 충돌하는 게 우주다. 그들이 지니고 있을 엄청난 역사와 수많은 생명의 사연들도 결국은 턴이 끝나면 다음번 스테이지에 자리를 넘겨 주는 게 순리다. 100년이건 100억 년이건 지나고 나면 똑같이 사라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근데 우리같이 조그만 생명체들이 그렇게 억울할 게 머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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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하며 하트 모양으로 섞이는 두 은하. 

상상 속의 그림이 아니라 허블 우주망원경이 찍은 사진.

이런 일이 진짜로 일어난다고.


이렇게 작고 보잘 것없는 우리지만, 그래도 이제 나름 우주의 전체 크기에 대해 논하고 머나먼 우주의 장엄한 광경을 눈으로 보고, 그 속에서 우리의 존재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과학이 우리에게 던져 준 선물이다.


이런 것들을 느끼기 시작하면 이제 맨 앞에 인용한 글처럼 하늘 끝 별 하나, 바람 한 점이 허투루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의 그런 변화를 느끼는 건 그 자체로 감동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신도, 천국도, 토끼도 아닌 진실이었을지 모른다. 진실을 모두 알지는 못하더라도 거기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작지만 보잘것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느낌은 단지 신비감이나 경이감을 넘어 우리의 삶에 깊은 위안을 주는 힘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과학은 감동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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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 @patoworld


편집 : 퍼그맨